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12] 소설을 읽는 이유
집중력 저하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내 경우 스마트폰이 이유인데, 얼마 전 타이머가 달린 휴대폰 금고를 샀을 정도다. 만약 새로 산 GPS가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나를 인도한다면 계속 사용할 수 있을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접속한 인터넷에서 우리는 대부분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을 배회한다. 애초의 목적과 상관없는 콘텐츠를 보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이 아니라 화면으로 글을 볼 때 사람들이 내용을 훨씬 적게 기억하고, 대충 본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인터넷으로 글을 읽을 때 팝업처럼 튀어나오는 광고나 뉴스에 간섭을 받으면 집중력이 부서진다는 것이다. 특히 알고리즘 때문에 범죄, 주식 폭락, 정치 스캔들 같은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는 기사가 더 눈에 띄다 보니 세상이 양극단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모습이 더 부각된다.
이 책을 읽다가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에 대한 공감이 급속히 줄어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을 많이 읽을수록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는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비소설 독서가 정보를 얻는 데 용이하지만, 공감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그들의 목표나 동기, 갈등을 따라간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를 추측하고, 나와 다른 해결 방법에 감탄하거나 분노한다. 공감의 예행 연습인 셈이다. 동화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읽는다는 연구 결과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급증하는 범죄와 갈등의 원인에는 공감의 부족이 있다. 소설 시장의 위축과 소설보다 잔혹한 혐오가 쏟아지는 세상 사이에서 사라지는 건 집중력만이 아니다. 집중을 요하는 모든 행위들, 가령 인내심이나 이해심 같은 가치가 빠르게 사라지며 사람들을 둘로 가르고 있다. 타인의 편에 서서 보는 ‘역지사지’는 ‘정보’가 아니라 오직 ‘이야기’를 통해 강화된다. 구비문학 이래 인류가 소설을 읽어 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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