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향한 8천년의 사랑…‘백만송이 장미’ 탄생한 이곳 [ESC]
기력이 쪽쪽 빨려나가는 것 같았다.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울 때면 온몸이 가라앉고 어지러웠다.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 산행을 해도 이렇게 피곤하지 않았는데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각오를 다져야 했다.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먹고 마시자고, 지금 나는 일을 하는 중이라고. 주량이라고는 맥주 반 잔인 내가 와인 기행이라니. 매일 낮부터 와인을 마셔대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달콤한 고통이었다.
내가 꾸리는 여행 모임인 ‘방과후 산책단’은 지난달 조지아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트레킹이 아니라 문화기행(이라고 쓰지만, 읽히기는 와인·음식 기행)이었다. 웅장한 캅카스(코카서스)산맥과 저렴한 물가, 안전한 치안 등 여러 면에서 여행하기 좋은 조지아는 음식과 와인도 훌륭하다.
조지아는 와인의 역사를 새로 쓴 나라다. 2015년 고고학자들이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남쪽에서 포도가 그려진 토기 항아리를 발굴했다. 토기 항아리에는 와인 잔류물이 남아 있었고,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추정한 연대는 무려 기원전 5980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와인이었다. 그때부터 조지아는 ‘와인의 요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8천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어 마시고, 526개의 포도 품종을 소유한 이들답게 조지아인은 와인을 즐겨 마신다. 2019년 기준으로 조지아에는 1088개의 와이너리가 있지만 작은 규모로 와인이 생산되며 대부분 자국 안에서 소비된다. 그러니 와인을 사랑하는 이라면 조지아로 날아갈 수밖에.
저렴한 물가에 안전한 치안
이번 여행의 초점이 와인과 음식인 만큼 첫 방문지는 조지아 와인의 70%를 생산하는 카헤티 지역. 19세기 조지아의 중요한 외교관이자 저술가였던 알렉산더 차브차바제의 박물관부터 찾아갔다. 그가 지은 궁전과 와이너리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조지아 와인의 근대화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1841년 조지안 사페라비 포도 품종의 첫번째 병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토기 항아리가 아닌 유리병에 넣고 코르크로 막은 유럽식 와인의 탄생이었다. 이 박물관 입장료에 1천원 정도만 더하면 한잔의 화이트 와인 시음이 가능했다. 가장 대중적인 와인이라서인지 시음한 와인의 맛은 ‘와인알못’인 내 입에도 균형감이 살짝 부족했다.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근처의 슈미 와이너리. 정성 들여 가꾼 정원 덕분에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와이너리다. 포도주 저장실에서 가이드의 열정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조지아 와인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조지아 전통 방식과 유럽 방식. 전체 와인 생산량의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크베브리 와인은 조지아인의 자부심이다. ‘크베브리’라고 불리는 달걀 모양의 토기 항아리에 포도즙과 껍질과 줄기, 씨를 함께 담아 밀봉한 뒤 땅에 묻어 몇달간 발효시킨다. 조지아만의 독특한 양조법이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와인 제작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정원에서 4가지 와인을 시음했다. 우리가 좋아한 건 호박 빛깔의 앰버 와인. 오렌지 와인이라고도 불리는 화이트 와인이다. 포도 껍질을 과즙과 오랫동안 접촉시켜 숙성한 내추럴 와인인데 빛깔부터 매혹적이다. 보디감이 꽤 있고, 산도와 타닌의 균형감도 좋아 모두들 맛있게 마셨다. 그다음으로 찾아간 와이너리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 케이티더블유(KTW). 여기는 저장고의 탭을 열어 바로 와인을 따라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조지아 사람들의 와인 자부심은 그들의 캅카스산맥만큼이나 높다.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저마다의 와인 리스트가 있어서 코키지 비용을 내고 들고 간 와인을 마시는 일은 거의 허용하지 않을 정도다.
