김태희 “첫 스릴러 연기,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기자의 시선에서 김태희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 시점을 꼽으라면 단연 지금이다. 데뷔 후 첫 스릴러 연기에 도전한 그는, 극 중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 단연 뒤지지 않는 몰입력을 선보이며 김태희라는 연기자의 확장된 스펙트럼을 증명해 냈다. 2020년 방영된 tvN 《하이바이, 마마!》 이후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작품을 통해서다. 복귀작은 지니 TV 오리지널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이하 《마당집》)이다.
뒷마당에서 나는 수상한 냄새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두 여자가 만나 벌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 작품이다. "뒷마당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는 강렬한 한 줄 미스터리로 포문을 연 《마당집》은 주인공 주란(김태희 분)과 상은(임지연 분)이 문제적 남편 재호(김성오 분)와 윤범(최재림 분)이 감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변해가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밀도 높게 그려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극 중 김태희는 완벽한 집에서 그림 같은 일상을 살다 뒷마당의 시체 냄새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주란' 역을 맡았다. 위태로운 아름다움과 숨 막히는 텐션을 발산하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성실하게 쌓아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태희는 전작인 tvN 《하이바이, 마마!》에서도 연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호평과는 결이 다르다. 전작은 연기 변신에 대한 호평의 느낌이 짙었다면, 지금은 오롯이 연기 자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 데뷔 후 로맨스, 판타지, 사극, 액션 블록버스터 등 다채로운 장르를 거치며 톱스타 자리를 유지해온 김태희가 40대 이후 배우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원작자인 김진영은 인터뷰를 통해 김태희의 연기를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김성오(김태희의 남편 역) 배우의 서늘한 눈빛과 김태희 배우의 의심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연기는 제가 소설에서 표현하지 못한 그 빈 공간을 채워줬다"면서 "주란과 상은이 처음으로 상은의 아파트에서 단둘이 마주하고 서로의 진심을 숨긴 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하는 장면에서는, 두 배우가 서로를 대하는 눈빛만으로도 긴장감이 쌓이는 걸 보면서 원작자로서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 장면을 드라마의 명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덕분에 《마당집》은 먹먹한 여운 속에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다. 6월11일 방영된 최종화(8회)는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 전국 평균 3.0%, 수도권 평균 3.2%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 특히나 김태희X임지연이라는 '스릴러퀸'의 시너지는 안방극장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정반대인 양극단의 캐릭터를 맡아, 강렬한 대비와 절묘한 앙상블을 오가며 전무후무한 시너지를 발산했다.
《마당집》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감각적인 연출을 인정받은 정지현 감독의 작품이다. 정 감독은 김태희와 임지연 캐스팅에 대해 "말이 필요 없는 배우들"이라며 "김태희씨와는 과거 광고 작품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대의 아이콘이지 않나. 임지연 배우는 《더 글로리》가 릴리스되기 전에 대본을 전달했었다. (주변에서 임지연에 대해) 정말 많은 추천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대본을 선택해줘 호흡을 맞추게 됐다"고 캐스팅 비화를 공개했다.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와 한층 내밀해진 연기를 선보인 김태희에게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일상을 바쁘게 살다 보니 3년이나 지났는지 몰랐다. 틈틈이 복귀할 생각을 하면서 대본을 보다가 《마당집》의 대본을 우연히 봤다. 스릴러가 낯설었지만 몰입도 높게 봤다. 다음이 너무 궁금했다. 주란을 표현하고 연기한다는 상상을 하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
연기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여태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대사가 없었다. 주란은 원래 말이 좀 없고 폐쇄적인 삶을 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감정이나 의견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보니 눈빛으로 말해야 하는 경우가 많더라. 온전히 주란의 마음이 돼 최대한 그 감정으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눈빛으로 잘 표현하려고 최대한 신경을 썼다."
첫 스릴러 도전인데 어땠나.
"앞서 말했듯이 대사가 없어 굉장히 어려웠다. 보통 대사로 그 인물의 캐릭터나 감정이 설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 그림으로 따지면 정밀 묘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감독님과 모니터링도 다시 하는데, 미묘한 표정의 변화 때문에 느낌이 굉장히 달라지는 신이 많았다. 그런 섬세한 작업을 하는 재미를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꼈다. 어려웠지만 재미도 있었다."
임지연과의 호흡은 어땠나.
"문주란은 추상은이 궁금하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그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추상은을 믿지는 못하지만, 그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 단순 연민을 넘어선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임지연씨가 맡은 추상은은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불행한 역할이라 현장에서도 침체된 감정을 잡고 있었다. 연민을 넘어 복잡미묘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게끔 캐릭터 그 자체로 있어 준 것 같아서 큰 도움을 받았다."
이에 임지연은 "존경하고 평소 팬이었던 (김태희) 선배님과 연기를 하게 돼서 행복했다. 태희 선배님은 대본과 소설을 읽으며 제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 현장에서 저희는 서로 시너지를 많이 발휘하고 의지하며 촬영했다"고 화답했다.
혹시 남편에게 임지연 배우에 대해 조언을 듣기도 했나(김태희의 남편인 비는 2019년 MBC 드라마 《웰컴2라이프》에서 임지연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사실 남편과는 일과 관련된 얘기를 거의 안 한다. 디테일한 얘기를 많이 하지 않았지만 좋은 배우이고, 현장에서 털털하고 호흡 맞추기에 편한 배우라고 조언해 줬다. 덧붙여 저 외에 다른 배우들이 캐스팅된 상태였다. 제가 감독님 작품들의 팬이었고 김성오, 임지연씨와도 같이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차에 만나게 돼 행운이었다."
한편 김태희는 최근 한 패션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마당집》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밝히기도 했다. 김태희는 "'문주란'은 완전히 낯선 장르고 캐릭터지만 '완전히 다른 김태희를 보여줘야 한다'는 식으로 계산하며 연기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주란이다'라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천국의 계단》부터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아이리스》 《용팔이》 등 많은 흥행작에 출연한 그녀는 배우 커리어에서 분기점이 된 작품으로 양동근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그랑프리》(2010)를 꼽았다. 김태희는 "《그랑프리》는 제 연기 생활의 첫 분기점이 돼준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 양동근 선배님을 처음 만났다. '저렇게까지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구나' '같은 장면을 이런 식으로도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구나' '장면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구나' 등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김태희는 어떤 배우로 기억됐으면 할까. 그는 "20년 후에도 작품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큰 축복이다. 지금보다 친근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저를 잘 아는 분들은 제가 정말 허술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시청자는 잘 모르실 테니까. 연기 안팎으로 더욱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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