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앞세운 아세안, ‘포스트 차이나’ 될 수 있을까

안광호 기자 2023. 7. 15. 0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 정부 ‘신남방 정책’ 이후 급부상… “중국 완전 대체 불가능” 전망도

[주간경향] 한국의 대(對)아세안 수출은 문재인 정부 ‘신남방 정책’ 이후 크게 확대됐다. 베트남 등 수출국 다변화에서 성과를 거뒀고, 아세안 내 한국 위상도 커졌다. 하지만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대중 수출 감소에 가려져 있을 뿐 아세안으로의 수출에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포스트 차이나’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는 베트남은 수출과 내수에서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이 중국을 대체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진단한다.

지난 2017년 11월 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고르대통령궁 인근 음료수 상점에서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신남방 정책으로 급부상한 아세안

“아세안과 한국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2017년 11월 9일(현지시간) 첫 동남아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른바 신(新)남방 정책이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인도 등 신남방 국가들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서 교류를 넓히는 것이 골자다. 아세안 10개국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에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취임 2년 4개월 만에 아세안과 인도를 포함한 신남방 정책 대상 11개국을 모두 방문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세안과 교역 규모는 급성장했다. 2018년 한국의 대아세안 교역 규모는 1597억달러로 중국 다음으로 성장했다. 한국 무역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9.7%에서 2018년 14.0%로 확대됐다. 수출 실적에서 크게 두드러졌다. 대아세안 수출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890억달러, 2021년 1088억달러, 지난해 1249억달러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재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대외연) 선임연구원은 “우리 국제 외교가 주변 4강에 너무 치우치다 보니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적 입지가 흔들리는 일이 반복됐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요 서방국가뿐 아니라 아세안과 인도와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신남방 정책을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하노이 한 호텔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포럼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아세안·베트남 수출 급감, 왜

잘 나가던 대아세안 수출은 최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의 올해 상반기 국가·지역별 수출 증가율 현황을 보면, 한국의 대아세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7% 감소했다. 지난 6월의 경우 수출액이 86억달러로, 1년 전 103억달러에 비해 16.6% 쪼그라들었다.

베트남으로의 수출이 감소한 탓이 크다. 베트남은 아세안 내 최대 수출 대상국이자, 중국과 미국에 이은 전체 3위 수출국이다. 지난해 대베트남 수출은 전체 아세안 수출의 절반가량인 609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로 보면 342억5000만달러(약 43조원) 흑자로, 지난해 우리가 최대 흑자를 본 국가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는 최대 흑자국이지만, 수출 추이는 하반기부터 꺾였다. 대베트남 수출은 지난해 8월(47억달러)부터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한 이후 올 1월(38억달러)엔 마이너스(-)28.5%까지 감소 폭을 키웠다. 다만 수출 감소 폭은 올 6월(43억달러) -10.4%로 다소 줄었다.

베트남으로의 수출 감소는 베트남의 대세계 수출 감소에서 기인한다. 베트남은 한국으로부터 중간재(부품 및 원자재) 등을 수입해 미국 등에 수출한다. 핵심 수출 품목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인데, 반도체 경기가 나빠 수출이 둔화하면 한국에서 수입하는 물량도 줄어들게 된다. 대외연의 지난 5월 16일 ‘한국의 대아세안 교역·투자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베트남 수출 총액의 약 2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수출은 지난해 8월 약 62억달러였으나, 같은 해 12월에는 약 31억달러까지 급감해 전반적인 수출 감소를 주도했다. 수출 감소세는 올해도 이어진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베트남의 월별 전체 수출 실적은 1월 -25.9%, 2월 11.7%로 반등했다 다시 3월부터 -14.4%, 4월 -16.2%, 5월 -9.1% 등을 기록했다. 곽성일 대외연 경제안보전략실장은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의 80% 이상이 중간재다. 베트남에 한국 기업 진출이 늘고 중간재를 한국으로부터 공급받는 형태이다 보니 양국 간 공급망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대세계 수출이 둔화하면 우리의 대베트남 수출도 쪼그라들게 된다”고 말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뒤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베트남이 주목받는 이유

