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졸업생 중 ‘의사과학자’ 1%도 안돼…육성책 통할까 [주말엔]
코로나19 이후 연구하는 의사, '의사과학자' 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를 가짐과 동시에 의학 관련 연구를 하는 과학자를 말하는데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비교적 빠른 속도로 백신이 개발된 배경에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컸습니다.
2020년 말 대표적인 의사과학자로 꼽히는 독일의 우구르 사힌, 외즐렘 튀레지 박사 부부는 화이자와 함께 mRNA 백신을 개발해 냈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10명 중 4명 정도는 의사과학자이고, 세계 상위 10대 제약회사의 책임자 70%도 의사과학자 출신입니다.
■ 잇단 연구 성과에도 '의사과학자' 지원자는 졸업생 1% 미만
국내에서도 의사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에 선정된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장 겸 한국과학기술원(KAIST) 특훈교수 역시 의사과학자입니다.
고 교수는 치매 등을 유발하는 뇌 속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퇴행성 뇌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단 평가를 받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게재돼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 등의 지원을 받은 김진국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 역시 지난 13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됐습니다.
치료 가능성이 희박한 희귀질환 환자 중 약 10%는 유전체 검사를 통해 맞춤형 치료제 개발이 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우수한 연구 성과 속에 백신이나 신약 연구, 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AI 개발 등을 위해 '의사과학자’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의사과학자의 절대적인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의과대학 졸업생의 약 4%인 1,700명 정도가 의사과학자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선 한 해 의대 졸업생 3,058명 가운데 의사과학자 지원자는 30명 정도로 파악됩니다. 졸업생의 1%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의대로 우수 인재가 몰리지만, 대부분은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 의사의 길을 걷고 기초의학 연구를 택하는 인력은 극히 일부에 그치는 겁니다.
■ 의사과학자 역할 주목...정부, '459억 투입' 육성 방안 발표
미국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매년 1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왔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9년에서야 정부 차원의 의사과학자 지원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출발이 한참 늦은 셈인데, 이제는 바이오 산업을 차세대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며 본격적인 의사과학자 양성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지난달 발표된 '디지털바이오 인프라 조성방안'에는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한 '전주기 의사과학자 양성 계획'이 포함됐습니다.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 MIT)와 하버드대의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HST·Health Science and Technology)을 본따 의과대학과 공과대학, 의료계와 과학기술계 간 연계 기반을 놓겠다는 계획입니다.
HST는 의과대학 학생이 임상 지식과 이공계 공학 등을 함께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이와 함께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 로 6개 병원을 선정하고 올해부터 4년 동안 모두 459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작됐습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2일 전국 6개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 연구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의사과학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학부과정부터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까지 촘촘하게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등 교육 기관 역시 의사과학자 양성 계획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카이스트는 현재 운영 중인 의과학대학원을 2026년에 과학기술의전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포스텍 역시 2028년까지 연구중심 의대를 설립해 매년 50명의 의사과학자를 배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료계 일부에서는 이 같은 특성화 의대 신설이 의사과학자 양성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기 위한 것 아니냐며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육성보다 유지...인력 잡아둘 강력한 유인책 필요"
의료계에선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 의학계 인재를 잡아둘 강력한 유인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이나 기관을 확대해 의사과학자 수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보상 등 지속적인 지원 없이는 언제든 일반 임상의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의료기관 근무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 3,000만 원인데, 의사과학자에게 이만큼의 수입이나 안정성을 제공할 만한 토양은 마련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 11일 열린 과학기자대회에서 "미국도 의사과학자 100명이 출발하면 단계별로 누수돼 빠져나간다"며 "이들은 낙오하는 게 아니고 개업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퇴로가 있는 이들을 잡아놓으려면 엄청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신 이사장은 "육성보다 더 필요한 건 유지 정책"이라면서 "범부처가 연구에 전념할 토양을 만들고, 젊은 학생들의 본보기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고규영 교수 역시 "의사 과학자들이 연구할 분위기가 안 되어서 임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국내 의사 13만 명 중 성형이나 미용 분야에 3만 명이 있는데 그것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국가 발전이나 미래를 위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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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대 기자 (yd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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