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뉴스에서 자카르타까지 25시간…박진, 2박3일 아세안에서 '광폭외교'[아세안 결산]
러 라브로프에 “안보리 건설적 역할 기대”
北안광일 조우 “미사일 발사 중단해야”
[헤럴드경제(자카르타)=최은지 기자]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14일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하기까지 25시간이 걸렸다.
직전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일정을 수행한 박 장관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리갈로 이동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야 자카르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이틀간 4개의 다자회의와 7개의 양자회담,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까지 빼곡한 일정을 소화했다. 다자회의를 계기로 러시아와 대화를 나눴고, 공동 행사를 계기로 북측 대표와도 조우했다.
박 장관은 14일(현지시간) 자카르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에 나토 정상회의와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하면서 글로벌 중추국가로 한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유럽의 안보상황과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는 서로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며 “양 지역 국가들간 안보 위험에 대한 공동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14일 왕이(王毅)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과 양자회담을 통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양국 관계에 대해 “상호존중·호혜·공동이익에 기반해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 나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인 현안인 대만해협 문제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외교결례 발언에 대해 “솔직하고 건설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대만 문제와 관련, 왕 위원은 ‘핵심이익’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한다고 전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고 전달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에 대해 박 장관은 외교사절로서 대사의 역할과 처신이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왕 위원은 ‘관계 발전을 위한 것이며, 화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기존 중국 정부의 입장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문제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논의는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장관은 13일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주최 환영 리셉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만났다.
박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러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 한국 기업 및 교민들의 정당한 권익은 보호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은 내년부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할 예정으로, 러시아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안보리에서 우리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브로프 장관은 “잘 알겠으며 외교 채널을 통해 소통해 나가자”고 말했다.
박 장관은 14일 오전 북측 수석대표로는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대사 겸 주아세안대표부 대사와 조우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참석자들과 합동으로 예방한 후 행사장을 나오는 길에서다.
박 장관이 안 대사를 만난 것은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 이후 두 번째다. 관심이 쏠렸던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최종 불참했다.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박 장관은 안 대사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비핵화 대화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대사는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박 장관은 13일 아세안 첫 공식일정으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가졌다.
취임 후 7번째 회담에서 박 장관은 최대 현안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관련해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며 “일본 정부가 높은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오염수 해양 방출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토를 받으며 모니터링한 정보를 높은 투명성을 갖고 신속하게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모니터링을 통해 방사능 물질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계획대로 방출을 중단하고 적절한 대응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우리 측이 요구한 전문가 참여 방안이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3일에는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중일 외교장관이 한 자리에 모인 데 이어 14일에는 한미일 외교장관이 회담을 가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세 번째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했다. 고위 당국자는 “한미일 3국의 물샐틈없는 공조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의 고도화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해 3국 간 안보협력도 더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외에 유럽연합(EU), 영국, 호주, 인도, 필리핀과 양자회담을 통해 실질협력 강화와 지역 및 국제정세 등 상호 관심사를 교환했다.
박 장관은 또한 환영 리셉션과 회의장에서 만난 미국,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노르웨이,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를 포함해 이번 아세안 관견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의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을 대상으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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