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한국의 몫, IAEA의 몫, 일본의 몫
한국 정부도 혼돈 막으려 노력 중
당사자 日은 “수입 재개하라” 요청
방류 앞두고 적절한 행동인가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당연히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의견이 다른 분들께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제 몫의 일입니다.” 서울에서 한 주 전 만난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안전성 보고서에 대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전일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로시 고 홈’을 외치는 시위대에 가로막혔다. 그의 트위터는 입에 담기 어려운 ‘개딸’들의 욕설로 일찌감치 뒤덮인 판이었다. 욕하고 싶을 법도 한데, 그는 “욕하는 사람들까지 설득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는 입장만 덤덤히 반복했다.
그로시는 한국 일정을 마치고 비슷한 설득 작업을 한다며 뉴질랜드와 태평양 도서국으로 향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선 방류에 대해 한국의 할일이 많아졌다. 정부는 ‘IAEA 보고서를 존중한다’고 했지만, 대다수 국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 사회는 늘 그렇듯 의견이 쪼개져 싸우고 있다.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에 있는 한 지인의 말이다. “중국은 지도부가 ‘방류 반대’로 입장을 정한 후 모든 언론과 국가기관, 기업이 이에 맞춘 일사불란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싸우는 한국보다 한 줌 이견도 없는 중국이 더 무섭다.”
그로시는 미국·캐나다 등의 방류 반발 목소리가 안 들리는 이유에 대해 의외의 설명을 했다. “선진국 국민은 과학을 신뢰한다” 같은 답을 기대했건만 “후쿠시마 이슈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여서”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만큼 전 국민이 오만 가지 이슈에 박식한 나라는 드물다. 이런 ‘똑똑한 유권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되 괴담이 아닌 사실에 기반을 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한국 정부와 사회의 몫 아닐까. 시민 사회도,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해 힘겹게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15년 전 광기와 폭행이 난무했던 광우병 시위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그래도 말과 논리로 대결하려는 노력이 많아졌다.
남은 건 방류 당사자 일본이다. 일본은 동일본 지진이라는 천재(天災)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인재(人災)를 더해 역대급 재앙으로 키운 책임자다. 기술적으로 안전하다곤 해도 방류를 둔 여론 충돌, 한국 수산물 업자에게 초래되는 ‘소문 피해’ 등 사회적 비용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일본인이 극도로 꺼린다는 ‘메이와쿠(민폐)’인 셈인데 일본의 자세가 상당히 ‘쿨’하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2일 농수산물 수출의 5%를 차지하는 EU가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재개를 결정하자 “확고한 과학적 근거에 따랐다”고 했다. 마땅히 될 일이 이뤄졌다는 식이다.
일본은 ‘처리수도 안전하니 수산물도 안전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면서 한국에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 재개를 요청한다. 그러나 둘은 별개다.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는 지금 수조 안에 든 (안전하다는) 처리수가 아니라, 사고 당시에 바다로 무분별하게 흘러든 오염수의 위험에 따른 것이다. 불과 4년 전 국제기구인 WTO가 한국의 수입 금지는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일본은 그럼에도 IAEA 보고서 발표 직후 “(농수산물) 수입 금지 철폐가 주요한 정책 목표 중 하나”라고 하는 등 반복해서 수입 재개를 압박하고 있다. 방류를 앞두고 모든 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때에, 수입 재개를 요구하며 이웃 나라에 스트레스를 더 얹는다.
IAEA는 방류가 끝날 때까지 후쿠시마에 머물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정부는 국민 불안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매일 브리핑을 하면서 후쿠시마발(發) ‘불안 사재기’가 가져온 소금 파동을 정부 비축분을 풀어 막고 있다. 일본이 벌인 일이지만 IAEA도 한국도 성숙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몫을 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일본 몫은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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