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손실봐도 못도와줘” 경고에도…中투자 늘리는 이나라 기업들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7. 1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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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의존도 높은 독일, ‘디리스킹’ 정립
공급망·수출시장 다각화해 충격 줄여
“기업들 손해 구제하지 않을 것” 경고
사이버보안 기술·지재권 연구도 통제
獨 주요 기업들 합류할 지는 미지수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 [사진 = 연합뉴스]
독일 정부가 처음으로 자국의 최대 무역국인 중국에 대응하는 첫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유럽 국가에서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유독 높은 독일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강경한 대중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 기조를 정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독일 신호등(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 연립정부는 내각회의를 열고 사상 처음으로 최대 무역국 중국을 겨냥한 국가전략을 공식 의결했다. 독일 외무부가 작성한 64페이지 분량의 대중국전략 보고서는 자국 기업들에게 대중 의존도를 낮출 것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완전한 탈동조화를 뜻하는 ‘디커플링’은 거부하되 독일이 공급망과 수출 시장을 중국으로부터 다각화해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디리스킹 기조를 공식화한 것이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내각회의에서 “더 다양한 무역 공급망이 구축될수록 독일 경제는 더 탄력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독일이 의약품,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정보 기술과 부품, 전기차 배터리 원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산업 공급망을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중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손실을 입어도 정부는 이를 구제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안날레나 바복 외무장관은 보고서에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업들은 향후 더 많은 금융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라며 “‘위험한 기업 결정’에 대한 책임은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중국전략이 수립됨에 따라 독일정부는 구체적인 디리스킹 정책을 시행할 전망이다. 이 보고서는 사이버 보안 및 감시 기술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 통제 대상 제품 목록을 조정하겠다는 정부의 기존 약속을 재확인했다. 지적 재산권 유출 가능성이 있는 중국과의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는 연방 기금이 지원되지 않는 등 보다 까다로운 조건이 도입될 전망이다. 국가 안보에 민감한 기술의 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수출 통제 조치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대중 의존도는 유로존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프랑스를 뛰어넘는 독일의 최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양국 간 교역액은 약 3000억 유로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독일 일자리는 100만 개가 넘고, 독일 제조 기업의 거의 절반이 공급망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팬데믹과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시행을 전후로 독일은 대중국 전략을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발 공급망 경색으로 모든 산업분야에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에 따른 부작용이 비로소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피해를 본 만큼 이를 거울삼아 대중국 전략을 보다 강경하게 수정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발표된 대중국전략은 수개월 간 발표되지 못한 채 표류됐었다.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온 녹색당 소속 바르복 외무장관이 이끄는 외무부와 신중한 접근법을 지지해온 사회민주당 올라프 숄츠가 이끄는 총리실 간 첨예한 대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보고서를 통해 독일의 대중 강경노선이 비로소 정립됐다는 평가다. 쾰른 경제연구소의 위르겐 마테스 연구원은 지정학적 이해관계 관한 어려운 논쟁을 피하고자 했던 독일에게 이 전략은 “사실상 순진함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리서치 회사인 로디움 그룹의 유럽-중국 전문가인 노아 바킨도 “기업활동을 할 때 지정학적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신호를 자국기업에 보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폭스바겐 같은 대기업들이 이같은 대중국전략을 지지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독일의 화학제조 기업 바스프, 자동차제조기업 폭스바겐과 같은 주요 기업들은 최근 중국에 대한 투자를 배로 늘리는 등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즈(NYT)는 전했다.

랄프 브란트슈타터 폭스바겐 중국 지역 총책임자는 “중국은 역동적인 성장 시장이자 핵심 기술 혁신의 원동력”이라며 “폭스바겐 그룹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독일의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업체도 모두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 간주하고 있다.

독일 최대 비즈니스 협회(BDI)는 “이번 대중국전략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처하는 것과 실질적인 경제 관계를 추구하는 것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독일 정부는 이 문서를 통해 대중 디리스킹 이외에도 중국의 안보 위협을 견제한다는 기조도 명확히 했다. 중국은 세계인구의 60%가 살고 있는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갈수록 공격적으로 지역적 주도권을 요구하면서 국제법 원칙을 흔들리게 만든다는 게 독일 정부의 지적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인도·태평양 내 파트너들과 함께 안보 정책적, 군사적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날 베를린 주재 중국대사관을 통해 해당 보고서에 명기된 전략에 강하게 반발했다. 베를린 주재 중국사관은 성명을 통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을 왜곡하고 비방하며 심지어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하려는 노력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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