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사회적 한계, 화석자본주의, 포스트성장의 다양한 경로
[이병천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1.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하나의 사건이다
생태경제학 분야에는 이미 전문적 연구들이 많이 쌓여 있다. 영문책자를 비롯해 외국문헌으로 가면 각종 안내서들도 적지 않다. 나의 뒤늦은 생태경제학 공부도 이런 책에 많이 의존한다. 기후위기가 닥쳐오면서는 특히 기후문제에 집중한 연구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당연히 문제를 보는 시선과 대안 모색에서 여러 견해 차이들도 나타나고 논쟁도 벌어진다. 그럴수록 깨어있는 시민들은 좀 더 정돈된 지식에 목말라한다. 번역서가 쏟아지고 있다. 단편적인 글과 언론보도도 많다. 하지만 그런 목마른 시민적 요구에 부응해 한국인이 자기머리로 사고해서 직접 쓴 한국어책은 의외로 적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김병권 소장이 쓴 <기후를 위한 경제학-지구 한계 안에서 좋은 삶을 모색하는 생태경제학입문>(착한 책가게, 2023)이 3쇄를 거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저자가 보내준 책을 들추어 보았을떄 내가 읽고 배울 또 한권의 생태경제학 책이 세상에 나왔음을 알았다. 깨어있는 시민에게 보다 정돈되고 체계를 갖춘 생태경제학 지식을 전달할 뿐더러, 위기에 둔감한 시민도 생태적 성찰성과 감수성을 가질 수 있게 친절한 지적 도우미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전문학술서로서 얼마나 창의적 연구내용을 새로 보탰는지를 기준으로 따지면 아마 달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부응하는, 기후와 생태의 경제학 입문서로서는 아무 손색이 없는, 공들인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태경제학 공부길을 밝혀준 사람으로 특별히 이제는 고인이 된 정태인소장과 허먼 데일리를 꼽고 있다(pp.391-392).
그간 주로 일선 정책전문가로 활동해 왔으며 오래 학계에 몸담아 오지는 않은 이의 손에서 한국말로 쓰인 두터운 생태경제학 입문서라니, 이것 자체가 기후위기시대 한국에서 하나의 학술적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탈성장코뮤니즘을 주장하는 사이토 고헤이(2020)의 책이 한국시장에서도 인기가 대단하고 단순명쾌하긴 하지만 단순명쾌가 능사는 아니다. 나로서는 오히려 김병권의 <기후를 위한 경제학>에서 독자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고헤이의 책에 대해서는 커먼즈를 지배적 형태로 하는 대안체제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기후위기 비상사태에 과연 속도감있는 전환이 가능할지 비판한 대목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pp. 277-279). 또한 만년 마르크스의 러시아론(자술리치에게 보내는 편지)이 탈성장코뮤니즘을 가리키고 있다는 고헤이의 견해는 다분히 아전인수적 억지 해석이 아닌가 싶다(이병천 2023).
2.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기후를 위한 경제학>이 갖는 내용과 의의를 내 나름대로 좀 더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은 생태경제학을 주류 환경경제학과 확연히 구분 짓고 있다(p.42). 주류경제학에서는 생태계의 구성요소와 가치가 시장경제의 구성요소로 포섭돼 그 지배 안에 들어온다. 따라서 생태계의 가치는 시장에서 돈벌이 관점과 기준으로 평가될 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생태경제학 사유에서는 이와 정반대다. 오히려 인간경제가 지구 생태시스템의 하위 요소로 들어온다. 주요 질문은 생물리학적 관점에서 경제활동이 생태계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문제의식과 인식 틀이 다른 만큼 당연히 처방도 달라진다. 주류경제학은 오늘의 기후·생태위기의 지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공범자다. 이제 인간경제는 칼 폴라니식으로 말하면 더불어 공존하는 살림살이 경제로 거듭나 지구생태계안에 뿌리를 내려야(embedded) 한다. 인간의 자유와 경제저 자유, 시장경제는 의존성과 거주가능성의 원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셋째, 독자는 이 책이 섭렵하고 풀어놓은 방대한 연구문헌과 다루는 주제의 폭넓은 범위를 보고 놀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장난이 아니며 오래 준비해야 나올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생태경제학의 역사를 쓰면서 먼저 한국에는 다소 낯선 인물, 프레더릭 소디에 의한 화석문명의 한계 및 금융자본주의, 불로소득주의의 모순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니콜라스 조르제스쿠-로겐의 엔트로피 법칙, 케네스 볼딩의 우주선 경제 등을 거쳐 허먼 데일리의 ‘비어있는 세상’과 '꽉찬 세상'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무엇보다 생태경제학을 다른 경제학과 구별 짓는 인간경제의 생물리학적 기초, 엔트로피법칙의 엄중함에 대한 설명이 중요하다(1장, 2장). 