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 ‘자이’의 추락

김우정 기자 2023. 7. 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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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건설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후폭풍… 주가 한때 20년 만에 최저치 기록하기도
4월 29일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 [뉴스1]
"조경용 흙더미의 하중을 철근과 슬래브(철근콘크리트 바닥)가 버텨내지 못한 게 붕괴 원인으로 보인다. 콘크리트 강도가 규정에 못 미쳤을 개연성도 있는데 이 같은 총체적 문제를 설계·시공·감리 어느 단계에서도 걸러내지 못했다."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의 지하주차장 붕괴 원인에 대해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이같이 분석했다. 5월 한국기술사회 차원에서 꾸려진 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하주차장 붕괴 원인을 살핀 최 교수는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는 철근 부족에 대해 "단순 실수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설계나 시공 단계에서 경제성을 이유로 철근 개수를 줄였거나, 재하도급 과정에서 작업자가 철근을 상세 도면보다 적게 시공했을 개연성도 있는 만큼 향후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원인은 '전단보강근' 미설치

이번 붕괴 사고는 4월 29일 오후 11시 25분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공공분양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조경 공사가 이뤄지던 지하 1층 주차장의 상부 슬래브 약 1104㎡가 붕괴됐고, 그 여파로 아래층 일부도 무너진 것이다. 다행히 한밤중에 사고가 일어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 단지는 당초 10월 완공돼 12월 입주 예정이었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고조사위)를 꾸려 5월 9일~7월 1일 2개월 동안 사고 원인을 규명해 7월 5일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하중을 견디는 데 필요한 철근 부품인 '전단보강근'이 기둥 안에 설치되지 않은 것이었고 △사고 지점의 콘크리트 강도가 부족했으며 △사고 지점에 설계치보다 더 무거운 조경토가 쌓여 하중 부담이 커진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조사위는 당초 설계 단계에서부터 필요한 철근이 누락됐고, 시공 과정에서 그나마 설계 도면에 있던 철근마저 상당수 빠뜨린 채 공사가 이뤄진 점도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전 과정에서 잡아내지 못한 총체적 부실이었다는 것이다.

파문이 확산하자 시공사인 GS건설은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 '전면 재시공'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꺼내 들었다. 해당 단지는 17개 동 1666채로 국내 건설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전면 재시공이다. GS건설 측은 7월 6일 "철거공사비, 신축공사비, 입주 예정자 관련 비용을 감안해 약 5500억 원을 2023년 상반기 결산에 손실로 반영할 계획"이라면서 "자금은 철거부터 신축 아파트 준공 때까지 약 5년 동안 분할 투입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지난해 1월 붕괴 사고로 전면 재시공에 들어간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8개 동)의 경우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이 추산한 재시공 비용은 약 4000억 원이다.

전면 재시공 방침을 발표한 7월 5일 이후 GS건설 주가는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6일 주가는 전날 대비 19.4% 급락했다. 이날 주가는 장중 한때 1만3700원까지 떨어져 2003년 이후 20년 만에 최저가를 기록했다. 증권가에선 이번 주차장 붕괴 리스크가 당분간 주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초 GS건설은 7월 5일 언론에 배포한 사과문에서 "만일 안전에 문제가 된다면 최대한 재시공 범위를 충분히 넓혀 안전과 관련된 모든 문제점을 원천 제거토록 하겠다"고 했으나, 약 2시간 후 다시 낸 사과문을 통해 전면 재시공 방침을 밝혔다. 그사이 최고경영진의 결단이 있었다고 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사고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자칫 기업 이미지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면서 "당장 수천억 원 비용 부담이 예상되더라도 전면 재시공 카드로 입주 예정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면 재시공 부담 약 5500억 원 전망

