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맞는데, 저건 아니다?’...윤 대통령의 기준 없는 카르텔 찍기

김찬호 기자 2023. 7. 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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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과 폴란드 공식 방문을 위해 지난 7월 10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주간경향] 대통령이 ‘사회악’을 ‘점지’하는 신개념 정치를 선보이고 있다. 일단 ‘카르텔’이란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찍히면 이유를 불문하고 ‘개혁’ 대상이 된다. 무엇이 카르텔이고, 어떤 선정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개혁하느냐는 모두 미궁이다. 단지 윤석열 대통령이 “이것은 카르텔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한국 정부의 ‘주적’이 된다. 이미 시민단체, 노동, 언론, 금융, 교육, 과학이 차례로 카르텔이란 이름으로 소환됐다. 일부는 대통령이 간파한 카르텔을 취임 1년이 지나도록 각 부처가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는 불똥까지 튀었다. 이는 각 부처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불렀다.

국민이 아닌 대통령이 심판자가 된 상황은 각종 논란을 낳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카르텔을 콕콕 집어내던 윤 대통령이 국회, 법조 그리고 특정세력의 이권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받는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대표적 이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이권 카르텔이 ‘자유 경쟁을 피하고, 특정 연합이 시장을 독점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면 이들부터 카르텔로 지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침묵하며 ‘대체 무엇이 카르텔이냐’는 논란을 키우고 있다. 결국 정부의 ‘반 카르텔’은 ‘정치적 낙인찍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민도 대안도 없는 카르텔 낙인찍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 발표 중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사례 설명을 듣고 있다. / 조태형 기자

윤 대통령이 점지하는 카르텔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교육에서 발생했다. 이른바 ‘수능 킬러문항’ 논란이 ‘교육 카르텔 문제’로 확전되는 과정은 카르텔 논리의 허술함을 보여준다. 해당 문제의 시작은 지난 6월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능(11월 16일)을 5개월여 앞둔 시점에 나온 대통령의 질책성 발언으로 한국 교육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대통령의 지적이 나온 지 하루 만에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됐다. 이규민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원장도 대통령 지적이 나오고 나흘 만에 사임했다.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해 기관장으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수능도 아닌 모의평가 때문에 평가원장이 사퇴하는 희귀한 사례가 만들어졌다. 대통령의 확신에 찬 행보는 방향의 옳고 그름과는 관계가 없었다. 단지 지난 3월,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이른바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빼라고 지시했는데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 실질적 이유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설명하며 단순 ‘지시 불이행’이 아닌 ‘교육 당국-사교육 이권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확전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일련의 과정은 복잡해 보이지만 분리하면 단순하다. 첫째는 ‘지시 불이행’이다. 대통령은 지시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책임을 물었다. 행정부의 최종 인사권자가 대통령인 만큼 단순 인사 사안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인사의 원인이 된 ‘킬러문항 배제가 왜 필요했느냐’는 두 번째 사안이다. 대통령실은 이를 교육 당국과 사교육이 결탁해 이권 카르텔을 만들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교육당국이 수능을 어렵게 내고, 사교육이 해당 문제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강의하는 카르텔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 카르텔은 담당자가 대통령의 지시를 불이행한 이유가 된다. 일종의 순환구조를 이루는 셈이다. 문제의 시작과 끝을 찾기 어려운 구조는 대통령의 지시가 과연 합리적·과학적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린다.

윤 대통령의 킬러문항 배제 주장이 논리성을 갖추려면 몇 가지 검증이 필요하다. 킬러문항의 정의, 개선 방안의 합리성, 기대효과 등이다. 우선 킬러문항이 대체 뭐냐는 문제다. 윤 대통령이 몇 차례나 지적하고 실제로 교육부가 ‘이것이 킬러문항이다’라고 발표한 것 중에는 국어 비문학 문제가 있다. 교육부는 올해 6월 모의평가에 나온 국어 14번, 33번 문제를 킬러문항으로 꼽았다. 해당 문제의 정답률은 EBS 가채점 기준 36.4%, 36.8%에 달한다. 그렇다면 몇 퍼센트 정답률부터 대통령이 말하는 킬러문항인지를 정해야 한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정답률이 킬러문항을 선정하는 기준은 아니고 참고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수능에서 출제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종합하면, 정답률이 100%라고 해도 공교육 과정 밖 지문을 인용했다면 ‘킬러문항’이 된다. 상식과 부합하지 않는 정의부터 혼란스럽다.

