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2] 당신의 아레테는 무엇인가
[편집자주] 유비무환! 준비된 은퇴, 행복한 노후를 꾸리기 위한 실전 솔루션을 욜로은퇴 시즌2로 전합니다.
(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 인생 후반에 일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강의 때 물어보면 자기실현, 건강, 시간 보내기 등으로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일이 가지는 비경제적 가치다.
적정한 일은 건강을 증진하고,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며, 관계와 교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장수 시대에 인생 후반 일의 가치는 여전히 과거의 범주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일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밀고 나갈 수는 없을까?
이노 다다타카(1745~1818)는 일본 에도 시대의 사람이다. 17세 때 양자로 들어가 크게 부를 이루었으나 50세 때 장남에게 가업을 물려 주고 30대 초반의 천문학 스승을 모시고 천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50세면 지금으로 보면 족히 70세는 되었다고 봐야 한다.
1800년에 막부로부터 지도 제작 의뢰를 받고 17년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실측한다. 이노가 실측을 위해 걸어 다닌 거리는 지구 둘레의 85%에 이른다. 실측을 마친 후 지도를 제작하던 이노는 안타깝게도 2년 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제자들이 지도를 완성한다. 일본 최초의 실측 지도로 위도 1도의 오차가 1/1000에 불과할 정도다.
이노는 왜 천문학 일을 했을까? 건강을 위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서머셋 몸이 쓴 소설 '달과 6펜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은 런던에서 주식 브로커를 업으로 삼으며 돈을 잘 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모두를 버리고 파리로 그림을 그리러 떠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그림을 그리려고 파리에 왔다’고 하지 않고 ‘나는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고 말한다. 마치 칼은 물건을 베기 위해 있듯이. 이노 역시 젊어서부터 품어 온 천문학 일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바로 이 성질이 ‘아레테(arete)’다. 아레테는 그리스말로 ‘탁월함’ 혹은 어떤 사물이 드러내는 뛰어난 가치 등을 의미한다. 아레테는 ‘ㅇㅇ의 아레테’로 쓰인다. 달리기 선수의 아레테는 잘 달리는 것이고, 칼의 아레테는 물건을 잘 자르는 것이며, 목수의 아레테는 집을 잘 짓는 것이다. 이노 다다타카가의 아레테는 천문학이었다.
인생 후반에 일의 가치에서 비경제적 가치가 중요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60세 이후 건강한 삶이 20년 정도 있다면 일의 다른 가치를 추구해봄직도 하다. 일의 가치를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서 자신의 강점, 자신의 아레테를 실현해보는 것이다.
미국의 그랜마 모제스(1860~1961)는 농부였던 남편이 사망하자 78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1세에 죽기까지 1500여점에 이르는 그림을 그린다. 남편이 죽고 뭘 할까를 고민하는 데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엄마를 본 딸이 권고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동네 약국에 팔려고 걸어 놓은 그림을 우연히 그 동네를 지나가던 화상(畵商)이 보고 뉴욕에 전시회를 열게 되면서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처음에 3~5달러에 팔리던 그림들이 유명해지면서 8000~1만달러에까지 팔리게 되었다. 그랜마 모제스는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아레테를 인생 후반에 실천했다.
모제스 할머니(그랜마 모제스) 시절에는 101세까지 살면서 인생 후반을 30여년 사는 것이 특이한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제스 할머니를 소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장수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모제스 할머니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아레테를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고령화를 앞서 경험한 일본에서는 60대를 넘어서 신춘문예에 등단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기주(1939~ ) 작가는 코오롱 대표이사를 지내고 은퇴하여 글 쓰기에 매달렸다. 그리하여 84세에 '목숨'이라는 3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마산, 창녕, 함안, 남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일제시대 한 가문의 이야기를 썼다.
하 작가는 학창 시절 문학상을 받을 만큼 글에 재능이 있었지만 직장 생활 동안 펜을 놓았고, 60대 은퇴를 하고 나서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하 작가는 앞으로 해방 이후의 마산 이야기를 써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2년인 77세에 한국소설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경남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가 되겠다며 자퇴한 적이 있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보다 공부가 쉽다는 선생님의 말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를 지내던 그는 결국 은퇴하고 자신의 아레테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강만수 장관에게 글쓰기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저명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늦은 나이에 문예지 등단을 고집하는 정석의 길을 밟은 것이다.
장수시대 인생 후반의 일을 선택할 때는 한 단계 더 깊이 가치를 두어 보자. 건강, 시간 보내기, 취미, 관계와 같은 비경제적 이유로 일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강점, 자신이 응당해야 할 일, 즉 아레테를 찾고 이를 실천해가는 것이다.
필자는 요즘 글을 쓰고, 강의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한다. 40대 초반에 채권 운용 책임을 맡으면서 신문에 관련 칼럼을 써온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듯하다. ’나의 아레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bsta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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