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강희동 목사와 '리턴홈'
[서울=뉴시스] 나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조경덕 감독은 중증 장애인의 성과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 ‘섹스 볼란티어’로 2009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33회 상파울루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조 감독은 수상을 위해 브라질에 갔고, 그곳에서 교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축제의 나라인 브라질답게 시상식이 끝나고 교민들이 주최하는 파티가 이어졌다. 고국에서 온 영화감독이 들어 올린 트로피는 교민들의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이었다. 많은 교민을 만난 조 감독은 그들의 삶에 주목했다. 특히 가장 먼저 브라질 땅을 밟은 교민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브라질에 처음 발을 디딘 분들은 일제강점기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 이민을 온 조선인들이었다. 이후 한국전쟁 중 제3국을 선택한 포로들이 브라질에 온 두 번째 동포들이었다. 포로 출신 이민자들은 고령에도 건강히 지내고 있었다.
브라질을 다녀온 조 감독은 포로 출신 교민들의 이야기를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한다. 서울과 브라질을 오가며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제3국 선택 포로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이북 출신인 이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것으로 바꿨다. 조 감독의 계획에 포로 출신 어르신들 대부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마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를 떠나 60년이 넘게 브라질에만 살던 김명복 할아버지만 조 감독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트럭에 실려 전쟁터로 끌려갔던 소년병 출신이었다.
김명복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는 기획에 찬성을 하나, 혼자 갈 수 없다고 했다. 이때 기꺼이 동행을 하겠다고 나선 이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던, 역시 포로 출신 교민인 강희동 목사였다. 그는 그때 이미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제3국을 선택해 인도를 거쳐 브라질에 갔고, 그곳에서 목회자가 된 그는 은퇴 후 미국에 정착했다. 현역 시절 그는 한국 기독교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 인사로,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북한을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갈 수 없는 북한 지역의 고향을 방문하는 대신 포로 생활을 했던 거제도를 비롯해 남한의 각지를 돌아보고, 신의주 넘어에 있는 중국 단동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오는 것으로 기획이 바뀌었다. 이 기획에 맞춰 멀리 브라질에서 김명복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강희동 목사 부부가 한국에 왔다. 이 프로젝트의 스태프로 참여한 나는 한국을 방문한 포로 출신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을 맡았다.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났다가 팔순이 돼서야 한국에 돌아오신 할아버지들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들은 어려서 먹었던 개장국을 드시고 싶어 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별미로, 브라질이나 미국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와 비슷한 보양식인 오리백숙 집으로 모시고 갔다. 처음으로 오리백숙을 드셔보신 김명복 할아버지는 “레시피를 배워 브라질에도 이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맛있게 드셨다.
이들의 한국 여정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국군 장교가 말한 성경 구절을 외울 수 있어서 수많은 포로 중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김명복 할아버지는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는지 전쟁기념관에서는 공황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소총도 지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타고 있던 트럭째로 미군 포로가 됐다”는 강희동 목사는 “포로수용소 의무대 막사 안에서 한쪽 침상의 사람들만 전염병으로 인해 하룻밤 만에 몰살당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무리 정의롭더라도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점을 전쟁을 체험했던 이 어르신들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1928년생인 강희동 목사는 지난달 13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지상에서의 고된 순례를 마친 것이다. 조경덕 감독의 다큐멘터리 ‘리턴홈’은 후반작업이 한창인지라 완성된 작품을 보지 못하신 게 안타깝다. 한국에서 목사님과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어르신들과 오리백숙을 먹었던 날이 떠오르는 초복이다.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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