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여학생과 여기자
“지나치게 똑똑한 데다 자기가 똑똑한 여자라는 걸 과시하고 아주 건방지다.”
월간지 ‘여학생’ 1966년 4월호는 어떤 직업에 대한 통념을 이런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교수? 의사? 변호사? 정답은 ‘기자’랍니다. 이번 주 신간인 허윤 부경대 교수의 ‘위험한 책읽기’(책과 함께)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책은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 등장한 소설, 잡지, 순정만화 등을 검토, 책 읽기가 어떻게 한국 여성들을 ‘위험한 사상가’로 만들었는지 추적합니다.
‘여학생’은 1965년 창간되었죠. 1966년 4월, 편집장 조윤식은 창간 취지를 이렇게 밝힙니다. “내일의 모성을 위해서라기보다 여성의 진화를 위해서는 현실의 소녀상이 좀 더 밝아져야 하고 그 어진 개화를 위해 ‘여학생’은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취지에 맞게 잡지는 1966년 3월호부터 진로 지도 특집을 게재합니다. 산업화 사회에 발맞춰 뛰어난 여성 노동력을 공급해야 한다 생각했지만, 시대의 한계란 어쩔 수 없어 ‘여성성’을 해치지 않으며, 결혼과 출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직업을 우선 권합니다. 의사는 개업하면 가정 살림과 동반할 수 있으며, 공무원은 근무시간이 확실해 안정된 직업으로 추천되었답니다. 반면 기자와 운전수는 결혼이 늦어질 수 있고, 결혼하면 지속할 수 없는 직업이라 못 박았다네요.
‘여학생’은 1990년 11월 재정난으로 폐간되었습니다. 같은 해 12월 한국여기자협회는 연간지 ‘여기자’를 창간했고요. ‘똑똑하고 건방진’ 여자들이 주축이 된 이 잡지는 지난 2021년 특정 직업군에 ‘여(女)’를 붙이는 것이 더 이상 사회 흐름과 부합하지 않는다 여겨 ‘저널W’로 이름을 바꿨지요.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화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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