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압박, 대중 긴장 해소, 러 역할 촉구…ARF서 드러낸 박진 ‘외교 방정식’
박진 외교부 장관은 13~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한국의 이 같은 외교 기조를 선명히 드러냈다. 박 장관은 14일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하이라이트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한·중 고위급 회담을 했다. 이번 회담은 특히 양국이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에 따른 긴장 악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열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모았다.
회담은 당초 지난 13일로 예정됐지만 일정상 이유로 무산됐고, 결국 이날 ARF가 진행되는 도중 따로 만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혔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시간을 쪼개 회담에 나선 것 자체가 양국의 대화·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중 갈등 국면이 일부 해소되고 협력 강화로 나아갈 발판이 마련될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박 장관과 왕 위원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 관계가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왕 위원은 지난 10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양국 관계가 정체돼선 안 되고 퇴보는 더더욱 안 된다. 양국 관계가 광활한 발전 전망을 열어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는데, 이 같은 기조가 이날 공식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한층 분명히 확인된 셈이다. 이에 맞춰 정부도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외교력을 집중했던 ‘한·미동맹 강화→한·일 관계 개선→한·미·일 공조 확대’에 이어 ‘한·중 관계 재정립’을 핵심 외교 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박 장관은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기존의 강경 대응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등 ‘최대 압박’ 기조를 분명히 했다.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개최 전날인 지난 12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데 대해서도 “국제사회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도발”이란 점을 강조했다.
박 장관은 지난 13일 열린 일본·인도·호주와의 양자 회담에서도 북핵 공조를 핵심 의제로 다루는 등 각종 회담과 회의에서 북핵 공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과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도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선에서 대응 수위를 조절하던 것과 달리 이번 회의에선 “규탄”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등 한국의 공조 요청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각국의 북핵 공조 의지를 확인한 뒤 이날 북한에 대한 추가 독자 제재도 단행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열 번째인 이번 독자 제재엔 정경택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개인 네 명과 칠성무역회사 등 기관 세 곳을 제재 대상으로 신규 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 장관은 지난 13일 저녁 리셉션장에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만나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한국이 내년부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임기를 시작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러시아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안보리에서 한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건설적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 간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북핵 문제와 관련한 러시아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는 의도된 발언이란 해석이다. 박 장관이 “안보리에서의 건설적 역할”을 언급한 것도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를 막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압박성 메시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안보리는 지난해 5월 이후 북한의 ICBM 발사에 따른 추가 대북 제재 결의와 의장 성명을 시도하고 있지만 중·러의 반대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북한의 ICBM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안보리 공개회의 역시 빈손으로 끝났다. 제프리 드로렌티스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중·러를 겨냥해 “2개 이사국의 반대로 안보리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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