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애' 뮤지컬 넘버 '베스트 3'를 소개합니다 [어쩌다 커튼콜]

서지혜 기자 2023. 7. 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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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끄는 노래 '넘버', 효율적 연습을 위해 도입
넘버는 연기고, 대사고, 연출이야: 레미제라블 '집주인'
가사만큼 간주도 중요해 : 엘리자벳 '나는 나만의 것'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번역의 중요성: 위키드 '파퓰러'
[서울경제]

10만 원 넘는 돈을 내고 뮤지컬 공연장에 갔는데 앞사람 키가 너무 커 두 시간 넘게 고개만 기웃거리다 온 적 있나요? 배우의 노래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여운이 남아 같은 돈을 내고 본 공연을 또 본 적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느라 답답한 적은 없나요? 세상의 모든 뮤덕(뮤지컬 덕후)의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 뮤덕 기자가 나섰습니다. 뮤지컬 애호가를 위한 뮤지컬 칼럼, ‘어쩌다 커튼콜’과 함께하세요.

‘넘버’를 아시나요. 영화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 있다면 뮤지컬에는 ‘넘버’가 있습니다. 이제 넘버가 뭔지 아시겠죠. 넘버는 바로 뮤지컬에 등장하는 ‘곡’입니다. 넘버의 뜻은 아시다시피 숫자, 영어로 ‘Number’입니다. 용어가 좀 직관적이지 않죠. 거의 대부분의 서사가 음악으로 이뤄지는 뮤지컬인데 왜 노래를 부르는 용어에는 ‘음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걸까요.

사실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언제부터’ ‘왜’ 뮤지컬 속 노래를 ‘넘버’라고 불렀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몇 가지 이유를 추정해볼 수는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뮤지컬 ‘연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같은 곡의 반복, ‘리프라이즈(reprise)’입니다. 하나의 멜로디를 가진 곡이 극 중 여러 차례 나오는 거죠. 예컨대 ‘사랑해’라는 제목의 노래가 1막과 2막에 한 번씩 등장한다면 연습할 때 ‘사랑해부터 다시 할게요’라고 하기보다는 ‘7번부터 다시 할게요’라고 말하는 게 더 효율적인 거죠. 또 뮤지컬은 1막과 2막밖에 없잖아요. 연습을 하다 중단되고 다시 연습을 할 때 ‘1막부터, 2막부터’라고 할 수 없으니 ‘7번부터’라고 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넘버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넘버를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뮤지컬 초심자들은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 넘버를 미리 들어두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좀 더 극에 집중할 수 있고 함께 박수도 치고 흥에 겨울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내가 좋아하는 넘버가 나오면 녹음으로 들을 때와 실제 라이브로 들을 때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제 아무리 ‘브루노 마스’가 내한 공연을 해도 노래를 한 곡도 모른다면 재미를 느끼기 힘든 것과 똑같은 이치죠. 저는 오늘 라이선스 뮤지컬 중 제가 가장 좋았던 넘버와 그 넘버를 들었을 때 저의 느낌, 해당 넘버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배우를 소개할까 합니다. 다만, 모든 건 ‘개인 취향’인거 아시죠?

넘버는 대사고, 연기고, 음악이고, 춤이야: 레미제라블, ‘집주인(Master of the House)’

레미제라블은 올해 하반기에 막을 올리는 대작 중 대작 뮤지컬입니다. 저는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5년에 이 뮤지컬을 봤는데요.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이 뮤지컬을 봤다고 해요. ‘당신은 듣고 있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로 시작되는 ‘프로덕션 넘버’와 당시 상황이 겹쳐졌기 때문이겠죠.(프로덕션 넘버는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격인 규모가 큰 넘버를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추천할 넘버는 이 곡이 아닙니다. 저의 레미제라블 속 ‘최애’ 넘버는 ‘집주인(Master of the house)’입니다. 우리가 ‘블랙코미디’라는 말 많이 하죠. 블랙코미디는 웃기긴 한데 분위기가 어둡고 결국 무엇인가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형식의 코미디입니다. 이 곡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레미제라블에서 이 넘버를 부르는 여관집 주인, 떼나르디에 부부는 혁명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손님들을 등쳐 먹는 데에만 집중하는 ‘극혐’ 부부입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어둡기만 한 공연 중 떼나르디에 부부의 공연은 ‘유일하고도 큰’ 웃음 포인트입니다.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 왜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데 노래를 부르는 것이냐’고 말하곤 하죠. ‘서사가 없는 극’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께 레미제라블을 추천합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뮤지컬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뮤지컬 속 넘버는 대사고, 연기고, 춤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 곡이 잘 보여주고 있죠.

제가 관람한 공연에서 떼나르디에 부부의 ‘부인’ 역할은 박준면 배우가 맡았었는데요. “공주 마마 납셨네”라며 코제트를 괴롭히며 등장할 때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박준면 배우는 2013년 이 배역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떼나르디에 부인을 박준면 배우 말고 다른 배우가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요. 하반기에 있을 공연 오디션이 진행된다고 하니 캐스팅을 기대해봅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콘서트 유튜브 캡처 화면.

