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냐, 중국이냐?” 양다리 중립 외교가 과연 가능한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81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외교 전략으로 제시했다. 중간자로서의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며 “중견 국가의 위상에 맞는” 적극적 역할을 발휘해 국제 외교를 주도한다는 발상이었다. 반미 성향의 지지자들에겐 감동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한·미 동맹과 자유민주적 질서를 신뢰하는 대한민국 정통 세력에겐 반미·친중 세력의 위장 전술로 보였다.
20년이 지나 동북아 균형자론을 되짚어보면, 세계사적 흐름과 국제정세의 향방을 전혀 잘못 짚은 아마추어 전략가의 엉터리 외교 노선이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세계는 한국 같은 중요한 국가가 미·중 사이에서 “펜스에 앉아서(on the fence)”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중립 외교를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 양자택일을 강요
미국이냐, 중국이냐? 세계 여러 나라는 지금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세계 많은 나라는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어느 한 편에도 쏠리지 않은 채 국익만을 극대화한다는 실용적 외교 노선을 추구해왔지만, 최근 격화된 미·중 갈등의 현실은 더는 애매한 중립 외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트럼프 정권은 세계 주요국에 중국산 5G 화웨이와의 단절을 요구했으며, 바이든 정권은 반도체 기술력의 중국 유입을 막기 위해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에 대중국 수출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 사이 양자택일이 불가피해지자 2023년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 편에 섰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 역시 양자택일의 압박을 벗어날 수가 없다. 중국에 군사기지 건설을 허가했던 아랍 에미리트 연합국은 미국의 압력을 받고 계획을 철회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 될수록 세계 각국에 가해지는 양자택일의 압박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쪽으로 쏠리면 중국이 때리고, 중국의 요구에 따르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제로섬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이상은 지난 7월 12일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에 게재된 “중립성의 신화(The Myth of Neutrality)”에 나오는 주장이다. 이 시론의 저자는 존 매케인(John McCain, 1936~2018)의 외교 정책 고문으로 활약했던 리차드 폰테인(Richard Fontaine)이다. 폰테인은 중국의 경제적 보복에도 불구하고 미국 편에 서려는 동맹국과 선린 국가들에 대해서 미국은 현실적인 보상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적극적 외교·안보 전략, 우호적 무역 협정, 지속적 방위 책무의 이행으로 동맹국을 만족시켜야만 미국 주도의 국제 연대가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폰테인의 분석대로 중립 외교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 주도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지는 상황이다. 지난 7월 12일 나토 정상회의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공동의 우려를 표명했다. 이틀 앞서 <포린어페어스>지에 발표한 시론에서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나토 사무총장은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제질서와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며 중국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나토가 중국을 적국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를 규탄하기는커녕 러시아와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중국을 정면 비판했다. 그의 문장은 신냉전의 수사로 가득 차 있다.
“갈수록 강화되는 중국의 대외적 강압 행태와 대내적 억압 정책은 나토의 안보, 가치, 이익을 위협한다. 베이징이 이웃들을 협박하고 다른 나라들을 괴롭히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의 전제적 정권들이 서로 결탁하는 이 상황에서 그는 “민주와 자유를 믿는” 전 세계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바로 그러한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나토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정상을 초청했고, 나토의 초빙에 흔쾌히 응함으로써 이들 4개 주요국은 나토와의 반중 연대를 과시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문제가 세계 주요국의 연대를 강화하는 형국이다. 냉전 이래 한동안 지속돼오던 세계 각국의 대중국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효를 다한 닉슨 패러다임, 미·중 갈등의 기원
1972년 2월 21일 베이징에서 중공 주석 마오쩌둥과 만난 미국 대통령 닉슨은 향후 미국의 대중국 외교 전략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전달했다. 푹신한 분홍색 의자에 편히 기댄 79세의 마오쩌둥 곁에 59세의 닉슨은 바싹 다가앉아서 입가에 진지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미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정치 철학(political philosophy)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념적 차이를 넘어 중국의 대미 정책만을 고려해서 새로운 외교적 관계를 맺겠다는 발언이었다. 닉슨이 말한 정치 철학이란 국가의 기본 가치와 근본 체제를 의미한다.
