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 ‘5·5·5·5·5’ 비밀을 아시나요?[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7. 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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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꽃받침·수술·씨방·암술머리가 5·5·5·5·5
풍선꽃·도랒·도래·돌가지·길경(桔梗), 백약(白藥) 이름도
뿌리에 사포닌 진해 거담제…동북아 외에서는 잡초 취급
돼지고기· 굴 궁합 안좋고 배·생강과 궁합이 좋아
백도라지꽃. 꽃잎은 끝이 5갈래로 갈라지며, 꽃받침도 5조각으로 갈라진다. 수술은 5개, 씨방도 5실, 암술 머리도 5개로 갈라진다. 도라지꽃은 초지일관 ‘다섯’을 고수한다. 연두색 꽃은 꽃잎이 갈라지기 전의 풍선 모양으로 도라지꽃은 ‘풍선꽃’이라고도 한다. 2019년 7월 16일 서울 용산 삼각지 꽃집에서

<얇게 받쳐 입은/보랏빛 고운 적삼//찬 이슬 머금은/수줍은 몸짓//사랑의 순한 눈길/안으로 모아//가만히 떠올린 동그란 미소//눈물 고여 오는/세월일지라도//너처럼 유순히/기도하며 살고 싶다//어느 먼 나라에서/기별도 없이 왔니//내 무덤가에 언젠가 피어/잔잔한 연도를 바쳐 주겠니>

이해인 수녀의 시 ‘도라지꽃’이다. ‘보라빛 고운 적삼’이란 표현처럼 대부분 오묘한 남보라색이 많은 도라지꽃은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에 널리 분포한다. 그 외 지역에선 잡초 취급하며 대우를 못받는다고 한다. 자생종은 꽃이 지고 그 아래에 씨방이 생기는데, 현재 재배하고 있는 품종은 모두 이것을 채취해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도라지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선꽃(Balloon flower)’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꽃잎이 펴지기 전 풍선처럼 망울망울 부풀어 하늘로 날아갈 듯한 도라지꽃 봉오리는 톡 대면 터질 것처럼 보인다. 꽉 다문 조개 입처럼 다섯 갈래 꽃잎은 쉽사리 열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 ‘폭’ 하고 터지며 새 세상을 맞이한다.

삼청동 청와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불로문(不老門)을 들어서면 소정원에 여름꽃인 남보라색 도라지꽃이 피어있다. 2022년 6월26일 도라지꽃이 풍선 모양에서 막 꽃잎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도라지꽃 만큼 ‘5(다섯)’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식물이 있을까 싶다. 꽃잎은 퍼진 종 모양으로 끝이 5갈래, 꽃받침도 5조각으로 갈라진다. 수술과 씨방이 각각 5개이다. 결국 암술 머리도 5개로 갈라진다.

도라지꽃은 초지일관 ‘5·5·5·5·5’를 고수하는 지조있는 식물이다. 특이하게도 수술이 노란 꽃가루를 털리고 나서야 뒤늦게 암술이 벌어지며 핀다. 이는 자기 꽃가루받이(수분)를 피하기 위한 나름의 치밀한 생존전략이다.

인사동 골목은 여름 남보라색 도라지꽃이 반겨준다. 2022년 7월12일

도라지는 ‘도랒’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고, 사투리로 ‘도래(도레)’ ‘돌가지’라고도 한다.

한자어로는 길경(桔梗), 백약(白藥),경초(梗草), 고경(苦梗)이라고도 한다.

도라지꽃 설화에 따르면 도라지라는 이름의 소녀가 청년을 계속 기다리다가 그녀의 영혼이 도라지꽃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남매가 산에 갔다가 둘 다 추락사한 뒤 도라지꽃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리꽃과 함께 핀 백도라지 꽃. 2022년 7월12일 인사동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는 꽃’이라고 해서 ‘도라지’가 됐다는 설도 있다.솜방망이처럼 곧장 하늘로 뻗어 몽실몽실 풍선처럼 부풀다가도 ‘펑’하고 꽃잎을 열면 고개를 돌려버린다.

남녀의 기다림과 한이 서려 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도라지꽃의 꽃말은 ‘따뜻한 애정’‘영원한 사랑’이다.

도라지는 더덕과 함께 널리 알려진 초롱꽃과 식물이다. 다년생이며 줄기가 곧은데, 줄기에 톱니 모양 잎이 3개 마주보며 달렸다. 키는 1~1.5 m까지 자란다.

도라지꽃은 7∼8월에 피는 여름꽃이다. 야생 도라지꽃은 보통 보라색이 많고 흰색은 매우 드물지만 재배 도라지꽃은 흰색이 대부분이다. 원예용으로 개량된 분홍색 도라지도 있다. 언뜻 보면 매발톱과 유사해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흰색 꽃이 피면 백도라지, 꽃이 겹으로 피면 겹도라지, 흰색 꽃이 겹으로 피는 겹도라지는 흰겹도라지라고 한다.

뿌리에는 사포닌 성분이 많아 한약재로 사용한다. 진해 거담제로 심한 기침이나 가래, 천식 치유 효과가 있다. 일찍부터 식용 약용으로 사용돼 우리 민요에 등장할 정도로 친근하며 김치나 나물 등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해왔다. 추석이나 설날 나물 무침에 콩나물, 고사리 등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것이 도라지 무침이었다.

도라지꽃은 수술과 씨방이 각각 5개다. 실핏줄이 진 풍선 모양의 꽃망울이 ‘펑’하고 터지기 직전이다. 2022년 6월

보통 폐나 기관지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한약방이나 한의사들이 말려서 팔기도 하며, 가끔 내과 병원에서 도라지 차를 권하기도 한다. 실제로 목의 염증 등을 진정시키는 약인 용각산도 주 성분이 도라지 가루다. 생약 성분이 들어간 약품의 주성분 중 ‘길경’이라고 표시된 성분이 바로 도라지이다.

도라지는 흔한 데다가, 싸고 부작용이 없다. 돼지고기, 굴과는 궁합이 좋지 않은 반면 배와는 생강과는 궁합이 괜찮은지, 배도라지즙이나 배도라지음료 등이 많이 나온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심심산천에 백도라지/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에 철철 넘친다> 이 민요에 등장하는 야생 백도라지는 요즘은 매우 귀한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일각에서는 10년 넘은 도라지는 어설픈 인삼보다 훨씬 낫다는 말도 있다.도라지꽃은 양귀비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는 ‘백도라지’가 아예 양귀비를 뜻하는 은어로 사용될 정도다.

글·시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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