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야말로 공정한 제도" '가부장 자본주의' 주창한 경제학자의 공언

이혜미 2023. 7. 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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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할당제는 기본적으로 공정한 제도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할당제'는 사시사철 뜨거운 감자다.

10여 년간 여성과 남성의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 분야의 젠더 문제를 연구해 온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폴린 그로장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2021년 나온 저서 '가부장 자본주의'에서 "여성할당제는 불의를 바로잡는 제도"라고 힘차게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 가치로 환산할 때 쉽게 평가 절하되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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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그로장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경제학 교수 인터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줄곧 성별임금격차 1위. 한국이 놓인 현실이다. 여성과 남성 사이 경제적 불평등은 어디서부터 연유했을까.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가 쓴 '가부장 자본주의'는 사회적 지배의 구조가 경제 구조에 반영되는 방식을 사유하도록 하는 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여성할당제는 기본적으로 공정한 제도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할당제'는 사시사철 뜨거운 감자다. 하나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선거 국면에서의 여성공천할당제나 기업 이사진을 특정 성별로만 두지 않게 하는 자본시장법 정도만이 명문화된 제도일 뿐이지만, 제도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감은 뿌리 깊다. 10여 년간 여성과 남성의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 분야의 젠더 문제를 연구해 온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폴린 그로장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2021년 나온 저서 '가부장 자본주의'에서 "여성할당제는 불의를 바로잡는 제도"라고 힘차게 주장한다.

"1990년 여아 100명당 남아가 116.5명인 한국의 출생 성비는 성선택 낙태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여아는 출생부터 차별을 받고, 심지어 모유수유도 덜 받는다는 연구가 있다. 교육, 노동시장 진입 등 모든 수준에서 남성에게 유리한 시스템 아래에서 '공정'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

유럽부흥개발은행 출신 폴린 그로장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는 문화와 제도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며 장기적인 경제 발전과 개인의 행동을 만드는지를 탐구해 왔다. 민음사 제공(저자 개인 소장 사진)

책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지난달 그로장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부장 자본주의(patriarcapitalisme)'는 그가 주창한 개념이다.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성차별 관습이 여성과 남성의 경제 불평등과 얽혀있다는 의미다. 그는 국제적 비교와 역사적 연구, 기업에서 수행한 현장 연구와 조사를 토대로 성차별적 사회 규범과 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증명해낸다.

예컨대 부드러움을 여성의 자연적 자질이라 여기는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은 교육과 돌봄을 도맡는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 가치로 환산할 때 쉽게 평가 절하되는 영역이다. 경쟁과 지배를 남성성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남성은 고임금의 고위 관리직을 독식한다. 결과적으로 규범적·문화적 성별 고정관념이 직종 내 차별과 임금 격차 등 성별 경제 불평등을 낳는다.

그에게 한국의 저출생과 결혼 기피 현상에 대해 물었다. 잠재적 임신 가능성은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섹스 비용이었는데, 재생산을 여성이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결혼을 하지 않아도 섹스를 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여성에게 결혼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이 되면서 노동 시장에 참여하거나 학업을 이어나가는 등 여성들이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됐다고 그는 본다.

인구 절벽의 길에 들어선 한국에 그로장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양질의 공공보육'. 그의 모국 프랑스도 한때 저출생 위기였는데 2021년 합계출산율 1.8명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프랑스는 2세부터 공공보육과 공교육을 받을 수 있고, 3세가 되는 해에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양질의 공공보육은 결혼과 출산 후 자아실현 박탈에 대한 여성의 걱정을 줄여줄 수 있고, 남성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

가부장 자본주의 해체를 위한 전제는 '사실과 통계에 기반을 둔 진실된 대화'다. 일례로 스페인 정부는 여성에게 집중된 가사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구성원들이 하는 집안일을 기록하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수치를 통해 가사 분담을 재조정하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젠더를 둘러싼 현재 상황이 긴박할 뿐 아니라, 과거 여아와 여성을 차별의 피해자로 만든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책을 출간할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사실과 통계에 기반을 둔 대화의 장을 열 수 있다면, 이는 나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가부장 자본주의 ·폴린 그로장 지음·배세진 옮김 · 민음사 발행 ·276쪽 ·1만6,200원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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