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틀고 율동 추며 박수 짝짝짝... 노인센터로 변신한 초등학교
지난달 9일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있는 서석재가노인보호센터. 경증 치매를 앓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돌봐주는 주간 요양 시설이다. 오후 3시가 되자 강의실에서 흥겨운 트로트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인지프로그램 강사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노래를 따라 손가락을 튕기시고, 다음엔 툭툭 머리를 쳐 볼게요”라고 말했다. 80대 어르신 30명이 손뼉을 치며 율동을 따라했다.
이곳은 원래 아이들 소리로 가득한 초등학교였다. 1941년 향곡초로 개교했다가 인구가 줄자 1999년 서석초 향곡 분교가 됐다. 2015년 졸업생 3명을 마지막으로 배출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이듬해 노인센터로 변신했다. 서석면은 주민 3명 중 1명(33.4%)꼴로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 지역이라 노인 시설은 수요가 있었다.
센터에는 현재 70대부터 100세 넘은 어르신까지 총 42명이 매일 9시 등교하고 4시에 하교한다. 오전엔 혈압 등 건강 체크와 물리치료를 받고, 오후엔 주로 치매 예방 활동을 하는 커리큘럼이다.
저출산 여파로 아이들이 줄어 문 닫은 폐교가 노인을 위한 시설로 거듭나고 있다. 본지가 올해 전국 폐교 사용 현황을 조사했더니, 요양원이나 노인대학, 복지시설 등 노인 시설로 바뀐 곳이 약 20곳이었다. 저출산으로 2년 후 인구의 20%가 노인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석재가노인보호센터는 이용자만 바뀌었을 뿐 겉모습은 초등학교 그대로다. 교무실이 ‘사무실’로, 교실이 ‘물리치료실’과 ‘생활실’로 표지판만 바꿔 달았다. 실내화 수납장, 게시판 등 아이들이 쓰던 시설과 집기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르신들도 집을 나설 때마다 “학교 다녀온다”고 말한다.
향곡초 5회 졸업생 서모(82)씨는 60여 년 만인 지난해 학교에 다시 돌아왔다. 청력이 떨어져 소리가 거의 안들리는 서씨에게 기자가 ‘학교 다시 다니시니 어떠냐’고 종이에 써 묻자 ‘조아’라고 답했다.
저출판 여파로 폐원이 속출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노인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으로 바뀌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과 세종을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서 받은 ‘기초지자체별 장기요양기관 전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작년 10월까지 장기요양기관으로 바뀐 어린이집 및 유치원은 모두 82곳이다. 요양원 설립 신고를 할 때 건물의 과거 용도를 밝힐 의무가 없어 실제론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 어린이집은 2018년 3만9171곳에서 지난해 3만923곳으로 줄었다. 4년 만에 8248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어린이집이 요양원으로 많이 바뀌는 이유는 요양원이 법적으로 어린이집과 같은 ‘노유자시설’(노약자, 아동을 위한 시설)에 속해 용도 변경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 장기요양기관은 사회복지사 자격증(2급 이상)이나 의료인(의사·간호사·조산사 등) 자격증이 있으면 운영할 수 있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있는 ‘아이눈높이어린이집’은 작년 10월 ‘더베스트요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20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유혜련(55) 원장은 요양원장이 됐다. 그는 “예전엔 95명 정원을 꽉 채웠는데 저출산 여파로 아이들이 해마다 10명씩 줄어 운영이 힘들어졌다”면서 “5년 전 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활용해 요양원을 차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때 1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뛰어놀던 무지개색 실내 놀이터는 한옥풍 노인 휴게실로 변했다. 유아용 크레파스는 어르신들 미술 치료 수업에 사용한다. 실외 놀이터는 어르신들 밥상에 올라갈 깻잎, 쑥갓, 포도를 키우는 텃밭이 됐다.
최근 들어 요양 시설 운영을 컨설팅하는 업체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요양원으로 바꾸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노인요양시설 컨설팅 기업 보노랜드의 김진원 대표는 “매주 어린이집 원장 2~3명이 요양원으로 바꾸는 게 가능한지, 비용은 얼마가 드는지 문의한다”고 했다. 어린이집의 요양원 변경이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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