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구 뚝딱뚝딱…‘무아지경’ 몰입의 즐거움 [ESC]
공방 수업, 간단한 가구 제작
팬데믹 거치며 홈인테리어 붐
나무 자르며 스트레스도 날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목공도 관심이 있었는데, 섣불리 시작은 못 했지요. 이곳은 수업을 마친 뒤에도 계속 나와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용기를 냈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지난달 24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 강서구 ‘열린목공방’에 나온 직장인 이상아(28)씨가 목공 수업을 듣는 이유를 말했다. 아이티(IT) 기업에 근무하는 이씨는 “(내 업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이 일은 내가 만질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고, 내 의도를 반영할 수 있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날 목공 수업에는 서른세살 동갑내기 연인 정병찬씨와 신지선씨도 참여했다. 정씨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하고 함께 온 신씨는 생애 처음으로 나무를 잘랐다. 그는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이색적인 데이트가 되기에 좋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부업의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서” 공방을 찾았다. “직장 동료가 티브이(TV) 받침장을 만들고 그걸 선물하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아이티 업계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정씨에게 목공은 “정년이 없다”는 게 매력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뭔가 펼칠 수 있고, 창업도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고급스런 나무로 나만의 물건을
저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목공의 매력은 한가지였다. ‘몰입이 주는 무아지경의 기쁨’.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잊힐 정도로 빠져들게 하는 재미를 목공이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날 수업을 들은 40대 수강생 허아무개씨도 “만드는 시간 동안만은 일상의 복잡한 생각이 안 든다. 잊게 된다. 오롯이 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도 자신의 책 <몰입의 즐거움>에서, 삶은 곧 경험이며 몰입 경험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목공은 나무로 가구, 도마, 수납장 등 물건을 제작하는 일이다. 넓게는 건축에서 목재를 다루는 일도 목공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목공을 이용한 전시회가 자주 열리며 예술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해가는 추세다.
목공의 인기는 10여년 전 디아이와이(DIY, 내 손으로 직접 만들기) 열풍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만의 특별한 물건을 만드는 데 나무만큼 고급스러운 재료도 없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목공은 더 주목받았고 홈 인테리어 붐도 한몫했다. 이종석(54) 열린목공방 대표는 “나무 인테리어 용품이 특히 인기가 많다 보니, 문의가 많이 왔다”고 말한다.
‘열린목공방’은 2004년에 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가구 디자이너도, 건축업계에 몸담은 이도 아니다. 수강생들처럼 30대에 목공에 빠져 취미로 삼았다가 목공이 직업이 된 이다. “만들기는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요즘 라탄 공예나 장난감 조립 인기도 같은 이유인 거고요. 석재는 다루기 어렵고, 나무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재료죠.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재료이기도 하죠.” 그가 입문할 때만 해도 목공 기술을 가르쳐 주는 데가 적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고, 외국에서 도서를 구입하는 등 독학으로 목공 기술을 익혔다.
20년 동안 이 공방을 거쳐 간 사람들은 2000여명이 넘는다. 그중에는 이 대표처럼 아예 목공이 밥벌이가 된 이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던 박현주(42)씨는 2009년 “취미 하나 가져보자”란 생각으로 목공을 시작했다가 그해 퇴사까지 했다.
“본래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는데, 목공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내 일로 해도 되겠다’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죠.”
지금 그는 공방 ‘지요의 목공소’를 운영하며 반제품 가구를 판매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도 3만6000명이 넘는다.
“첫 주문은 거실장과 코너장이었는데, 각각 65만원, 50만원에 팔았어요. 기쁘고 놀라웠죠.”
그는 이 대표를 스승이라고 했다. “당시 수백만원 수강료 받는 데가 많았는데, 이 대표님 공방은 월 수강료가 30만원 정도였고, 수업이 끝나도 재료비만 내면 계속 공방을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금도 많은 부분을 상의합니다.”
그는 곧 원데이 클래스 등 강의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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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게 맞나 ‘뿌듯’”
이날 수강생들의 도전은 ‘찻상 만들기’였다. 132㎡(40여평) 크기의 공방에는 작은 침대만 한 크기의 나무 테이블이 여러 개 있다. 벽에는 각종 도구가 주렁주렁 걸렸다. 각종 대패, 목선반, 벨트 사포 기계 등이 질서정연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주 다리를 만들었으니 오늘은 상판과 다리 조립하고 채색까지 해서 완성해봅시다.”
이 대표가 강의를 시작했다. 가로 53㎝, 세로 32㎝ 크기의 찻상 조립을 위해 수강생들은 주섬주섬 한 주 전 만든 상판과 다리들을 꺼냈다. 강의가 이어진다.
“보통 상판은 그냥 위에 올리는데, 이것은 100% (나무다리를) 짜서 집어넣는 거예요. 상판에 홈을 파서 넣을 겁니다. 얼마나 집어넣을 것인지 정해야 (나무) 커팅 사이즈가 나오겠죠. 홈은 7㎜ 정도 팔 것인데 딱 맞을 필요는 없고, 여유 있게 8㎜ 정도 파도 됩니다.”
이 대표의 설명이 끝나자 수강생들은 자로 재기 바쁘다. 커다란 목재 커팅 기계를 이용해 다리를 좀 더 얇게 자르는 시범을 이 대표가 보이자, 수강생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치지직, 치지직! 기계 소리가 공방을 가득 채웠다. 땀방울이 만든 몰입의 즐거움이 뒤따랐다. 떨쳐버리고 싶었던 일상의 불안처럼 나뭇조각이 잘려 나간다.
“벨트 사포로 다리는 미리 가는 게 좋아요. 나무 나이테가 더 단단하죠. 약한 데는 더 갈리겠죠. 결이 입체적으로 두드러지게 나오겠죠.”
사포질을 마친 상판과 다리는 결이 더 뚜렷하고 우아하게 보인다. 색칠까지 마치자 근사한 찻상 4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아씨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만든 게 맞나 싶네요. 뿌듯해요. 이제 다도도 해야 하나 싶네요.”
수강생들은 소중한 추억 한자락씩 챙겨 돌아갔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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