또 만약 영상으로 이 넘버를 찾아보고 싶은 분들께는 아런 암스트롱과 제니 갤러웨이가 등장하는 ‘레미제라블 10주년 공연’ 콘서트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뮤지컬 넘버가 콘서트에서 흘러나오는데 이렇게 흥겹고 웃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갈지 몰라요.

가사만큼 간주도 중요해: 엘리자벳, ‘나는 나만의 것'

두 번째 소개할 넘버는 모두들 잘 아는 뮤지컬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입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듣는 사람이 있고 ‘멜로디’를 듣는 사람이 있죠. 저는 ‘가사파’인데요. ‘나는 나만의 것’은 뮤지컬 가사도 멜로디도 아니고 이 넘버를 부르는 ‘배우’에게 매료돼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명곡입니다. 이 넘버의 가사는 ‘난 싫어, 이런 삶, 새장 속의 새처럼’으로 시작합니다. 도입부에서는 엘리자벳이 혼자 읊조리듯 이런 삶이 싫다며 인형 같은 내 모습이 싫다고 노래하며 무대를 서성입니다.

‘내 주인은 나야’라고 말하지만 처음에는 큰 소리로 말하지 않죠. 그러다 ‘눈 부신 들판을 말 타고 달리기를 원한다’며 본격적으로 탈출을 꿈꾸는 엘리자벳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리고 또 ‘내 주인은 바로 나야’라는 가사가 등장하죠. 엘리자벳은 처음에는 말을 타고 달리고 싶다더니 곡 중반부터는 ‘이제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겠다’고 말하며 본격적으로 스케일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곡의 백미는 ‘간주’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유를 원한다고 한참을 말하던 엘리자벳이 커다란 드레스를 입고 봇짐을 들고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엘리자벳을 꽤 많이 본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자본’의 힘을 느낍니다. 정말 엘리자벳이 드넓은 들판과 숲을 지나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다 100% 훌륭했습니다) 조정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조정은 배우에게 이런 제 마음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베토벤’을 본 후로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이제 조정은 배우가 떠오를 정도인데요. 간주 이전 엘리자벳이 자유를 ‘원하는 모습’과 간주 이후 엘리자벳이 자유를 ‘쟁취하러 떠나는 모습’은 단연 조정은 배우가 가장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빛을 받으면서 나아가는 모습이 오랜 기간 사랑 받아 온 ‘씨시’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 같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건 개인 취향입니다!)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번역은 얼마나 중요한가: 위키드의 ‘파퓰러(Popular)’

뮤지컬 ‘위키드’는 해외에서도 ‘한국 위키드가 최고다’라는 찬사를 받는 공연 중 하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뮤지컬에서 ‘파퓰러’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곡은 아리아나 그란데도 부른 바 있어 워낙 유명하죠. 저는 무엇보다 이 곡의 번역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위키피디아에는 ‘영어 원문’과 ‘직역’과 ‘한국어 공연 가사’가 함께 게재돼 있기도 합니다.

'Popular! You're gonna be popular!'라는 부분을 ‘넌 곧 인기가 많아질 거야!’라고 부르지 않고 ‘파퓰러! 넌 이제 곧 파퓰러’라고 부르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보기만 해도 입에 착 달라붙는 것 같지 않나요?

뮤지컬 위키드의 한 장면.

저는 정선아 배우가 글린다 역할을 맡은 공연을 봤는데요. ‘파퓰러’라는 단어를 어찌나 맛깔나게 발음하는지 집에 와서도 한동안 ‘파퓰러~’를 읊조리고 다녔습니다. 이 곡은 가수가 아닌 제가 봐도 꽤 어렵게 들립니다. 연기도 잘해야 할 거 같고, 중간에 숨쉬는 연기도 필요하고, 박자도 느렸다 빨랐다···옆에서 수줍은 표정을 짓는 엘파바에게 시종일관 ‘파퓰러하게 해줄게’라고 말하는 글린다를 보면 없던 자존감도 생겨나는 기분입니다. 저는 자신감이 낮아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곡을 듣습니다. ‘중요한 건 예쁜 척, 잘나가는 척, 겉모습이 중요해. 그게 바로 파퓰러’라는 가사를 듣다 보면 사실 ‘자신감이라는 게 별 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가벼워지거든요. 글린다처럼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확신을 갖자고 생각하곤 합니다.


◇사실 고작 세 곡만 찾는 건 너무 어려웠습니다. 모든 뮤지컬에는 ‘최애 넘버’가 있거든요. 여러분들의 최애 넘버는 무엇인가요. 오늘 대극장에서 주로 공연되는 라이선스 공연의 넘버를 추천해봤는데요. 다음엔 또 다른 주제로 넘버 플레이 리스트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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