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기꾼’ ‘여신’부터 ‘탈코’까지···인생샷 뒤의 여자들[책과 삶]

이영경 기자 2023. 7. 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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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만개 뒤덮은 외모·패션·풍경
우연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순간
“인생샷은 알지만 인생샷 찍는 여성들은 모른다”
장미덩굴에서 인생샷을 찍는 장면. 제주 카페 ‘북촌에 가면’ 제공

인생샷 뒤의 여자들

김지효 지음|오월의봄|344쪽|1만8500원

인스타그램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인생샷’을 검색해보자. 무려 240만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 세련된 패션, 빼어난 경치가 ‘삼위일체’된 사진들이다. 주로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인생샷을 그저 잘 나온 ‘셀카’ 정도로 치면 서운하다. 철저히 계획적이며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생샷을 찍기 위해 예쁜 카페나 멋진 장소를 사전 ‘온라인 답사’하고, 배경에 어울리는 옷을 세심하게 고른다. 무엇보다 자신을 배경과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처럼 찍어줄 친구나 남자친구와 같은 ‘인간 셀카봉’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었다고 끝이 아니다. 수백장의 사진 중 피드에 올릴 것을 고르고, 실물보다 아름답지만 너무 많이 다르지는 않게 적절한 보정을 거친다. 그렇게 건진 한 장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후 ‘좋아요’나 댓글을 달아주는 관중이 생겼을 때, 인생샷은 비로소 완성된다.

인생샷은 비단 젊은 여성들의 문화에 그치지 않는다. 인생샷 문화는 관광지나 카페, 식당, 숙소 등 도시 전반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예쁜 카페나 유명한 식당 앞에 선 긴 대기줄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사진을 찍으면 그림같이 잘 나올 장소를 적극 홍보하며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낙후된 지역이 ‘힙스터 성지’로 떠오르며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일어난다. “대한민국 곳곳이 인생샷을 위한 ‘인스타 시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생샷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시하는 이들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거나 남들에게 관심과 부러움을 사고 싶어 하는 ‘관종’(관심종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생샷 뒤의 여자들>은 인생샷을 찍고 올리고 보는 행위 뒤에 가려진 젠더·권력·차별 문제 등을 섬세하게 분석한다.

“우리는 인생샷은 알지만 인생샷을 찍는 여성들은 모른다.”

김지효는 ‘인생샷을 찍는 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찍는지, 누가 찍어주는지, 누가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를 하는지를 들여다보면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와 이에 적응하거나 저항하는 여성들의 실천이 보인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인스타그램 인생샷 문화에 참여했던 20대 여성 12명을 만났다. 여성학 석사 논문을 다듬고 보태 펴낸 책은 여성에게 부과되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이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여성들부터 ‘인플루언서’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산업구조, 디지털 페미니즘과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인생샷 뒤에 있는 여자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겹쳐진 목소리였고, 피드와 피드 사이엔 연대와 갈등, 순응과 저항, 혼란과 모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셀피’와 관련된 이미지. 언스플래시
슬도 바위 인생샷.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인은 일찍이 ‘셀카’의 민족이었다.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셀피(selfie)를 선정하기 10년 전, 한국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디지털포토를 뽑았다.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전부터 회의용 웹캠인 하두리캠을 이용해 셀카를 찍었다. ‘얼짱카페’를 중심으로 수십만명이 셀카를 올리고 외모를 평가했다. 인생샷은 셀카의 진화된 버전이다. 아름다운 얼굴, 날씬한 몸, 트렌디한 패션, 여기에 힙한 장소가 합쳐져 완성된다.

