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 종점 주민 “마을 3등분 쪼개고, 머리에 40m 교량 이고 살란 건가”
14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청계리. 주민들이 장대비를 맞으며 나와 기자에게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손으로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주민은 “이 고속도로를 뚫느라 이미 마을이 두 쪽 났는데 여기에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원안(예비 타당성 조사 통과안)대로 분기점(JCT)을 연결하면 마을이 3~4등분 난다”며 “고속도로가 아무리 중요해도 마을을 또 쪼개고 도로를 머리에 이고 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계획 중 2021년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노선은 양서면 청계리를 종점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이어지는 수도권 제2순환로와 분기점으로 연결된다. 분기점이 들어설 청계리 지역은 청계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청계1·2리와 증동1·2·3리 다섯 지역을 묶어 ‘대골’이라고 부른다. 약 730여 가구 주민 1500여 명이 전원주택 등에 거주하고 있다. 예타안대로 고속도로가 들어서면 30~40m 교각이 전원주택 앞을 지난다.
청계2리 박구용 이장은 이날 “여기는 토박이들도 있지만 서울에서 조용히 살려고 떠나온 분도 많다”며 “정치 진영과 보상 문제를 떠나 마을 이장으로서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분기점은 (이곳에)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타안에 따르면, 종점인 청계리에 고속도로와 연결하는 분기점을 만들려면 터널과 터널 사이 1.2㎞ 구간에 높이 30~40m의 교각을 세워야 한다. 터널 사이 도로가 짧기 때문에 청계산 능선을 따라 휘어지게 건설할 수밖에 없다. 양평군이 주민들에게 배포한 예상 조감도를 보면, 능선에 지어진 전원주택 단지 위로 접속 도로가 지나간다. 한 주민은 “차량 진·출입도 안 되는 분기점은 주민에겐 혐오 시설이 아니겠느냐”며 “이곳엔 조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주민이 많은데 이런 도로가 세워지면 누가 살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신원2리 박영희 이장은 “주민 대부분은 도로를 지으려고 예타 조사를 한다는 사실만 알았지 구체적인 노선까진 몰랐다”고 했다. 고속도로로 인근 마을이 양분된 것도 모자라 서울~양평 고속도로 분기점으로 3~4등분까지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뜻이다.
이날 오전 국회 국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 6명과 국토부·양평군 관계자 등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추진 경과를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주민 90% 이상이 예타안 종점이 양서면 청계리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며 “예타안 접속 도로는 마을 중앙으로 30m 이상 교각이 700m 이어지게 되는데 인근 주민들은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라고 했다. 한 주민은 “고속도로 2개가 마을을 관통하는데 누가 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종점을 양서면 아닌 강상면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낸 민간 설계 업체 측도 청계리 피해를 고려했다고 한다.
이날 양서면 이장들과 주민들은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2008년 처음 나온 양서면 종점 노선에는 문제가 많았는데 국토부가 왜 거르지 못했느냐는 비판도 했다. 증동1리 주민 경성례(68)씨는 “지금도 고속도로를 다니는 트레일러 소리로 새벽에 잠자는 것이 힘들다”며 “자동차 분진과 소음으로 고통받는 주민들도 생각해 달라”고 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분기점까지 들어오면 소음과 분진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 주민 한기열(68)씨도 “주민 대부분이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빨리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평=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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