카헤티에서 우리가 머문 숙소도 와이너리를 소유한 숙소여서 와인 테이스팅과 요리 강습을 신청했다. 첫 요리는 조지아 국민 음식 므츠바디. 신선한 고기에 소금만 뿌려 숯불에 굽는 꼬치구이다. 조지아는 소를 방목해서 키우기 때문에 한우처럼 마블링이 촘촘하거나 부드럽지는 않다. 대신 고기 본연의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다며 다들 맛있게 먹었다. 꼬치구이를 먹는 동안 이 호텔 와이너리의 와인 세 가지를 시음했다. 이곳 와인은 모두 전통 방식의 크베브리 와인. 대표적인 백포도 품종인 키시와 므츠바네, 르카치텔리를 시음했는데 모두 내추럴 와인의 강렬한 풍미가 살아 있었다. 두번째 요리는 조지아식 치즈 퐁뒤인 하초 에르보.(담발하초라는 코티지치즈로 만든다.) 고소하고 진한 치즈에 빵을 찍어 맛있게 먹고 나니 디저트인 타타라를 만들 차례. 포도주스에 밀가루를 넣고 타지 않도록 계속 저어가며 걸쭉하게 만든 뒤 설탕옷을 입힌 호두를 얹어서 먹는 카헤티안 디저트. 조지아의 전통 디저트인 추르치헬라와 비슷하다.
‘백만송이 장미’ 탄생 배경
카헤티 지역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래 ‘백만송이 장미’의 배경으로 유명한 시그나기 마을이 있다. 이제는 조지아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 그는 10대 때 수도 트빌리시로 올라와 온갖 일을 전전했다. 작은 식당의 메뉴판이나 간판을 그리는 일에서 시작해 조금씩 그림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 공연을 하러 온 프랑스 여배우 마르게리트 드 세브르에게 한눈에 반했다. 전 재산을 팔아(피까지 팔았다는 자극적인 설도 있다) 그녀의 숙소 골목을 장미로 가득 채웠다. 마르게리트는 마을을 떠났고, 그의 사랑은 시들어가는 장미 향기와 함께 남았다. 이 로맨틱한 이야기를 러시아 시인이 시로 썼고, 라트비아의 노래에 가사를 붙여 러시아의 국민 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다.
시그나기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걸으며 그의 이야기를 떠올린 뒤 트빌리시의 국립미술관에 피로스마니의 작품을 보러 갔다. 올해 대규모 국외 전시가 많아 그의 작품은 겨우 스무 점 남짓 걸려 있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드라이 브리지 근처 공원에 걸린 그림을 구경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조지아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갖고 나와서 팔고, 또 누구나 그림 한 점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산다. 작은 호텔에도, 허름한 식당에도 빠짐없이 그림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는 예술이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미술관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취미도 아니다. 방과후 산책단원들 몇 명도 공원에서 그림 한 점씩을 샀다. 몇만원에 불과한 그림 한 장이 두고 두고 조지아를 추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수도 트빌리시에서는 조지아 가이드와 함께 하는 ‘트빌리시 음식 투어’를 신청했다. 우리에게 김치가 있다면 조지아인들에게는 만두 힌칼리가 있다. 버섯만두, 고기와 양파만 넣고 만든 산간마을 스타일 만두, 고기에 파슬리와 고수를 첨가한 도시 스타일 만두가 우리 앞에 놓였다. 아이 주먹만 한 만두를 대여섯개씩 먹으며 힌칼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몽골의 영향으로 생겨난 힌칼리는 산간마을에서 제례 음식이나 잔치 음식으로 발전하다가 이제는 조지아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날 때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트빌리시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곳에서 이어진 저녁 식사에는 옹기에 담긴 콩 수프 로비오, 조지아식 카더멈이라 불리는 존졸리를 넣은 토마토 샐러드, 햄과 콩을 넣고 구운 빵 로비아니, 치즈를 듬뿍 넣고 구운 보트 모양의 빵 하차푸리, 마늘크림소스에 졸인 닭고기 요리 슈크메룰리가 나왔다. 그날의 술은 와인이 아니라 ‘와인 보드카’라고도 불리는 차차. 이탈리아의 그라파처럼 와인을 담고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 만든다. 18도부터 80도까지의 알코올도수를 지닌 차차 중에서 4가지를 시음했다. 달콤하고 독한 과일주 맛부터 코냑의 깊은 풍미까지 골고루 맛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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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 침략에 버텨야 했던…
문화기행에서 조지아 북쪽의 산간마을 스바네티 지역을 빼놓을 수는 없다. 캅카스산맥에 가로막힌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산악 지역의 전통과 중세풍의 마을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기에. 10시간 넘게 차를 달려 다다른 스바네티 지역의 작은 마을 메스티아는 라일라, 우시바 같은 큰 산 아래 말간 얼굴로 서있었다. 페르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사이에 낀 조지아는 외침이 잦았다. 침략을 당할 때면 식량을 챙겨 저마다 방어 목적으로 세워놓은 탑형 주택 ‘코시키’ 안으로 들어가 사다리를 걷고 버텼다.
