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충무공을 6·25가해자 편향 `더러운 평화` 소품 삼는 꼴
과학논쟁 회피, "韓어민 다 죽는다"며 日 누벼
日 우군 713석 중 8명…친북·친중·반핵코드
1주앞 "이기는 전쟁? 더러운 평화" 강변한 明
反평화적 이분법 남발…北中에만 꺾이는 잣대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2일 광화문광장 내 사람 키보다 높은 이순신 장군 동상 받침대에 올라 기습 점거시위를 했다. 거북선 모형 뒤에 선 이들은 '이순신 장군이 지킨 바다 민주노총이 지킨다'는 현수막을, 다른 일행은 '윤석열 퇴진하라'가 적힌 것을 펼쳤다. 그 이틀 전(10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당대표실 백보드를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림'으로 장식했다.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가 공통 구호다. 노골적인 연대는 둘째 치더라도 '위화감'이 적잖은 광경이다.
임진왜란 때 지휘한 36번 해전에서 전승(全勝)한 민족의 위인 이순신 장군과, 조선(造船) 기술의 '과학력 승리'를 보여준 거북선을 일방의 '정치선전 소품'으로 삼은 점부터. 일본 동북부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오염처리수를 태평양 방류하면 한국 해역이 정말 위험해지느냐는 '과학적 논쟁'은 뒤로하고, 동조하지 않으면 왜군 취급하겠단 태도도 그렇다. 집권기 외교수장들의 'IAEA(유엔 산하 국제원자력기구) 존중' 입장은 확 뒤집고, 당장 "우리 어민 다죽는다"더니, 국회의원들은 일본항공(JAL)에도 몸을 맡기며 일본 본토를 누볐다.
그 직전에 민주당은 일본 초당적 의원모임인 '원발(원자력발전)제로 재생에너지 100'을 주도하는 입헌민주당 중의원인 곤도 쇼이치·아베 토모코 의원, 사민당 핫토리 료이치 간사장(원외)과 면담을 했다. '자국 원전 철폐'라는 코드가 맞았나 보다. 구체적 논의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튿날(12일) 민주당 의원 11명은 옛 사회당을 모체로 한 입헌당·사민당·레이와신센구미 소속 의원 8명과 함께 삼중수소 공포론에 입각한 방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입헌당이 총 132석, 레이와신센구미는 총 8석임을 감안하면 참여가 저조하다. 일견 '한일 의원 19명이 오염수 문제로 결집'했다고 주목할 만 하지만, 양국 정상과 정부는 '반대를 위한 반대' 정치연대를 확인했다며 식상함을 느꼈을지도.
한일 정치상황이 시차가 있을 뿐 똑 닮았기 때문이다. 일본 야권은 올해가 되기 전부터 '누굴 위해 ALPS 처리수를 오염수라 부르냐'는 지적, 나아가 '풍평(風評·뜬소문) 가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립집권 경험에도 사민당이 '몰락'한 배경 역시 낯설지 않다. 사회당 시절부터 친북(親北)성향이 뿌리깊었는데, 2002년 김정일이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면서 이를 부정하던 사민당 지지가 이탈했다. 중국에도 우호적이다. 지난해 10월 시진핑 주석 3연임을 앞둔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에 일본에선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대표만이 축전을 보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때 축전을 보내 중 관영매체가 주목한 해외 17인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방일단과 동행한 혁신계에 '일본공산당'은 없었다. 총 21석인 데다, 일본 내 반핵·오염수 선전에 앞서간 정당이지만 희한한 일이다. 중국령 홍콩·마카오의 오염수 공세까지 국제사회 여론처럼 소환하던 민주당의 적극성에 비춰보면 더 그렇다. 공교롭게도 일본공산당은 북 노동당·중 공산당과 노선경쟁을 취하며 평등·소수자 인권 중시, 반(反)패권으로 일관해왔다. 일 공산당은 2020년 1월 강령 개정 때 중공의 동·남중국해 세력확장, 홍콩·신장위구르 인권탄압에 "대국주의 행동"이라 비판했다. 2021년 7월 중공 창당 100주년 행사엔 일 정당 중 유일하게 축전을 거부했다. 지난 5월 기시다 내각의 군비확장 반대를 의제로 중측과 만났지만, 관계개선은 미지수다.
