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에게 “빨리 하라”는 금물… 식기는 음식과 구별 잘되는 색으로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
하세가와 가즈오·이노쿠마 리쓰코 지음|김윤경 옮김|라이팅하우스|248쪽|1만4000원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아나 와튼 지음|조진경 옮김|문예춘추사|260쪽|1만6000원
미 식품의약국(FDA)이 6일(현지 시각) 치매의 주원인인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최초의 치료제 ‘레켐비(Leqembi)’를 정식 승인했다. <본지 2023년 7월 8일 자 A1면>
‘100세 시대’의 인간에게 치매는 죽음보다 두려운 공포다.죽음 이후의 모습은 알 길이 없어 미추(美醜)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치매는 다르다. 방금 밥 먹은 것도 잊어버리고 밥 차려 내라고 행패 부리는 노인, 집 나와 길 잃고 배회하는 노인,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자식들을 고생시키는 노인…. 흔히들 생각하는 치매의 이미지다. 치매는 과연 통설처럼 ‘자신에겐 천국, 다른 사람에겐 지옥’인 병인가? 최근 출간되는 치매 관련 책은 치매의 ‘당사자성’에 주목한다.
◇치매 환자,치매를 말하다
1995년 49세 나이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크리스틴 브라이든 호주 수상내무부 제1차관보가 1998년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원제 Who will I be when I die?)을 출간한 이래, 치매를 겪고 있는 지식인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늘어나는 추세다.이런 행위가 치매 환자도 ‘인격’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믿기 때문이다.
일본 의사 하세가와 가즈오(長谷川和夫, 1929~2021)의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2019)는 그중에서도 특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치매 의료계의 레전드’로 불리며 50여 년간 치매 환자를 치료하다 88세 때인 2017년 치매에 걸린 하세가와는 의료인이자 당사자라는 두 렌즈로 치매를 서술한다.
하세가와는 1974년 “오늘은 몇 년 몇 월 며칠이죠?” “100에서 7을 빼보세요” 등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 최초의 치매진단검사 ‘하세가와 치매 척도’를 만들었다. 2004년엔 ‘치매(癡呆)’라는 단어가 불쾌함과 모멸감을 준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인지증(認知症)’으로 공식 명칭을 변경한 국가검토위원이기도 했다. 그는 치매를 ‘성년기 이후에 기억이나 언어, 지각, 사고에 관한 뇌의 기능이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치매 환자의 60% 이상이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축적되는 알츠하이머다. 일본을 포함한 동양권에 가장 많이 보고되는 유형은 뇌경색 등 뇌의 혈관성 장애로 생기는 혈관성 치매다. 하세가와의 경우는 은친화(銀親和) 과립성 치매였다. 뇌의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에 ‘은친화 과립’이라는 단백질이 쌓이는 질병으로 80대 이상 고령에서 나타나기 쉽고, 진행 속도가 더디다. 하세가와가 자신의 증상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세가와는 병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네 자신이 병에 걸리지 않는 한, 너는 진짜가 아니야”라 하던 의사 선배의 말을 인용하며 “저도 진짜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치매 환자에게도 인격이 있다
‘인간 중심 케어’는 하세가와가 환자들을 치료하며 내걸었던 제1원칙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치매 당사자를 자신과 똑같은 ‘인격체’로 여기며. 치매에 걸리기 전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세가와는 “치매에 걸려도 삶은 계속된다”고 주장해 왔다. 당사자가 되어보니 더욱 뼈에 사무쳤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이어져 있는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치매 증상이 24시간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하세가와의 경우 아침엔 컨디션이 좋았지만 오후 한 시가 지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치매는 고착된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이제 틀렸어. 끝이야’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치매 환자들이 정신을 놓은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들린다. 자신에 대해 험담하거나 비웃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치매 당사자와 관련된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우리를 빼놓고 결정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치부하고 따돌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은 2000년 4월 ‘간병의 사회화’를 내세워 개호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 핵심에 간병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혼자서도 식사, 목욕 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지원하는 데이 서비스(주간보호 서비스)가 있다.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어쩌면 의사보다 더 필요합니다. 치매 당사자가 되고야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쓴 웬디 미첼은 영국국민의료보험(NHS) 비임상팀 팀장으로 일하던 2014년, 58세 나이로 조기 발병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후 블로그에 일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2022년 출간된 이 책은 2018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내가 알던 그 사람’의 후속작이다.
미첼의 책은 치매 환자의 ‘자립’에 초점을 맞춘다. 그 자신이 간병인 없이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는 감각의 왜곡을 겪게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치매 환자의 식기는 음식과 대조되는 색깔이어야 환자가 음식과 그릇을 구분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조명은 점등되는 시간이 짧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매인은 불이 켜지는 동안 왜 그 방에 왔는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가 혼자 사는 일의 장점에 대해서도 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나한테 가장 나쁜 말은 ‘빨리 해’다. 이 두 마디를 들으면 돌연 공포와 혼란, 실패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혼자 생활하면 내 시간은 나의 것이다. 내 속도에 맞게 하면 된다.” 치매에 걸렸는데 혼자 살아간다니, 위험해 보이지만 이는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2021)에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개호보험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어 방문 간병인이 들른다면, 치매 환자가 시설에 가지 않고 인격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세가와와 미첼은 공통적으로 치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서’라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한다. 하세가와는 ‘치매란 가장 나다운 나로 돌아가는 여행’이라 한 크리스틴 브라이든의 말을 인용하며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쨌든 오늘 시작하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미래로 한 발 내디딘 것입니다. 조금 발을 들여놓은 미래는 머지않아 ‘지금’이 됩니다. 과거란 사실 없는 것입니다. 옛날의 일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금이니까요. 그러므로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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