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덕질’을 위한 잡지, ‘글리프’를 소개합니다

박세희 기자 2023. 7. 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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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덕력평가 문제지’ 유정 영역.

문제) 다음 중 정유정이 살거나 여행했던 적이 있다고 밝힌 지역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루체른 ②히말라야 ③증도 ④오사카

‘작가 덕질’을 위한 독립출판 잡지 ‘글리프’의 부록 ‘모의덕력평가 문제지’는 그야말로 작가 덕후들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쓴 작품 속 내용의 세세한 부분부터 작가 개인의 일상에 관한 것까지.

K-팝 아이돌이나 배우를 파고 들던 ‘덕질’이 소설가, 시인 등을 향하고 있다. 아이돌의 전유물이었던 ‘덕력평가’까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글리프’는 ‘작가덕질 아카이빙 잡지’를 표방한다. 1편 정세랑을 시작으로 정유정, 구병모, 김금희, 강화길, 정유정, 김초엽, 최은영 등 작가들을 다뤄왔다. 작가의 출생부터 가장 최근작을 내기까지의 연대기를 짚고 우리가 ‘왜’ 이 작가를 사랑하는지를 풀어낸다.

잡지를 읽다 보면 에디터들 모두가 작가 덕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이 궁금해졌다. 김다희(31), 박준기(30), 이민재(30), 홍혁진(31). 대학 국어국문학과 학부 시절 소설 창작학회에서 만났다는 이들은 "실제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들과의 일문일답이다.

-어떤 일을 하는 누구신가요

"‘글리프’를 제작하는 엠디랩프레스 에디터들은 현재는 4명인데요, 모두 국어국문학과 학부 시절 소설 창작학회에서 만난 친구들입니다. 졸업 이후 각자 출판, 게임, 디자인, 콘텐츠 마케팅 등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회초년생 때부터 함께 독서 모임을 하다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글리프’ 를 만들게 됐나요

"처음에는 자주 모여서 책을 읽고 문학을 공부하던 친구들끼리, 각자가 갖고 있는 다소간의 불만과 수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대체로 ‘읽고 싶은 잡지가 없다’거나 ‘문학을 다루는 비평들이 재미가 없다’ 같은 불만으로 시작해 ‘우리가 읽고 싶은 잡지’를 만들자, 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죠. 문학 분석에 관한 텍스트는 대부분이 논문 형식이고 논의의 대부분은 교실 내 수업시간에만 이뤄진다는 것을 자주 겪었습니다. 대중 독자 입장에선 블로그 리뷰나 북스타그램, 출판사 서포터 등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너무 얕은 정보들만 접하고 있었고요. 결국 실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노는 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작가 덕질’이라는 키워드는 어떻게 생각했나요

"문학이라는 말 자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필터들이 있고, 그로 인해 문학과 독자가 거리감을 갖게 된다고 봤어요. 그럼 우리가 문학을 얘기할 때는, 이 필터들을 모두 없애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거죠. 여기서 말하는 필터란, 평론·비평이라는 말로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어렵고 난해한 공기들, 혹은 평론가가 픽하고 고르는 문단 시스템, 한 작가를 최선을 다해 띄워야만 하는 출판사 마케팅 문구들 등등입니다. 그래서 이 요소들을 다 벗겨내고, 진짜 작품과 작가에 대해 정확히 읽고 말해주는 장을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작가 덕질’이라는 단어, 컨셉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에디터들 모두 작가 덕후로 보입니다. 어떤 덕질까지 해보셨나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작가와 작품에 대해 추천(영업)을 많이 하고요. 적어도 3~4개월의 시간을 한 작가의 작품만 읽으며 작가의 세세한 이력들을 모두 좇고 나면, 그 작가님을 작가로 바라보기 이전에 내적으로 친밀한 개인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또 작가를 좋아하다 보면 그 작가의 취향까지도 조금씩 알게 돼서, 실제로 그 작가가 사용한다는 물건들을 따라 구매한 적도 있죠."

-이전에도 ‘애독자’는 있었습니다. 최근의 ‘작가 덕후’와 차이는 어디서 온다고 느끼시나요

"조금 더 직접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고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점이 차이인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 작가 덕후 분들의 경우 오픈채팅방을 운영하기도 하고 2차 창작을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작품으로 표현된 세계를 직접 자신의 상상력을 발전시켜서 재현하거나, 그 작품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와서 또 다른 창작으로 오마주하거나 하는 등 적극적으로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일방향적인 인풋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에 화답하는 아웃풋을 굉장히 다채롭게 표현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작가 덕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확한 단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가님 참 좋은데… 이 작품 참 좋은데… 하면서 막상 왜 좋은데? 라고 물으면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은 마음,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더 깊이 읽어보는 디깅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왜 좋은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죠. 이에 더해 영업을 통해 그 좋아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해서 함께 나눌 수도 있어요. 애정하는 작가와 그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나눌 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글리프’가 독자들에게 어떤 잡지로 기억됐으면 하시나요

"독서의 경험은 다른 취미보다 조금 더 외로운 편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 ‘글리프’가 함께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미지의 또 다른 독자로서 연결점이 됐으면 합니다. 함께 문학과 작가에 대해서 때론 가볍게, 때론 깊이 있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같은 잡지로 기억되고 읽혔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어느 특정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거나 그 작가의 활동 흐름을 알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고 찾게 되는 텍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참고. 정유정 모의덕력평가 문제의 답은 1번이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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