다만 사태 여파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5월 2일 사고 현장을 찾아 "발주청인 LH와 시공사인 GS건설은 무거운 책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불법 하도급 등 일반적으로 신뢰감이 있는 회사명과 브랜드 뒤에 국민에게 숨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는지 직권으로 철저히 들여다보고 파헤칠 생각"이라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국토부는 사고 원인과 관련해 불법 하도급 행위는 없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철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사고 지점 시공팀 12개 중 4개 팀 팀장이 팀원 임금을 일괄 수령한 뒤 근로계약서와 다르게 임의 배분한 사례가 있다"면서 "불법 하도급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수사기관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우 속 콘크리트 타설 작업 의혹이 제기된 서울 동대문구 ‘휘경자이 디센시아’ 건설 현장. [동대문구 홈페이지 제공]
그간 '자이' 아파트 브랜드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해온 GS건설은 최근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3월에는 GS건설이 시공한 서울 중구 '서울역센트럴자이' 아파트 외벽에 균열이 발생했다. 서울시와 중구청, GS건설의 합동 점검 결과 파손된 부분은 비(非)내력벽으로 당장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3월 입주가 시작된 강남구 '개포자이프레지던스'는 6월과 7월 두 차례 폭우로 단지 일부가 침수돼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공사가 한창인 서울 동대문구 '휘경자이디센시아' 건설 현장에서는 7월 11일 폭우 속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빗물이 섞이면 콘크리트 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에 대해 GS건설 측은 "비가 소강상태일 때 타설 작업을 했고, 천막을 덮는 등 조치로 콘크리트에 빗물이 섞여 들어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GS건설 외에도 최근 국내 유수 건설사가 지은 신축 아파트에서 크고 작은 하자가 발생해 소비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건축 자재비, 인건비 부담이 상승한 최근 2~3년 사이 지어진 신축 아파트에는 입주를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최명기 교수는 "마냥 근거 없는 우려로 치부할 게 아니며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원자재 가격 인상, 물류파업에 따른 레미콘 수급 불안정 등 건설 현장에 악재가 잇달았는데, 공기(工期) 단축 압박 속에서 일선 업체가 비용을 줄이고자 불량 자재를 쓰는 등 꼼수 유혹에 빠지기 쉬워졌다"는 설명이다.

GS건설 관계자는 7월 12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붕괴 사고 원인과 향후 대책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휴먼 에러'로 보고 있다"며 "입주 예정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르게 전면 재시공 결정을 내렸고, 향후 LH 및 입주 예정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측이 들여다보고 있는 불법 하도급 의혹과 관련해서는 "그 점에 대해선 현 상황에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LH 전관' 특혜 의혹 제기

서울 종로구 GS건설 본사. [뉴시스]
한편 발주처인 LH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부 사고조사위에 따르면 LH는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단 한 차례도 레미콘 품질을 확인하지 않았다. LH는 7월 6일 자사 홈페이지에 이한준 사장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내고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입주 예정자분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후속 조치를 포함한 사고 수습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투명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LH 출신의 이른바 전관(前官)이 근무하는 업체들이 설계와 감리를 맡아 부실을 키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붕괴 사고가 발생한 현장의 설계용역 및 감리용역 모두 LH 전관을 영입한 업체가 수주해 전관 특혜가 이번 붕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설계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감리는 종합심사낙찰 방식으로 두 건축사사무소가 각각 수주했는데, 이들 업체 모두 LH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영입했다고 한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사업을 총괄하는 LH의 자체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며 "LH 출신 인사들이 사실상 수주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돈을 많이 받아가면 기술자, 노동자에게 돌아갈 정당한 페이가 누수돼 건설 현장의 부실을 키울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LH와 해당 업체 측은 전관 특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불법 재하도급, '외국인 오야' 거쳐
다섯 단계 내려가기도"
불법 만연·부실 투성이 공사 현장… 자재 줄이고 비숙련 근로자 투입 다반사

"경기 지역 한 건설 현장에선 불법 재하도급이 다섯 단계까지 내려갔다. 걸리면 연루된 업체 모두 죽는 셈이라 실상은 절대 오픈되지 않는다. 시공사와 감리업체 모두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공기(工期)를 맞춰야 하니 묵인하기 십상이다."

건설안전 전문가 A 씨는 국내 공사 현장의 불법 하도급 실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불법 하도급은 부실공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하청업체는 원칙적으로 하도급 받은 공사를 다른 업체에 다시 하도급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법 하도급이 관행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공사 발주자가 흔히 '원청'으로 불리는 종합건설업체에 일을 맡기면 원청업체는 이를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준다. 여기까지는 합법적이지만, 전문건설업체가 두세 차례 다시 하도급을 준다는 것이다. 불법 하도급이 반복될 경우 각 업체는 수익을 내고자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커진다. 영세업체가 저렴한 자재를 택하거나 아예 자재 수 자체를 줄이고, 인건비를 아끼려고 비숙련 근로자를 투입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5월 23일~6월 8일 77개 건설 현장을 점검한 결과 그중 33개 현장(42.8%)에서 58건의 불법 하도급이 적발됐다.

전문가들은 4월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붕괴한 사고도 불법 하도급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A 씨는 "철근콘크리트(철콘) 작업을 예로 들면 원청으로부터 공사를 따낸 철콘전문업체가 일감을 다시 개인사업자인 '철콘팀장'에게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이것도 불법이지만, 이 정도 선에서 그치면 '양반'"이라고 말했다. 구두계약, 이면계약 등 꼼수를 통해 일감이 다시 '중국팀장'을 거쳐 '동남아팀장' 등 내국인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이끄는 '오야'(팀장)에게 넘어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건물 구조체의 안전성과 직결되는 땅 파기나 콘크리트 타설 같은 중요 공정은 원청업체가 직접 시공하게끔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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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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