당시 미국은 공산권의 독재 국가들을 향해선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구미 중심의 견고한 세계 질서를 확장하고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소련이 이끄는 공산권과 영원히 안 끝날 듯한 냉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오쩌둥을 만나 정치 철학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선언한 닉슨은 1970년대 후반부터 40여 년 지속될 미-중 공조화의 청사진을 펼쳐 보인 역사적 인물이었다. 회담 후 그는 “지금껏 미·중 사이엔 큰 차이점을 보여왔고, 앞으로도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러한 차이점을 가지면서도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는 방법을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인 지배의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미국은 중국과 경제적 공생 관계를 맺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한 해 전인 1971년 미국은 이미 중화인민공화국을 “차이나(China)”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를 텄지만, 국교 정상화는 1979년에야 이뤄졌다. 닉슨은 정치 철학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지만, 반제(反帝), 반미(反美), 반(反)자본의 정치 철학을 견지하는 마오쩌둥이 미국에 대해 문호를 활짝 열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사망했고, 한 달이 못 돼 4인방이 체포되면서 “10년 대동란”이라 불리는 문화혁명은 급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그 후 2년에 걸친 정치투쟁과 노선 갈등을 거쳐서 중공 중앙은 덩샤오핑을 최고 영도자로 추대하고 개혁개방을 새로운 국시로 채택했다.
닉슨이 제시한 바로 그 길을 따라 덩샤오핑은 문호를 열고 미국의 투자를 유치하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낙후된 경제를 성장시키는 제2의 혁명을 주도했다. 닉슨이 약속했듯 미국은 더는 중국의 정치 철학을 문제 삼지 않은 채로 경제적 공생 관계로 돌입했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은 두 얼굴의 야누스처럼 공산주의를 내걸고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억지로 접붙이고, 일당독재를 인민 민주주의라 선전하고, 마오쩌둥 사상을 되살려 일인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정치 철학이 바뀌어야 중국이 변한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미·중 갈등은 타협 불가능한 서로 다른 정치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1979년 초 덩샤오핑은 제5의 현대화 전략으로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민주장(民主牆) 운동의 주동자들을 긴급 체포한 후, “4항 기본원칙”을 천명했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도 중국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공산주의 노선, 인민민주독재, 중공 영도력, 마오쩌둥 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견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전 세계는 그러한 중국의 자기모순과 이중성을 빤히 보고 있었지만, 중국과의 경제적 공조가 불러올 경제적 실리가 컸기에 닉슨의 전략을 따라 중국의 정치 철학을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는 톈안먼에서 탱크 부대가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음에도 국제사회는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그대로 인정했다. 닉슨 패러다임의 밑바탕엔 자본의 유입으로 중국의 경제적 토대가 바뀌면 정치적·제도적 상부구조도 변한다는 낙관이 깔려 있었다.
닉슨의 낙관과는 달리 중국은 정치 체제의 변화 없이 경제적 공룡으로 성장했다. 그 점에서 닉슨 패러다임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이제 세계는 본격적으로 중국의 정치 철학을 문제 삼고 있다. 작금의 미·중 갈등 근원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라는 타협 불가능한 정치 철학의 대립이다.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는 인류적 보편가치를 거부하는 중국공산당의 자기 모순적인 정치 철학에서 비롯됐음을 나토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택일에서 나토 31개 회원국과 인도-태평양의 4개 주요국도 미국을 선택했다. 그러한 결정의 밑바탕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자유, 인권, 민주, 법치 등 인류적 보편가치를 선양해온 초강대국이라는 공동 인식이 깔려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국제사회의 전선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인류가 전쟁을 치르지 않고 미·중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 중국공산당이 자체적으로 모순된 정치 철학을 교정하여 인류적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길밖엔 없다. 중국이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법치 국가로 진화한다면,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중국 문제”는 눈 녹듯 사라질 수 있다. 중국의 변화가 미·중 갈등 해소의 첩경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현실이 바뀌려면,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이 변해야만 한다. 중국공산당의 리더십이 변하려면 그 근본적 이념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 지식인들이 다시금 국가의 정치 철학을 새로 짜는 치열한 이념 논쟁, 전면적 사상 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1911년 이래 중국 지식인들은 1세기 이상 헌정 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대 그들은 중국의 전제적 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헌정 담론을 전개했다. 2013년 중국공산당은 강압적으로 그 논쟁을 중단시켰지만, 중국 지식계의 헌정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식계의 담론이 탁상공론 같지만, 모든 정치 혁명은 비판적 사유에서 시작된다.
그 점을 잘 알기에 마오쩌둥은 반우파 운동(1957~1959)으로 55만의 지식인들을 오지로 보내 중노동을 시켰다. 현재 일인 지배의 시진핑 정권은 개혁개방 이래 가장 강력하게 비판적 지식인을 탄압하고 있다. 그러한 중국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정치는 생물이고 역사는 급변을 낳는다. 다수 중국 인민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현 체제는 억지와 모순으로 가득 찬 잘못된 정치 철학에 기초하고 있음을. 중국이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결코 영원히 참일 수 없다. 전 세계가 중국의 정치 철학을 문제 삼는 바로 지금이 중국을 바꾸는 적기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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