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당신이 바다를 아는가
‘우연이 아니다. 오늘, 갚을 거 갚자고 달려들어 사람의 집을 흔드는 저 난행이 어느 때의 계산인가 따질 일이다.// 사람의 일로 저지른 패악의 연보(年譜)만큼/ 들불처럼 일어나는 폭풍해일!’(정희성의 시 ‘태풍3’)
살아 펄떡이는 바다에 기어이 핵 폐수를 쏟아내겠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심청이가 빠진 인당수 아래 용궁에도, 인어공주가 사는 궁전에도 흘러들어갈 것이다. 앞으로는 바다에서 건강한 상상력으로 <노인과 바다> 같은 싱싱한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생명의 바다, 처음을 생성하고 마지막을 책임지기에 바다는 수평선 너머 하늘과 닿아 있다. 이 신성한 바다에 인간들이 죽음과 공포를 섞으려 한다. 문명사에 이처럼 무도한 일은 없었다. 바다가 핵 폐수를 삼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이 죽으면 사람이 죽는다. 부정 탄 물에는 재앙이 들어 있다. 칭기즈칸은 초원을 평정한 후 칼보다 무서운 대법령을 선포했다. 대법령 제4조를 보라. “물과 재에 오줌을 누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일본은 바다에 30년 동안 오염수를 쏟아내겠다고 했다. 그 30년은 앞으로 ‘무한정’이 될 것이다. 이 나라 저 나라, 여기저기서 핵 폐수를 버릴 것이다. 전례가 있으니, 그래서 마음이 오염되었으니 거리낄 게 없을 것이다. “너만 버리냐, 나도 버린다.” 인류가 숙성시킨 이성은 맥을 추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비극의 실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또렷하게 보인다. 예전처럼 너그럽지 않은 바다가 보인다. 바다에는 칸막이가 없다. 그래서 인류에게 바다는 지구처럼 단 하나이고, 바다의 재앙은 모두에게 닥친다.
다른 나라는 조용한데 왜 한국만 극성스럽게 반대하느냐고 따진다. 우리라도 소리쳐야 하지 않은가. 그것이 생명을 받드는 행위 아닌가. 오염수가 우리 해안에 당도하려면 몇 년, 몇 십 년이 걸린다며 안심하라고 한다. 그럼 그때 닥칠 재앙은 괜찮은 것인가. 후손들의 바다를 오염시키고 훌쩍 떠나가면 그만인가. 해류가 수천억 번의 몸을 뒤척여서 방사능 찌꺼기를 떨쳐낼 것이니 안심하란다. 누가 미래의 바닷속을 보았는가.
말문이 막히면 과학을 들먹인다. 하지만 저들의 과학은 오염되었다. 과학을 선전도구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 온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말했다. “(오염수를) 나도 마실 수 있고, 그 안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 (유도된 답변이긴 해도) 국제기구의 수장이라면, 과학자들을 대변한다면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로시는 뇌물로는 부패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확실히 오염되었다. 핵 공포를 머리에 이고 사는 국민들에게 “오염수보다 북핵 문제를 더 걱정하라”는 훈수를 했다. 기가 막힌다.
과학은 겸손하다. 과학의 미덕은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한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닥칠 핵 재앙을 경고하며 누구보다 지구의 미래를 걱정했던 칼 세이건은 이런 말을 남겼다. “과학하기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단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는 없다는 것이다. 가정이란 가정은 모조리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 과학에서 권위에 근거한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 두 번째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무조건 버리거나 일치하도록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칼 세이건, <코스모스>)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 하나를 바라보고 있을 칼 세이건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의 안색이 지구보다 더 창백할 것 같다. 저 바다가 어찌 인간들만의 것인가. 과학자들의 오만이 두렵다.
뉴턴이 내세운 지고의 ‘중력 법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흔들렸다. 정녕 바다를 아는가. 바닷속 어디가 편치 않아 태풍이 갈수록 사나워지는지, 해류는 무엇을 실어 나르는지, 깊은 바다에는 무엇이 사는지, 달빛이 어리면 어떤 어종이 나타나는지, 방사능에 특히 취약한 생명체는 무엇인지….
바다의 안녕을 어찌 1ℓ의 바닷물에 물으려 하는가. 검푸른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자신의 논리를 펼쳐보라. 지식을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영에 팔아넘긴 것은 아닌지, 출세를 위해 타협한 것은 아닌지. 생물학자 폴 에를리히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무지에는 용서가 없다”고 했다. 다시 묻건대 당신들이 바다를 아는가.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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