이어 비어있는 세상에서 꽉 찬 세상으로 진입한 인간경제에서 성장의 한계(3장), 이 책의 중심주제이기도 한데, 성장시스템을 새롭게 바꾸기 위한 여러 해법들의 검토(4장), 생태경제학의 분배정책(5장), 그리고 지금까지 논의를 종합하는 선상에서 경제개혁 전략과 정책(결론)이 이어진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생태경제학 입문서로서 수많은 문헌을 섭렵해 풀어쓰고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그것에만 그치고 있지 않다. 문제를 보는 관점이나 대안에서 이 책은 특정한 입장에 서 있으며 이는 독자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첫째, 저자가 줄 대고 있는 생태경제학의 흐름이 있다. 저자는 서론에서 자신의 관점이 "성장패러다임을 거부하면서도 생태거시경제적 접근법으로 정책설계를 도모하는 허먼 데일리나 탬 잭슨, 피터 빅터 등의 견해에 가깝다"(p.17)고 밝히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데일리의 핵심 주장, 즉 비어있는 세상과 꽉 찬 세상, 정상상태경제, 탈성장을 위한 10가지 정책대안과 같은 것들이 이 책 전체를 꿰는 붉은 실처럼 보인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는 이 책이 데일리의 뼈대에 살을 두텁게 입히고 구체성을 더한 책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에 기반을 둔 생태적 거시경제학에서는 경제, 생태, 사회적 변수들을 통합해 장기추세를 시뮬레이션하는 연구들이 나와 있다. 이는 저자의 생태경제학 포토폴리오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또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pp.246-257). 다른 탈성장접근에서는 잘 접할 수 없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독자는 이 책이 기본선에서 데일리적 정상상태경제를 목표로 하면서 탈성장을 주장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인데 탈성장의 흐름도 다양함을 같이 일러준다. 아주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생태사회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문제를 보는 방식, 대안비전과 전환정책에서 이 책을 특징짓는 매우 강력한 독자적 입장이라 하겠다. 생태사회주의의 한계에 대한 저자의 비판점은 다음과 같다(pp.271-281).
첫째, 자본주의의 무한축적 본성을 그대로 두고는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생태파괴도 막을 수 없다지만 이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다. 자본주의 범주 안에서도 분배수준과 방식을 둘러싼 스펙트럼은 북유럽 사민주의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의존형 경제를 탈피하는 길 역시 다양할 수 있다. 둘째, 자본주의를 극복한다 해도 성장너머로 간다는 보장이 없고 비인간자연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 나가야 한다. 그런 학습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또 지금은 탈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무엇이 될지하는 문제도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셋째, 생태사회주의의 논리대로라면 기후위기 해결과 같이 시급한 지구적 과제 해결을 위한 전제가 글로벌 자본주의 붕괴여야 한다는 답답한 주장으로 갈 수도 있다. 탈성장론과 생태사회주의론은 서로 거리가 있었는데 근래에서 조금 가까워져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Löwy 2022)론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다. 생태사회주의가 탈성장의 과제를 더 어렵게 할까 더 용이하게 할까. 물론 생태사회주의라 해도 여러 갈래가 있다. 아무튼 이것이 한가지 쟁점이 될 수 있겠는데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의 견해는 전자쪽인 셈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포스트자본주의의 길을 아예 불가능하다고 예단하거나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체제 전환‘의 실제적 내용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어떤 극적인 단절보다는 훨씬 ’덜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소유체계의 개혁‘(p.276)에 두면서 여타 보다 급진적 입장에도 토론을 열어 놓고 있다.
3. <기후를 위한 경제학>에 대한 토론 -세 가지 논점
모든 저작들이 그러하듯이 김병권의 <기후를 위한 경제학>에도 토론해야 할 지점들이 없지 없다. 여기서는 세 가지 논점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나의 논평은 어디까지나 이 책이 더 널리 읽히고 기후위기시대 한국의 생태경제학이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한 것이다.