저자는 다른 SNS와 차별화되는 인스타그램의 특성에 주목한다. 사진 없이 글만 올릴 수 없는 인스타그램은 철저하게 이미지 중심의 플랫폼이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자신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퍼스널컬러 컨설팅을 받고 향수를 고르고, 말투와 화법을 점검한다면, 인스타그램에선 피드를 통해 이미지를 관리한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차분하게’ 또는 ‘엉뚱함과 귀여움’ 등으로 콘셉트를 정하고 이에 어울리는 사진만을 전시하며 세심하게 관리했다. 너무 많은 셀카도 금물이다. 지나치게 셀카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인생샷을 찍을까? 다른 사회적 자원이 없는 젊은 여성에겐 외모가 중요한 자원으로 작용한다. 또래 집단에서 남성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가가 평판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 인터뷰이는 “여학생들의 평판이 인기 많은 남학생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은 ‘좋아요’와 댓글을 통해 남성들의 선호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플랫폼이기에 ‘인친’(인스타그램 친구)과 ‘실친’(현실 친구)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많은 팔로어를 확보하고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터뷰이들은 “인스타그램이 하나의 스펙 같다” “숫자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지표” “숫자는 일종의 계급”이라고 말했다.

‘#럽스타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남자친구와의 애정을 과시하는 사진도 올린다. 외모와 이성애 연애를 중심으로 전시되는 사진들은 이성애 중심의 성별 권력구조와 연결되어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남성이 공적 영역에서 업적을 남김으로써 ‘남자’가 된다면,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확인했다”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로운’ 선택권 행사를 통해 아름다운 셀카와 이성애를 전시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준으로 여성을 평가하고 성원권을 부여해왔는지 정직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에선 여성의 외모에 대한 기존 여성혐오 구도가 반복된다. 포토샵과 사진 보정 앱을 통한 수정은 필수지만 실물과 많이 다를 경우엔 ‘셀기꾼’이란 비난을 받는데, 이는 ‘강남미인’ ‘화떡녀’(화장을 떡칠한 여자)와 유사하다. ‘화떡녀’와 ‘청순녀’의 이분법은 ‘셀기꾼’과 ‘원본미인’의 구도로 반복된다.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 여성들은 ‘인스타충’으로 불리며 ‘김치녀’와 ‘된장녀’의 계보를 잇는다. 예뻐 보이되 너무 예뻐서는 안 되며, 예뻐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는 점에서 여성들은 자신감과 자기혐오 사이를 오간다. “여성들은 자기 수용과 자기 부정,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오가다 자꾸만 발이 엉킨다.”

카카오톡에서 판매중인 이모티콘 ‘나 사진 골라줭! 프사티콘!’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 연대’가 이뤄지기도 한다. ‘인간 셀카봉’이 되어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고르고, 보정한 사진이 실제와 너무 다르지 않은지 판단해주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행위를 통해 서로의 사진에 대한 진정성을 보증해주고 수호해주는 것이다.

인생샷 문화는 2015년 메갈리아의 출현으로 시작된 디지털 페미니즘 운동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미러링’ 전략으로 온라인 공간의 남성중심성을 폭로한 메갈리아는 이후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운동, ‘미투 운동’(#metoo), ‘탈코르셋 운동’으로 이어졌다. 디지털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한 20대 여성은 인생샷 문화의 주 참여자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만난 인생샷은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 됐다. 인생샷과 페미니즘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이들은 인생샷을 페미니즘에 반한다며 비판했다. 인생샷을 올리는 페미니스트는 자기모순적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대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성실히 듣는다. 인생샷을 강하게 비판하는 여성, 여전히 인생샷을 찍지만 그 중요도가 덜해진 여성, ‘귀여운 나’에서 ‘존나 잘생긴 나’로 스타일이 바뀐 여성 등 다양한 이들이 공존했다.

저자는 ‘인스타그램 페미니즘’의 한계도 명확히 짚는다. 어떤 이들은 페미니스트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온건하고 대중적으로 전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페미니스트인 나’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문제로 귀결됐다. 페미니즘이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포장해야 하는 ‘브랜딩’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마치 셀카를 보정하듯 페미니즘을 보정”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모습. 언스플래시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논문과 책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인생샷 문화를 위한 ‘변론’을 펼치고자 했던 저자에게 어느 날 삭발한 여성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이들로 인생샷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를 만나러 온 것이다. 저자의 연구는 흔들리고 만다. 결국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까지 연구에 녹여 디지털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변화와 혼란을 겪은 ‘인생샷 뒤의 여자들’ 모습을 총체적으로 전한다.

“차별받는 사람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기존의 세계를 미워하며 닮아가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페미니즘 실천과 현실적 압박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 바로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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