민주당이 준 '위화감'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순신 장군과 더러운 평화론(論)이 결부되는 모습이 영 개운치 않다. 이재명 대표는 '이순신 백보드'를 내걸기 엿새 전(4일) 대북압박을 반대하는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 대표단과 간담회에서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집권 7개월 전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공언한 것과 겹쳐 보인다. 그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하고,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미지근하던 태도와 함께. 6·25 전쟁 가해세력이 넘보지 못할 정신적·실질적 힘을 기르자면 전쟁광으로 몰듯 하는 이분법부터가 평화적이지 않다.
혹자는 을사늑약 체결 직전 이완용 어록에 빗댔다. "일본은 한국 문제 때문에 두 번이나 큰 전쟁을 치러 이제는 러시아까지 격파했으니 한국에 대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일본 천황과 정부가 타협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우리 정부도 일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마땅하다"던가. 전쟁 위협에 알아서 기자니, 전근대 약소국도 아닌 세계 10위권 강국 대한민국에선 비슷한 말조차 웃음거리다. 이 대표는 첫 대권도전에 시동을 걸던 2016년 12월 한 신문 인터뷰에서부터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했다. 주한미군을 미국 이익으로 치부하고, 미군과 분리를 초래할 '전시작전권 환수'를 주장했으며, 한일GSOMIA와 사드배치는 물리고 싶어했다. 북핵 언급은 없었다.
더러운, 가장 나쁜 평화를 말하고 동조하는 이들의 행보는 이중잣대로 아리송하다. 상호주의 개념조차 없는 '9·19 군사합의'로 방어목적 감시초소와 정찰기능은 물리고, 세계최강 동맹국과 정례훈련은 축소시키려 했다. 100여년 전 식민지배를 향한 분노는 1950년 북·소에 침략당한 6·25 전쟁엔 꺼뜨린다. 동족 간 "내전"이랬다가 "미·중전쟁"이랬다가 핑계는 제멋대로다. 6·25엔 전범(戰犯)이 없는 것처럼, 또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라는 역사왜곡은 못들은 것처럼 한다. 전직 주한미국대사와 미 NSC보좌관에겐 20세기초 흔하던 '콧수염 스타일'조차 '일제 총독' 연상 수단으로 들먹인 반면 주한중국대사에겐 당대표와 의원들이 달려가 '베팅' 말씀을 받아적었다.
일본과는 늘 '경제전쟁'을, 대중문제엔 '경제종속'을 전제한 레토릭이 난무한다. 군대 자격도 없는 자위대 '군홧발'에 겁먹으라면서도 일본행은 잦다. 환경 측면에서도, 삼중수소수를 공포의 상징으로 띄우다가도 '후쿠시마의 48배' 중국 원전발(發)엔 함구한다. 인권관 이중잣대는 티베트를 찾은 방중 의원단이 적나라했다. '오염수 사람들'은 서울에서 불과 450km 떨어진 북한 내륙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6번씩 핵을 터뜨려 인근 주민이 '귀신병'에 희생된단 말이 2016년부터 나와도 무감각했다. 2017~2018년 방사능 피폭 검사를 받은 '풍계리 인근 거주 이력' 탈북민들로부터 암 발생 위험수준(100mSv)을 높게는 약 14배 상회하는 수치가 나왔지만 2019년 통일부 장관은 원인 불명이라 잡아뗐다.
애초 국내정치만 봐도 상대당 대통령 조기퇴진 시위를 일상화하고, 총선 공천 보고 호전광(好戰狂) 경쟁하는 듯한 정치인들 태도에서 '평화'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가해자 편익에 치우친 더러운 평화론에 '이기는 전쟁'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을 들러리세우는 건 여러 모로 거북하다. '이기는 평화'에 정파 불문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좀 보일 수 없나.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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