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고 문학은 ‘기록 암흑기’에 탄생
기원전 8세기경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로마에 의한 그리스 몰락 후 오랫동안 ‘전설’로 치부되었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호메로스를 거리에서 구걸하는 맹인으로 묘사했고,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탁월한 ‘허구’로, 순전히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로 여겼다. 이러한 풍문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1500년간 확고한 문헌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데서 연유했다.
기원전 12~9세기경 이민족에 의해 대규모 문명 파괴를 겪은 그리스인은 훌륭한 문자를 가졌음에도 자신들에게 소중한 것은 모조리 외워 전승(傳承)하는 방법을 선호하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음송(吟誦)되었다. 남겨진 기록 문헌이 희소해 후대의 역사가들이 ‘암흑기’로 분류한 이때, 그리스 최고의 문학이 탄생한 것이다.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제전(祭典)으로, 아테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연례 축제였던 파나테나이아(Panathenaia)에서 공연된 호메로스의 작품들은 아테네의 국민극이었다. 즉 ‘일리아스’가 그토록 사랑받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오롯이 전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 마지막 해의 50일을 다룬 ‘전쟁문학’인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적 특수성이 매우 뚜렷해서, 처음 읽는 독자는 상당한 진입 장벽을 느낀다. 호메로스의 국내 첫 원전 번역자인 천병희 선생이 ‘일리아스’를 쉽게 읽히는 문장으로 옮기려 애쓴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여러 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원문의 꼴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호메로스는 왜 형용사나 의성어·의태어 부사로 간단히 묘사하지 않고, 모든 동작 앞에 비유로 이루어진 수식어구를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꼬박꼬박 붙일까? 왜 ‘일리아스’의 인물들은 “가슴속에 쇠파리의 담력을” 품고, “타오르는 화염과 같이” 싸우다, “두 눈을 검은 밤이 내리덮어” 죽을까?
‘일리아스’의 문학적 개성과 가치는 호메로스 특유의 문체,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의 특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전문헌학자 이준석 교수의 새 번역본 ‘일리아스’(아카넷)는 원전의 모습이 더 또렷하고 고대의 소박한 멋이 살아 있다. 호메로스를 사랑하는 한국 독자 모두가 기다리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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