개선 방안은 애꿎은 수험생들의 불안감만 높인다. 정부는 EBS 수능 교재(수능특강·수능완성)와 수능의 연계성을 높여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발맞춰 지난 6월 26일 EBS는 “수능 연계 교재를 변형해 불법 유통한 사례를 제보받아 교육당국과 연계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EBS 수능특강 교재 등을 변형해 제작된 인터넷 강의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 수능 시험을 치르는 A군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EBS 연계 문제, 강의는 사설 인강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많았는데 없어지고 있다”며 “이런다고 현장에서 알음알음으로 하는 EBS 연계 강의까지 싹 다 잡을 수 있겠나. 괜히 서울 현장강의에 못 가는 지방 수험생만 피해 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기대효과 역시 문제다. 정부는 킬러문항을 배제하면 사교육 부담이 경감한다는 논리다. 그러자 사교육 업계는 ‘준 킬러문항’이 변별력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는 강의를 시작하고 있다. 이 장관 역시 “공정한 수능은 결코 물수능(쉬운 수능)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변별력 있는 문제가 출제될 것임을 암시했다. 대통령이 지목한 ‘킬러’라는 단어만 ‘핵심’, ‘만점을 위한’ 등으로 바뀌었다.

몇몇 유명 사교육 학원, 강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했다. 이들의 고수입이 문제로 떠올랐다. 카르텔의 한 축으로 지목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6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장관을 향해 “사교육 카르텔이라고 하는데 이 장관이 예전에 운영하던 사단법인이 에듀테크 업체에게 1억원의 후원금을 받았다”며 “이런 게 이권 카르텔 아니냐”고 말했다. ‘왜 이건 카르텔이고, 저건 아니냐’는 형평성 문제는 대통령의 카르텔 점지가 얼마나 빈약한 기준 위에서 이뤄지는지를 방증한다.

왜 이들은 카르텔이 아닐까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부터 한국사회의 대표적 카르텔로 지목된 곳이 법조계다. 사회부조리를 다룬 상업영화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단골 소재라는 점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여준다. 최근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면서 1건당 수천만원씩 받고, 수십 건의 법률의견서를 써온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 5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권 후보자는 최근 5년(2018~2022)간 국내소송과 국제중재 등 38건의 사건에 의견서 63건을 제출했다.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은 18억1563만원(세금 등 공제 후 6억9699만원)이었다. 연간 수입으로 환산해 비교하면,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받은 연간 1억1000만~1억2000만원의 근로소득보다 법률의견서 제출로 받은 소득이 연간 1억900만~1억9000만원으로 더 높다. 법률의견서는 중립적인 감정과는 달리 재판 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건과 관련한 법리나 학설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참고용’으로 제출하는 자료다. 이에 따라 전관 변호사나 로스쿨 교수 등이 의뢰를 받는다. 그들만의 법조 카르텔에 속하지 못하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수익원이란 뜻이다. 사교육 시장과는 어떤 차이로 한쪽은 카르텔이고, 다른 한쪽은 문제없이 대법관 후보까지 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는 윤 대통령의 카르텔 정의에 더욱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 6일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며 논란이 된 해당 사안은 김건희 여사와 연결된다. 2017년 사업계획 단계부터 2021년 예비타당성조사(예타)까지 일관됐던 고속도로 종점(양평군 양서면)이 갑자기 올해 5월 강상면으로 변경됐고, 공교롭게도 종점지 옆에 김 여사 일가 땅이 많다는 것이 핵심이다. 변경안은 전체 노선의 55%를 바꾸었다.

야당이 김 여사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원 장관은 선제적으로 백지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 사안 역시 카르텔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지난 7월 7일 양평군청에서 열린 ‘서울-양평고속도로 추진재개를 위한 민간단체 설명회’에서 “예타 때 만들어진 것은 가안이고, (실제 종점이) 어디에 만들어질지는 모르는 것”이라며 “가안인데도 그것을 확정안이라 생각하고 ‘노선변경’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정부의 예타 조사가 실제 사업과는 관계없는 비용-편익 분석이 된다. 일단 예타만 통과하면 이해관계자들 입맛에 맞게 국책사업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혜 대상으로 떠오른 김 여사의 집안이다. 카르텔에 대한 윤 대통령의 기존 입장대로라면 이 역시 지적받아야 한다. 사교육 시장의 강사들은 교육 공무원과 직접 결탁해 카르텔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서 수익을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해당 행위가 카르텔에 해당한다면, 같은 논리로 고속도로 건설로 수혜를 입는 것 역시 카르텔이 될 수 있다. 정의, 기준, 적용범위가 불분명한 카르텔 점지가 만든 혼란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수십 년을 이어온 제도가 바뀌고, 정의조차 불분명한 카르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찍히면 죽는다’는 분위기는 각종 문제를 침묵하게 만들고, 근본대책이나 해법도 외면하게 만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 교수 카르텔이라고 찍힐까봐 겁부터 난다”며 “확실한 건 윤 대통령의 카르텔 지목은 원칙이 없다는 점이고, 이 문제가 ‘반 카르텔’ 정부라는 스스로의 정의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치 사회의 모든 악을 잡아낼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이 정작 본인 관련 문제는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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