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가 죽는다] ⑤중독 경험 나누며 마약 유혹서 벗어난다

구정모 2023. 7.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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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중독 자조모임 '압구정NA' 매주 개최…회복의지 있으면 누구나 참여가능
참석자들 자기 이야기 털어놓고 다른이 경험 경청…의존성 탈피하고자 재정자립 추구

(서울=연합뉴스) 이슈팀 = 11일 오후 6시59분. 사회자는 벨을 울리고 참석자들에게 곧 모임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1분 후인 오후 7시. 사회자는 다시 한번 벨을 울리고 모임의 개시를 선언했다.

모임이 열린 곳은 서울 강남구의 한 교회 건물 3층 교육실. 타원형으로 배치된 의자에 둘러앉은 참석자 10여명의 면면을 보면 1명을 제외하곤 20~30대였다.

이들은 여느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홍대나 이태원 등에 가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청년들이었다.

무슨 이유로 이들은 이날 저녁 이곳에 모였을까. 사회자는 말한다. "우리가 왜 오늘 여기 왔으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묵상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임의 정체를 밝힌다. "이 모임은 약물 중독자의 단약(斷藥)을 위한 자조모임입니다."

그렇다. 이날 이곳에서 이른바 '익명의 약물중독자들 모임(NA·Narcotics Anonymous)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약중독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인 '압구정NA' 모임 현장 [이건희 인턴 기자 촬영]

NA는 약물 중독에서 회복 중인 이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약물을 더는 하지 않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게 서로 돕는 자조모임이다.

NA는 2016년 기준 139개국에서 매주 6만7천여개 모임이 진행되는 전 세계적인 모임이다. 국내에선 서울 5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10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날의 '압구정NA'는 매주 화요일에 이곳에서 모인다.

NA엔 특별한 자격요건이나 제약조건이 없다. 약물을 끊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사회자도 참석자도 모두 약물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모임은 오후 7시 정각에 시작해 1시간 동안만 진행된다. 그리고 묵상과 NA 책자 낭독 등 정해진 절차를 따른다. 마약중독의 삶에서 부족했던 규범과 규칙을 체득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NA 책자는 사회자와 참석자 모두 돌아가면서 읽는다. NA 책자엔 '중독자란 누구인가', 'NA 프로그램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 모임에 왔는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중독자란 누구인가'엔 참석자들에게 뼈아픈 대목이 있다. "간단히 말해 중독자란 약물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살아가는 남녀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끝은 항상 똑같습니다. 교도소, 정신병원 혹은 죽음."

NA 책자를 들고 있는 '압구정NA' 참가자 [이건희 인턴 기자 촬영]

낭독이 끝나고 나서 사회자는 신규 참석자를 소개하며 기념으로 '회복 열쇠고리'를 선물했다.

NA모임에선 첫 참석자뿐 아니라 단약한 지 30일, 60일, 90일 등 마디가 되는 날을 기념해 열쇠고리를 준다.

이후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떤 주제를 던질 수 있고, 아니면 그냥 묵상의 시간을 재차 가질 수 있고, 그도 아니면 신변잡기식으로 말하면 된다.

단, 한 참석자가 말할 때 나머지는 듣기만 하고 어떤 논평도 하지 않는 게 규칙이다.

이날 유일한 70대 참석자이자 한국NA 대표인 임상현(72) 씨는 이에 대해 "NA 참석자들은 모두 평등하고, 그런 평등성을 유지하려면 누군가를 지적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민간 약물중독재활센터인 '경기도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를 운영하고도 있다. 이날 압구정NA 참석자 상당수가 경기도 다르크의 입소자들이었다.

한 참석자가 '안타까움'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기도 다르크 입소자다. "오늘 멤버 한 명이랑 싸웠다.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크게 마찰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시설 식구들과 마찰이 꽤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 화법이나 표정에서 소위 '띠꺼움'이 느껴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거 안 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령조로 말하더라. 언어적인 습관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느꼈다."

또 다른 참석자도 같은 주제로 말했다. "오늘 시설에 있던 누가 개인 사정으로 시설을 퇴소했다. 그전에도 한명이 퇴소했다. 저희와 같이 회복으로 가는 전우조, 가족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냥 같이 회복으로 가지 못한 게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이 감정은 같은 방을 쓰던 형이 재발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 재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에게 경각심이 생겼고, 마약이 증오스러웠다."

참석자의 말이 끝날 때마다 침묵의 시간이 잠시 흘렀지만, 이윽고 다른 참석자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엔 신규 참석자가 말문을 열었다. "요즘 마약 관련 뉴스가 정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마약중독자를 보고 치료받고 회복돼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더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회복자 중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도 많다. NA와 다르크를 통해 회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많이 알려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우리가 우울증이나 당뇨병과 같이 아픈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줄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오후 8시가 되자 사회자는 모임이 끝났음을 알리고 모금 봉투를 돌렸다.

NA는 '자조'(自助)모임에 걸맞게 외부의 기부금을 받지 않는다. NA 회원들이 십시일반을 해 운영비를 마련한다.

압구정NA는 교회에서 모임 장소를 무료로 제공해주려 하지만 일정 금액을 감사헌금으로 내고 있다고 한다.

임상현 대표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의존적인 사람들이 많다"며 "자립하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하기 위해 외부 후원금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압구정NA'에 참석한 임상현 대표 [이건희 인턴 기자 촬영]

NA는 1953년 6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의 첫번째 모임을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마약중독자 자조모임이다.

국내에서 2004년 6월 처음 결성됐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이 과거 공주치료감호소(국립법무병원 전신)에서 근무했을 때 자신이 치료했던 중독자들과 만든 자조모임인 '이화모임'이 모태가 됐다.

NA는 어느 나라에서든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즉, NA는 '12단계'라는 프로그램과 '12전통'을 준수한다.

NA 프로그램의 핵심인 12단계는 회복자들의 시행착오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1단계 '우리는 중독에서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스스로 수습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시인했다'에서 12단계 '이런 단계로 생활해 본 결과, 우리는 영적으로 각성했고, 약물 중독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으며,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이런 원칙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로 구성됐다.

마약중독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인 '압구정NA'에 참석한 이들의 뒷모습 [이건희 인턴 기자 촬영]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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