서글픈 역사의 현장이 이제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메스티아에 도착하자마자 가벼운 트레킹에 나섰다. 자베시 마을로 향하는 산길에는 노란 만병초가 한창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만져질 듯 투명한 날이었다. 들꽃이 가득 핀 벌판에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설산과 하늘을 보며 ‘멍 때리는’ 선물 같은 시간을 누렸다. 스바네티에서도 우시굴리 마을은 7~8세기에 세워진 코시키와 건물 200여 채가 남아 있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곳이다. 우시굴리는 30년 전만 해도 여성을 향한 ‘보쌈’, ‘명예 살인’ 같은 일이 일어났을 정도로 고립된 산골이었다.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영화가 바로 우시굴리 출신의 여성 감독이 만든 <데데>. 연중 이 영화만 상영하는 전용극장을 통째로 빌려(그래봤자 10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규모) 영화를 감상했다. <데데>를 본 다음날, 우리는 우시굴리의 시하라 빙하로 승마 트레킹을 갔다. 영화 속 우시굴리 여성들처럼 말을 달렸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에 온몸이 다 젖고 추위에 떨며 고생을 제법 했는데도 즐거워하는 그녀들이 사랑스러웠다.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정착지 중 한 곳이었던 동굴 도시 우플리스치헤를 거쳐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스테판츠민다. 고도 5054m, 프로메테우스의 동굴이 있다는 카즈베크산 아래 마을이다. 압도적인 마운틴 뷰를 자랑하는 룸스 호텔에서 해돋이를 보고, 주타 계곡을 트레킹하니 12일간의 문화기행이 끝났다.
트레킹, 영화 감상, 유황 온천욕, 요리 강습, 푸드 투어, 와인 테이스팅, 유적지와 미술관과 벼룩시장 방문, 승마… 그 모든 프로그램을 그들은 신이 나서 참여했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걸으며 내내 다정했던 그들은 떠나는 순간에도 나를 울렸다. 들판의 야생화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건네고, 둥글게 모여 서서 박남준의 시 ‘젊은 느티나무’를 돌아가며 읊어줬다. 아침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시를 읊던 이들답게, ‘에스(S)샘’이 내게 남긴 글은 한 편의 시였다.
우리가 함께 보낸 열두밤이 유난히 정겨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침을 제외한 매끼 식사마다 와인을 곁들였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몸 안에 피가 아니라 와인이 흘러서 다들 좀 더 느슨해지고 넉넉해진 걸까. 그렇다면 까칠하기로 소문난 나는 성격 개조를 위해서라도 매일 한 잔씩 마셔야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보며 그이가 남긴 시를 다시 읽어본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중략)/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정현종, ‘비스듬히’) 와인에라도 기대어 비스듬히 다른 이를 받칠 수 있도록 말이다.
여행가
여행가 김남희는 2003년 이후 유목민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지은 책으로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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