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는 과학인가?[PADO]
[편집자주] 우리가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의 전문성과 직업 윤리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죠. 이는 치과를 비롯한 의료계 전반의 문제이지만 치의학이 일반 의학만큼 과학적으로 엄격하지 않아 과잉진료가 더 많은 경향이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애틀랜틱의 2019년 5월 기사는 심각한 치과 과잉진료 사례와 치의학의 문제를 소개하면서 치의학에서도 근거중심의학(EBM)을 확립하려 노력하는 치과의사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합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 테리 미첼을 치료해주던 치과의사가 은퇴했다. 50대 전기공인 미첼은 한동안 치과 진료를 받지 않다가 사랑니 하나가 아프기 시작하자 새 치과의사를 찾기로 했다.
한 지인이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있는 미첼의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존 로저 런드의 치과를 추천했다. 런드의 진료소는 점토기와로 지붕을 덮은 단층 건물로 치과 진료실이 여럿 있었다. 내부는 약간 낡았지만 칙칙하지는 않았다. 대기실은 작았고 화분과 사진 몇 개가 장식의 전부였다. 물고기가 든 어항은 없었다.
런드는 잘생긴 중년 남자로 아치형 눈썹에 둥근 안경을 썼으며, 희게 바랜 머리카락이 앳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매력적이고 말솜씨가 좋으며 쾌활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 미첼과 런드는 둘 다 쉐보레 셰빌(Chevrolet Chevelle) 차량을 갖고 있었고, 클래식 자동차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인해 가까워졌다.
합병증 없이 사랑니를 뽑은 후 미첼은 정기적으로 런드의 치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로 나타난 통증이나 불편한 증상이 전혀 없었음에도 런드는 추가 치료를 권했다. 보통 사람은 일생에 1~2회 신경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런드는 7년 동안 미첼에게 아홉 차례나 신경치료를 하고 크라운을 씌웠다. 미첼이 든 보험은 시술 비용 일부만 보장했기 때문에 그는 약 5만 달러(6600만원)를 치료비로 지불해야 했다.
그래도 치료 횟수와 비용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신경치료를 많이 받는 것이 이상한지도 몰랐고, 충전재로 치아를 때우는 충치 치료만큼이나 흔한 줄 알았던 것이다. 미첼은 비교적 오랜 기간에 걸쳐 비용을 할부로 지불했고 런드를 완전히 신뢰했다. 치료가 필요하다면 상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미리 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런드의 또 다른 환자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50대 여성 사업가인 조이스 코디는 1-800-DENTIST를 통해 런드를 알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런드의 평점이 높았던 걸로 기억했다. 1999년 처음으로 런드의 치과를 찾기 전까지 코디는 충치조차 없었다. 희귀한 선천적 기형을 치료하려고 다른 치아 속에 묻힌 치아 한 개를 제거하고 작은 브리지를 부착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치아 상태가 아주 좋았다. 1년 만에 런드는 기존에 부착한 브리지의 내구성이 의심스럽다며 신경치료와 크라운 시술을 제안했다.
코디는 혼란스러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치아 건강이 좋았건만 왜 이리 갑자기 시술을 많이 받아야 하나? 미심쩍은 코디의 반응에 런드는 항상 답변을 준비해 두었다. 한번은 치아의 충치 구멍이 좋지 않은 위치에 있어서 일반적인 충전재로는 치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어떤 날은 잇몸이 무너지면서 충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코디는 이갈이를 하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고 있었다. 의사의 딸로 자라서 특히 의료 전문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끈질긴 런드의 주장에 코디는 결국 시술에 동의하게 되었다.
10년간 런드는 코디에게 신경치료와 크라운 시술을 10회씩 진행했다. 또한 기존 브리지를 들어내고 새로운 브리지 두 개로 교체했는데 앞니에 눈에 띄는 틈이 생겼다. 이 모든 치료에 약 7만달러(9200만원)가 들었다.
런드는 2012년 초에 은퇴했다. 브렌든 자이들러라는 젊은 치과의사가 런드의 진료소를 인수하고 환자들도 맡게 되었다. 몇 달 만에 자이들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재무 기록을 보면 런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이들러의 한 달 소득은 런드가 국세청에 신고한 소득의 10~25%에 불과했다. 런드의 이전 환자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그는 이상한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많은 환자가 그의 예상보다 광범위하고 값비싼 치료를 받았다. 자이들러가 정기 검진이나 스케일링 후에 현재는 추가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자, 그 환자들은 '확실한 거죠?', '아무것도 없다고요?', ' 꼼꼼히 살펴본 거죠?' 등 놀라움과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해 여름 자이들러는 런드의 경력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는 런드가 담당했던 환자들의 수년 치 진료 기록과 진료비 청구서를 모아서 하나하나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검토를 마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그는 알게 된 내용에 경악했다.