한국의 대중 수출은 지난 6월까지 13개월째 감소세다. 그 빈자리를 베트남이 채워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1억명 가까운 인구에서 중위 연령(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이 32.5세로 한국(45세)보다 10세 이상 낮다. 내수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는 셈이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2014~2019년 연간 6~7%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8.02%로, 1997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도 동남아 국가 중 가장 높은 6.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스마트폰과 전기차 등에 쓰이는 핵심 광물인 희토류 매장량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다른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베트남은 문재인 정부 신남방 정책을 통해 우리와의 주요 교역 대상국으로 급부상했다. 한-베트남 교역 규모는 수교한 1992년 5억달러에 불과했다. 당시엔 인조장섬유직물, 석유제품, 복합비료, 섬유 및 화학기계 등이 우리의 대표 수출품이었다. 최근엔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및 센서, 무선통신기기 등이 대표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약 9000개에 달하는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윤석열 정부도 베트남을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로 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첫날인 지난 6월 22일(현지시간)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경제인 205명 및 관련 경제단체장들과 함께한 만찬에서 “베트남은 2045년 선진국 도달을 위해 혁신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트남의 각종 인프라 개선과 대규모 산업 전환 프로젝트가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며 베트남의 성장 가능성과 양국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략적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우려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힌다. 산업연구원(KIET)은 지난해 12월 발간한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의 평가와 새로운 협력 방향’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심화될 경우 제3 국가로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며, 유럽연합과 같은 울타리가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베트남이 속해 있는 아세안 등과 연대해 필요에 따라 공동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적었다.

지난 2018년 8월 28일 서울 광화문 오피시아 빌딩에서 열린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현판식 모습. 연합뉴스
‘포스트 차이나’ 엇갈린 평가

베트남이 우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는 있어도 완전 대체까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김형주 LG경영연구원 경제·정책연구부문 수석연구위원은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이 중국을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중국이 품질과 비용 면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전 세계에 공급해왔는데, 대체지로 부상하는 국가들이 이보다 나은 상품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설령 그런 제품을 내놓더라도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가 크다. 중요한 것은 중국 의존도를 ‘0’으로 낮추는 게 아니라 지금 수준에서 절반 정도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갖고 수출 다변화를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도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한국은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여파로 중국발 위험에 노출돼 있고 우리 기업의 공급망 안정화에 베트남이 상당 부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사실상 중국을 대체할 만한 부품, 소재, 중간재의 공급처를 찾는 것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품질과 가격 그리고 물량 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국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이 크다는 점에서 베트남을 중국의 대체지로 꼽기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으로 규제와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든다. 인허가 관련 기준이 불투명하거나 그로 인해 비용이 발생하고 예측이 불가능해져 기업 경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현지 투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4월 10일 베트남 기획투자부(MPI)의 외국인 투자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한국 기업들의 투자액은 4억7440만달러로 1년 전 16억680만달러에 비해 70.4%(11억3240만달러)나 줄었다.

베트남을 포함한 전체 아세안과의 협력에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말 공개된 이른바 ‘한국판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이다. 윤석열 정부는 신남방 정책을 확장·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의 미국 인태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5월 16일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나탈리 삼비 연구원은 ‘한국의 인태 전략에 대한 인도네시아 및 호주의 관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확장적인 인태 전략은 동남아에 대한 투자에 위협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신남방 정책이 동남아 투자 및 경제 협력에 집중한 반면, 새로운 인태 전략하에서는 동남아와 아세안이 하위로 취급되며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약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신남방 정책에서는 시장원리와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됐는데, 인태 전략에서는 경제안보, 공급망, 국제정치 등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인도와 호주 등이 급부상했다”며 “이렇다 보니 아세안에 대한 고려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론도 제기된다. 이재호 연구원은 “아세안에는 (한·미·일이나 북·중·러와 같은) 진영이 없다. 아세안의 리더 격인 인도네시아를 보더라도 철저하게 균형외교 기조를 유지하면서 특정 진영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중국이 그간 대규모 지원을 하며 공을 많이 들였지만, 아세안이 중국에 기울지 않는 것도 그렇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에 아세안이 뜨뜻미지근하게 대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세안의 이런 기조는 국제관계를 자신들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이른바 ‘아세안 중심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아세안이 윤석열 정부의 인태 전략을 이유로 수출이나 협력관계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 다변화를 요구하는 주문도 있다. 김형주 위원은 “장기적으로 아세안의 맏형 격인 인도네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과 올 3월 IPEF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오는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는 등 국제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세안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이면서 공급망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데다 수도 이전 등 스마트시티 건설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한국의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사업 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