첫째, 저자는 자신의 관점이 데일리, 잭슨, 빅터 등의 견해에 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데일리가 비판받았던 논쟁적 부분도 언급한다. 정책대안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실현할지 그 방안이 빠진 게 데일리의 약점이라는 지적도 볼 수가 있다(pp.229-238). 그럼에도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평자의 경우 특히 요르고스 칼리스와 팀 잭슨의 데일리 비판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 예컨대 바르셀로나학파의 대표적 탈성장론자 칼리스(Kallis 2015)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즉 데일리의 대안정책이 실현될 수 있는 정치경제와 사회적·정치적 과정의 역동성은 어떤 것인가? 이 칼리스의 물음은 생태·사회적 갈등 또는 적대의 표출지점들은 어디인지, 전환 주체는 어디에 있는지 하는 등의 물음도 포함하겠는데 이는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에게도 향할 수 있는 물음이다. 이 물음이 뾰족할 수 있는 이유는 저자가 다음과 같이 묵직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사회안의 계급관계'보다 '인간사회와 지구생태계 관계'가 더 상위의 차원일 수 있다. 따라서 상위의 차원에 대한 질문인 '지구생태계를 넘는 무한성장이냐 포스트성장이냐'에 대한 해법을 먼저 구한 다음, 그 구체적 해법안에서 사회의 계급관계를 다양하게 풀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성장을 넘어서는 것(beyond growth)'이 어쩌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beyond capitalism)'보다 더 선차적일 수도 있다."(p.237)
위의 진술은 <기후를 위한 경제학> 전반에 걸쳐 가장 대담한 주장일지도 모른다. 많이 논쟁적인데 인류세 논쟁을 상기시킨다. 인류세 개념을 적극 옹호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Chakrabarty 2017)는 "기후변화 정치는 자본주의의 정치이상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때 그는 종으로서, 유적 존재로서 인간의 역사와 자본의 역사를 구분하고 양자를 ‘교차해칭’(cross-hatching)시키자는 말을 한다.하지만 종의 역사가 자본의 역사보다 상위차원이라거나 자본주의 비판정치보다 성장주의 극복이 선차적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류세 개념을 옹호하는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2022)의 경우, 생산체계내부의 계급갈등과 거주가능조건을 둘러싼 계급갈등(지리-사회적 geo-social 갈등)을 구분한다. 이들은 생산패러다임에서 생성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에서 후자의 지리-사회적 갈등이 우선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내가 볼 때 자본주의 넘어서기를 뒤로 돌리는 김병권의 성장넘어서기 선차성론은 차크라바르티나 라투르와 슐츠의 견해와도 결이 다른 것 같으며 잘 납득되지 않는다.
둘째, 앞의 문제에서 이어지는데 생태사회주의자들이 성장주의와 자본주의를 너무 가깝게 붙여 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았다면 반대로 저자는 둘 사이를 너무 멀리 떼어놓은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나는 둘의 관계에 대해 생태사회주의자들처럼 보지는 않지만 저자처럼 멀리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저자도 지적했지만 생태사회주의까지 가지는 않는다 해도 '덜 자본주의적인'(less capitalistic)경제로의 전환의 길에서 영리기업의 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하며(p.257) 이는 필경 긴 쟁투적 전환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성장주의에 대한 생태적 비판과 복잡한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비판적 분석은 통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기후를 위한 경제학>을 읽으면 엔트로피법칙에 지배되는 사회적 물질대사의 균열과 자연을 전유하는 자본주의적 사회경제형태, 그 다차원적 비용전가 방식 및 생태·사회적 갈등을 통합적으로 파악, 분석한 역동적 장면들이 확연히 떠오르지 않는다. 저자는 사회적 물질대사 분석에서 주로 '인간경제'를 말하지 자본주의 경제는 인색하게 말한다. 금융에 의한 지구생태계 위협은 책의 끝부분에야 나타난다(pp.355-360). 그렇다고 할 때 생태경제학입문서를 의도하는 이 책이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적 정치경제비판을 쓰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저자가 자신의 준거 학자로 삼고 있는 데일리 또한 자본주의 개념을 사용하는 데 상당히
인색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자본 개념은 분명하게 사용하지만 이때 데일리는 마르크스나 베블런
의 개념이 아니라 주류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자본 개념이 ‘분석적으로 가장 명료하고 이론적으로
가장 만족스럽다’고 쓰고 있다(Daly 1991, pp.31-32). 또한 데일리는 정상상태경제의 유지를 위해
분배제도를 포함한 세가지 제도적 기둥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안적 분배제도(소득과 부에서 최대 및
최저수준 설정과 집중 억제)가 시행되면 파업은 전면 금지될 것이고 노조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pp.55-56).
셋째, 저자는 생태사회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가운데 자본주의라 해도 다 같은 자본주의는 아니며 북유럽 사민주의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까지 다양하다는 것, 따라서 포스트성장으 로 가는 전환의 길도 다양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 다양성의 사고를 본격적으로, 일관되게 밀고 가지는 않은 듯하다. 책의 후반부에 한국경제의 포스트성장 전략을 논한 부분 (pp.282-292)이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압축성장 성공이 기후위기 후진국 또는 악당국가 멍에를 씌웠다. 하지만 오랜 성장관성 또는 중독증 때문에 성장패러다임에 도전하기가 가장 어려운 처지이고 ‘상대적 탈동조화’조차 미흡한 수준이라며 그 만큼 기후위기 대응이 절실하다. 게다가 근래에는 저성장시대로 들어갔고 인구도 감소하고 있다. 매우 타당한 지적이지만 그 정도의 언급에 멈추고 있고 ‘잘 기획된 탈성장‘ 길로 방향을 바꾸자고 했지만 구체성은 부족해 보인다.
