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디자이너의 ‘고민’과 마주하다 [박미란의 오프 더 캔버스]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 전시디자인 맡아
성황리 끝난 휘트니 미술관 전시 한달 만에
일부 소장품 국내로 옮겨와 다시 선보여
뉴욕 전시장 환경의 무리한 재현보다는
서울시립미술관과의 창의적 절충안 마련
가벽 활용 주요작품 강조 작업에도 심혈
에세이집 ‘예술이 필요한 시간’ 최근 출간
전시공간 21곳 소개… 글·사진 자료 수록
여행책자처럼 경로·관람 방법 등도 안내
“전시디자인, 좋은 전시 위한 노력 중 하나
작품의미 곡해할 만한 무리한 장치 지양
전시장서 먼저 말 건네는 주인공은 작품”
◆전시를 거니는 경험을 가꾸는 일
이세영은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실내건축학 석사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디자인학 박사를 취득했다. 201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큐레이팅 인턴으로 재직하며 미술계에 입문했고, 광주비엔날레 국제 큐레이터 코스를 거쳐 대림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했다.
전시디자인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5년 전시디자인 스튜디오 ‘논스탠다드(nonstandard)’를 설립하면서다.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서울식물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및 미술기관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력을 다졌다. 2017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전 ‘하이라이트’와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빛’ 등 국내 주요 대형 전시디자인을 총괄했다.
◆예술을 통해, 살아감의 동력을 얻기 위하여
“무대의 뒤편, 혹은 숨겨진 세계에서 실제 세계로 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비밀스러운 통로들”을 바라보며 매일을 시작했을 초년생의 설렘을 상상해 본다.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장소로 변모”하는 장소에서 “삶을 예술로 물들이는 방법”을 꿈꾸던, 빛나는 날들에 대하여.
이처럼 미술을 끝없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전시와 작품을 그리워하는 진심이 그로 하여금 전시디자이너가 되도록 했을 것이다. 전시공간에 깃든 공기를 숨 쉬길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자신 스스로 관람객으로서의 경험을 더없이 소중하게 아끼는 사람이라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휘트니미술관의 전시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2022-2023)을 관람할 당시 그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백색의 벽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흰 벽면 위에 미술관 대표 소장품인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를 자신 있게 강조하는 면모가 드러났다. 그 경험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담아내고 싶었다. 다만 두 기관의 건축은 외양과 역사 모두에서 매우 상이한 성격을 지닌다. 2015년 신축 재개관한 휘트니미술관 건물과 대조적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은 국가등록문화재인 서울 구 대법원 청사를 일부 재건축한 것으로서 오래된 바닥면과 거친 벽면, 혼잡한 천장 구조물 일부를 보존하여 활용하고 있다. 뉴욕 전시장의 환경을 무리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창의적 절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시디자인에 있어 중요시하는 점이 무어냐고 묻자 이세영이 답해 주었다.
“전시디자인은 좋은 전시를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본적 요소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가진 의미나 해석을 곡해할 만한 무리한 장치들이 전시장에 개입할 때 가장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책 속에서도 연관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들어 디자인에 함몰된 전시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큰소리로 말을 건네는 주인공이 작품이 아닌 디자인이 될 때, 디자인이 작품을 압도하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전시장에 간 목적과 이유를 잊고 혼란을 느낀다.”
작품을 위하여 공간을 다듬고, 전시를 위하여 장소를 가꾸어 내는 일. 바라보는 시선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걸어가는 동선이 배회하지 않도록 조용히 무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장소의 기억이란 다른 무엇보다 강렬하며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다. … 마치 뒤틀린 시공간 속에 던져진 것처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뮤지엄 마일을 걷는 나는 언제든 20대 초반의 시절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전시디자이너의 과제란 타인에게 그러한 장소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는 노력이기에 한눈에 돋보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관람객의 마음을 세심하게 가늠하는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전시가 조금 더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 많은 이들의 삶에 의미 있는 흔적으로서 깃들 수 있도록.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