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⑨퇴직자들 목공소 "일감 걱정 전혀없죠"
도배·장판·지붕 수리 퇴직자 합류하며 주택 리모델링으로 영역 확대
전국서 주문 잇따라…"경쟁 없는 '블루오션' 개척해 자립 기반 탄탄"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영주=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경북 영주시 도심 외곽에 있는 구성마을은 대대로 안동 권씨가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1961년 '영주 대홍수' 이후에는 철로사업에 투입됐던 노동자들의 배후 거주지 기능을 했다. 한때는 수백가구가 모여 살았던 제법 규모도 크고 먹고살기도 괜찮았던 동네였다. 그러나 여느 지방 중소도시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하나둘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빈집이 늘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빈집일 만큼 동네가 텅텅 비어나갔다. 독거노인 비율이 74%까지 치솟았고 30년 넘은 건축물 비중이 전체의 71%에 달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들은 흉물스럽게 변해갔고 골목골목은 쓰레기로 넘쳐났다. 고령화까지 급격히 진행되면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목공소 한번 차려볼까"…농담이 현실로
그러던 차에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한 채 하릴없이 지내던 동네 퇴직자들 사이에서 '목공소를 차려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목공이라는 분야는 많은 중장년 남성에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터라 모두 귀가 솔깃했다. 더군다나 이미 마을 할머니들이 '할매묵공장'을 차려 매끄럽게 꾸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터였다.
이들의 제안을 영주시청이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술자리 안줏거리 이야기'로 끝날 줄 알았던 일은 현실이 됐다. 퇴직자 5명이 사회적 협동조합을 꾸리고 목공소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다행히 동네 초입에 오래전 폐업한 목공소가 있어 일은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목공소를 사들이고 장비를 갖췄다. 이름은 할배목공소로 했다. 할배는 '할아버지'의 경상도 방안이다. 구성원들 모두가 손자 손녀를 둘 나이의 퇴직자인 점과 100여m 거리에 있는 할매묵공장과의 연계성을 염두에 둔 작명이었다. 1년 남짓한 준비 기간을 거친 2017년 3월, 할배목공소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총사업비는 3억여원에 불과했다. 다른 도시재생사업에서 거점시설 하나 만드는 데만 수십억원이 드는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만큼 적은 비용이었다.
김희현 영주시 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할배목공소는 행정기관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 시작하는 통상적인 도시재생사업과 달리 주민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내고 이를 행정기관이 받아들인 방식이었다. 구상마을 주민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던 아이템이었고, 행정기관이 주도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그런 배경에서인지 목공소와 협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주인의식과 연대의식이 강했고 내내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당시 상황을 짚었다.
초보 퇴직자들, 아찔한 부상위험 넘기며 기술 익혀
그러나 이렇다 할 목공 기술을 갖춘 사람이 없었다. 전문가를 초빙해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로망'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망치며 대패며 끌이며 각종 연장이 순식간에 흉기로 돌변하곤 했다.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은, 아찔한 일들도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 고생이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묵묵히 기술을 익혔다.
땀과 열정,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서툴기만 했던 일들이 조금씩 손에 익었고 간단한 도마나 의자, 책상 등은 척척 만들어낼 정도가 됐다. 대패질이며 망치질 몇번에 제법 그럴싸한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자신도 신기했다. 날로 재미가 붙었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며 이제는 고급 서랍장도 손쉽게 짤 수 있는 전문가가 됐다.
할배목공소가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멀리 서울에서도 연락이 올 만큼 유명해졌다. 얼마 전에는 새집 수십 개를 만들어달라는 연락이 오는 등 품목도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조합원은 29명까지 늘었다. 교사부터 개인 사업가, 자영업자 출신 등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연령대도 5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까지로 폭넓다. 고무적인 것은 이 가운데 도배, 장판, 지붕 수리 기술을 가진 퇴직자들이 하나둘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업무 영역이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전공인 목수 일에 이들 일이 더해지니 어지간한 주택 리모델링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이 덕분에 할배목공소는 처음에는 몇몇 목공예품을 만들어 팔거나 수리해주던 비교적 단순한 협동조합에서 노후 주거지 재생사업의 집수리 전담 조직으로 참여할 만큼 성장했다. 앞으로 집수리 전문 사회적기업으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많게는 일당 20만원 '두둑'…집수리 전문 사회적기업 목표
일거리가 넘치면서 조합원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지고 있다. 기술력과 노동 시간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하루 많게는 20만원의 일당을 받아 가는 조합원도 있다. 특히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필요할 때만 출근하는, 자유로운 근무 구조여서 만족도가 더욱 높다. 연간 매출액도 2억원을 넘어섰다.
'사회적협동조합 할배목공소' 권태상 이사장은 "곳곳에서 도시재생사업까지 진행되면서 주택 개·보수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고, 목제 가구 등을 맞춤형으로 만들어 쓰거나 고쳐 쓰고 싶어도 그런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감 걱정은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특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있다 보니 어지간한 수요는 다 맞춰줄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큰 장점"이라면서 "처음에는 우리가 이렇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는데,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할배목공소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서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활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년 수익의 일부를 떼어내 동네 노인잔치 등에 쓴다. 어려운 이웃에게는 무료로 집을 고쳐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민 주도 사업에 업무 다양성까지 갖춰 '장밋빛 미래'
할배목공소는 미래도 밝다.
일감이 끊이지 않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덕분이다. 목공소라는 특이성에 업무 영역의 다양성까지 갖춰 일감이 항상 넘쳐난다. 이는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자립 기반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공공기관의 지원이 끊김과 동시에 경영난에 처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조합원 가입을 희망하는 퇴직자들이 줄을 설 만큼 중장년에게 매력적인 업종이라는 점도 할배목공소의 지속적인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고령자로 구성된 사회적기업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가 뒤를 이어줄 조합원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급여도 퇴직자치고는 짭짤해 밀려드는 조합원을 선별해 받아야 할 정도다.
김희현 영주시 도시재생센터 사무국장은 "할배목공소는 지역 주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지로 시작된 데다 퇴직자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며 일감이 많아 지속 가능성도 높은 사업 아이템"이라면서 "업무 영역이 주택 리모델링까지 넓혀진 만큼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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