한국은 세계10권 경제력의 압축성장 선진국이지만, 다면적 불평등과 권력불균형이 심한 나라, 재벌로 대표되는 거대자본의 위력적 지배력에 비해 이를 민주적으로 규율할 대항력이 취약한 나라, 사회적 합의의 축적경험과 조정능력이 얕은 나라, 기업체제와 노동체제에서 이중구조가 심각한 나라다. 이는 압축적 산업화 및 민주화 성공의 어두운 역설이다. 평자로서는 이런 열악한 전환조건을 가진 나라에서 정의로운 전환으로 대표되는 사회생태적 전환고개가 어떤 독특한 난관에 봉착해 있는지, 특히 생산영역의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어떤 각고의 노력과 혁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 그 긴장과 갈등은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할지 등에 대해 얼마간 언급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물론 생태경제학 입문서에서 이것까지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수 있다.
4. 결론- 전환경로의 다양성과 실험주의
복합위기 시대 포스트성장으로 가는 사회생태적 전환 길을 탐구함에 있어 다양성의 사고는 필수적이다. 권력양식, 제도형태, 문화와 습속, 세계체제속의 불균등한 위치 등의 면에서 국민적 다양성에 따라 나라와 지역의 포스트성장 전환의 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달라져야 하는지 하는 주제는 <기후를 위한 경제학>에서는 중요한 공백으로 남아 있다(평자의 관련연구는 2021 참고). 일반론적 이야기(주로 유럽이야기가 많다)를 넘어 한국의 고유한 맥락과 조건에 맞추어진 포스트성장의 전환경로, 그 디테일을 찾아가는 것은 우선적으로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집중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포스트성장 또는 탈성장의 길이 단순한 역성장과는 다르다면, 긴 전환 과정 속에서 어떻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의로운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그 조건은 어떤 것인지, 난관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나아가 대안적 경제양식과 복지양식, 좋은 삶의 양식이 발전해 탈성장이 초래할 수축경제를 어느 정도 대체해 나갈 수 있을지, 그러면서 전환정치가 사회적 힘을 얻으며 자본주의를 ‘잠식’(라이트 2020)해 나갈 수 있을지가 핵심적인 두가지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한 능력구축 여하에 따라 다양한 경로가 나타날 것이다. 이 복합적 전환능력이 잘 구축되지 않는다면 새 전환의 길은 막히거나 녹색성장이 주도하거나, 홉스적 국가가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단절 경로에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생태적·사회적 한계, 그 이중의 도전과 마주한 우리 시대 포스트성장 전환의 길은 전대미문의 다양한 실험의 공간, 쟁투적인 '이중운동'(폴라니 2009)의 장이 될 것이다. 어떤 민주적 전환실험이 성공할지, 어디서 새로운 선도적 실험이 나타나 ‘성장없는 번영’의 모범을 보일지, 민주적 실험의 실패로 권위주의적 전환실험이 우세할지, 전진 없는 퇴행에 갇힐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어떤 하나의 ‘진리’에 얽매이지 말고 겸허하게 다양한 실험주의로 우리를 개방하는 사유가 절실하다. 사람들은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밑바탕에 그런 개방적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에릭 라이트 2020,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 유강은역, 이매진.
사이토 고헤이 2020, <지속불가능 자본주의-기후위기시대의 자본론>, 김영현역, 다다서재.
이병천 2021, 거대한 위기와 전환의 정치-생태복지국가의 길과 한국의 전환고개. 이병천
김태동 조돈문 전강수편저, <다시 촛불이 묻는다>, 동녘.
이병천 2022, 기후정의와 사회정의, 어떤 전환전략인가, <시민과 세계. 41호.
이병천 2023, 생태경제학, 마르크스이후의 소디, 경향신문, 2023.7.10
칼 폴라니 2009, <거대한 전환>, 홍기빈역, 길.
Chakrabarty D. 2017, The Politics of Climate Change Is More Than the Politics of
Capitalism, Theory, Culture &Society, 34/2-3.
Daly H.1991, Steady-State Economics, 2nd Edition, Island Press.
Dryzek J.S. & Pickering J. 2019, The Politics of the Anthropocene, Oxford University Press.
Kallis G. 2015, Contribution to GTI Roundtable "Full-World Economics," Great Transition Initiative, June. http://www.greattransition.org/commentary/giorgos-kallis-economics-for-a-full-world-herman-daly.
[이병천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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