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우려된다는데…한국은행은 결국 '부동산 연착륙'
가계부채 다시 불어나는데…
1,062조 3,000억 원.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6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다. 한 달 전보다 5조 9,000억 원 늘어 잔액 기준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6조 4,000억 원의 증가 폭을 보였던 2021년 9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3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은행권 가계대출이 4월 이후 증가세로 전환한 건 정책모기지론 영향도 크다. 정책모기지는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 차원에서 적극 권장했던 대출 상품이다.
가계대출이 전체적으로 급증한 것은 예상대로 주택담보대출 증가 때문이다. 6월 은행권 주담대 증가 폭은 7조 원에 이른다. 2020년 2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개별 주담대는 물론 정책모기지, 전세대출, 집단대출 등 모두 항목이 늘었다.
가계부채는 한국은행도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번에 4회 연속 3.5% 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도 이를 언급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결정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금통위원들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계부채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이 총재 말대로 정답은 없지만 방향성은 분명해야 하는 게 가계부채 문제이다. 가계부채 수준이 우려는 되지만 당장 금리를 올릴 정도로 심각하게 본 것 같지 않다. 뭔가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의미다.
금리를 동결하면서 '정교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금리로만 조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게 뭘까? 이창용 총재는 취임 이후부터 계속해서 우리 경제의 '구조 개혁'을 강조했다. 지난 5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결국 '돈 풀어서 해결해라, 금리 낮춰서 해결해라'라고 하는데 재정·통화정책에 부담이 된다"며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작심 발언이다. 통화 정책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 총재로서 정부를 향해 계속해서 던지는 메시지다.
이번에도 구조개혁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조정을 미뤄서 경쟁력이 둔화하고 성장률이 낮아져 경제순위가 떨어지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도 가계부채가 우려되는 데도 금리 동결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한 부분이 출입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 나온다. 이창용 총재는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올해 103% 이상으로 돼 있는데 이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 우리 경제에 큰 불안 요소"라고 지적했다. 다만 "우리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가계부채를 단기적으로 급격하게 조정하려고 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크게 생길 수 있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또 "지금은 단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서 자금흐름의 물꼬를 트는 미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 것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줄여나가는 거시적 대응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하는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와 일치한다. 거품 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은 반드시 막아야 하고 연착륙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에게서 부동산 시장 상황 보고를 받고 "연착륙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과 통화정책 모두 부동산 연착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금리 동결로 인해서 우리는 곧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이달(7월) 말 정책금리를 0.25%P 인상할 경우 한미 금리차는 2%P로 벌어진다. 이 또한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미 금리차 기록이 계속해서 경신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월과 4월, 5월에 이어 이번 7월까지 4번 연속 금리를 묶으면서 3.5% 기준금리는 반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그럼 7월 이후 우리의 선택은 어떨까? 이창용 총재는 이번에도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다. 금리 인상 가능성을 살짝 열어뒀다. 이 총재는 "이번에 금통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금리를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하는 한편 금통위는 당분간 금리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여섯 분 모두 3.75%로 가져갈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연준은 8월에 회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10월에 결정하고 다음 한 번 정도는 올리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두 번이 될 것인지가 시장의 큰 관심사인 만큼 결국 9월 정도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고 그런 것 때문에 가능성을 그대로 둬야 한다"라고도 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7월에 올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하고 이번에 금리 동결을 결정했으며 이후엔 어떻게 할지는 연준의 추가 인상 여부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정부와 호흡을 맞춰 부동산 경착륙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데 미국과 큰 금리차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국은행이 놓여 있는 것이다. 결국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한 한국은행은 하반기에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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