우리는 치과의사를 권위 있는 인물로 보고 그들과 조금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상에서는 종종 그들을 진짜 의사가 아닌 구강과 관련된 수리공처럼 치부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멸은 두려움으로 희석된다. 한 세기가 넘도록 치과는 반쯤 농담처럼 '고문'으로 비유되어 왔다.
설문에 따르면 약 61%에 해당하는 사람이 치과 방문에 불안을 느끼며, 약 15%는 불안이 크다 보니 치과 방문을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치과 공포증을 겪는 사람도 소수 있다.
치과 진료용 의자(유닛체어)에 누으면 의사와 환자 사이 불균형한 관계가 뚜렷해진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누워있는 환자 몸 위에 쓱 나타나 전동공구와 날카로운 금속 도구를 휘두르고, 환자가 보지도 못하는 입에 무언가를 하며, 제대로 대답도 못 하는데 질문을 하고, 계속 환자 상태를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신체적 위험, 감정적 취약성, 정신적 무기력함을 경험한다. 충치가 생기거나 잇몸이 내려앉으면 환자는 자신이 관리에 실패했다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치과의사가 문제가 있다며 너무 늦기 전에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진단을 내릴 때, 거기에 반대할 용기나 전문 지식을 지닌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의사가 엑스레이상의 흐릿한 부분을 가리킬 때 진실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반 개업의나 심장 전문의를 찾는 등 다른 의료서비스를 받는 경우를 따져보면, 수술이나 부작용이 심한 약물 치료에 동의하기 전에 다른 의사의 소견을 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치과의 경우 깊이 고심하지 않고 가능한 빨리 모든 걸 끝내려는 충동을 느낀다. 아마도 사람들이 시술을 두려워하고 치과 진료의 의료적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치과의사와 환자의 자연스럽지 못한 관계는 불행한 현실로 더욱 엉키게 된다. 일반적인 치과 시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안전하거나 효과적이거나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보면 치의학계는 자정(自淨) 능력이 아직 의학과 동일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과학적 근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활용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더 큰 의료 시스템과 동떨어져 있죠. 그래서 근거중심정책을 만들 때 치과는 종종 고려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몬태나주 보즈먼의 치과의사 제인 질레트의 말이다. 그는 2007년에 설립된 미국치과협회 근거중심치의학센터와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 뒤처져 있지만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은 스케일링을 하러 치과에 가야 한다'는 원칙을 생각해 보자. 아주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라 우리는 이를 진실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여기엔 과학적 근거가 없다.
학자들은 이런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내려고 1930년대 치약 광고나 심한 치통을 앓는 남자의 수난기를 다룬 1849년의 팸플릿 등을 조사하고 있다. 오늘날, 구강 위생 상태가 양호한 성인은 12~16개월에 한 번만 치과를 방문해도 된다고 보는 치과의사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이다.
최근 다양한 혁신이나 미용 목적의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 치과 치료술 상당수도 연구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임상시험을 철저하게 거친 치료법이 많지 않다. 참고 가능한 데이터 역시 항상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근거중심의학의 기준을 제시하는 권위 있는 기구 코크란 연합(Cochrane organization)은 1999년부터 구강 건강에 관해 체계적 문헌고찰을 실시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가장 엄격하고 잘 설계된 연구에 초점을 맞춰 특정 치과 시술에 대한 학술 문헌을 분석한다. 특정 치과 시술의 효과를 잘 입증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매니큐어 같은 액상 플라스틱으로 치아의 홈에 바르는 치과용 실란트는 어린이의 충치 발생을 줄이고 알려진 위험성도 없다. (그래도 널리 사용되지는 않는데 시술이 간단하고 너무 저렴해서 수익성이 낮다는 게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코크란 연합의 검토 결과는 실망스러운 두 가지 결론 중 하나에 이를 때가 많다. 이용할 수 있는 증거가 있더라도 특정 치과 시술의 이점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명확하게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음용수에 불소를 첨가하면 어린이의 충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는 듯 보이나 성인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
어떤 데이터는 양치질 외에 규칙적으로 치실을 사용하면 잇몸 질환을 완화할 수 있다고 시사하지만 치태 제거에 대해서는 "빈약하고 매우 신뢰하기 어려운" 증거만 있다.
일반적이지만 침습적인 치과 시술의 경우, 예방 목적으로 사랑니를 제거하는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치과의사가 점점 늘고 있다. 문제가 없는 치아를 주시하며 걱정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다.
충치 구멍을 메우려고 일반적인 금속 아말감 대신 치아색과 유사한 레진으로 대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학적 근거도 거의 없다. 또한 신경치료 후 치아를 복원할 때 크라운이나 충전재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데이터도 제한적이다. 코크란 연합 연구진이 문제가 있는 금속 충전재를 보강할지 교체할지 조사했을 때에는 그들의 기준을 충족하는 연구를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계속)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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