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청년·여성 도덕적 해이 집단 취급” 여 “부정 수급 개선”

김기정.강보현.신수민 2023. 7. 1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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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럽급여·샤넬 선글라스’ 발언 파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화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14일 정치권은 실업급여 관련 발언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실업급여를 ‘시럽(syrup)급여’에 빗댄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발언과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샤넬 선글라스’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여야 간에 설전이 오갔다. 야권은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 공청회에서 고용노동부 담당자가 “(실업급여 신청 때) 남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고 젊은 청년이나 여성은 이 기회에 쉬겠다며 샤넬 선글라스를 산다”고 한 발언에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청년이나 여성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저렇게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느냐”며 “고용부가 여성과 청년 전체를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집단으로 취급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실업급여를 받는 수십 만명을 한두 명 사례를 갖고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감의 뜻을 전했다. 다만 실업급여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거듭 강조했다. 이 장관은 지난해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 경제 보고서를 언급하며 “전 세계에서 한국만 유례없이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많아 소득이 역전된다”며 “OECD도 이 부분을 개선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업급여 제도의 본질은 근로 의욕을 빨리 제고하고 재취업을 촉진해 자립을 도와주자는 것”이라며 “취약 계층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여당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여론의 악화를 고려한 듯 속도 조절도 함께 주문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실업급여의 반복적·부정 수급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건 야당 위원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다”면서도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보다 같이 논의해서 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당부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맹비난을 쏟아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자 스스로 내는 부담금(고용보험)으로 실업급여를 받는데 마치 적선처럼 생각하는 정부·여당의 태도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어려운 삶을 챙기는 게 정치의 책무인데, 어째서 이 어려운 상황을 넘어가기 위한 제도조차 폄훼하고 혜택을 보는 사람조차 모욕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박대출 의장의 ‘시럽(syrup) 급여’ 발언에 대해 “실업급여를 받는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며 “일자리가 없어 서러운 국민을 위로하진 못할 망정 조롱과 모욕을 하는 건 힘 있는 자의 오만과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실업급여 논란을 ‘주 69시간제 논란 시즌 2’로 규정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의 실업급여 무력화는 ‘주 69시간제’에 이어 노동자들에 대한 2차 대전 선포”라며 “실직자들의 생계유지와 같은 사회안전망으로서 실업급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지적했다.

여당은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정 협의 과정에서 있었던 발언과 관련해 문제 제기도 있지만 사실 (실업급여를) 반복해서 수급하는 일들이 많고 재취업률도 극히 낮다”며 “현장의 우려를 취합해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2015년 연령별 실업급여 부정수급자 비율’을 공유하며 “부정수급자의 절반 가까이가 50대 이상”이라며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문제부터 시작해 (여당이) 대체 정책의 조준점을 어디로 삼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런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시럽급여’ 발언에 대해서는 “망발”이란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재 실업급여 제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직장인 노모(30)씨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유럽여행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며 “심지어 구직 활동을 건성으로 해도 매달 160만~180만원이 나오는데 누가 일하면서 250만원 받을 생각을 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호영(31)씨는 “실업급여를 수개월씩 주는 것도 문제고 한 사람이 여러 번 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며 “평생 직장을 잘 다니는 사람만 호구인가”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6개월 채우고 퇴사를 반복하면서 실업급여를 악용하는 사례가 실제 있다. 손을 보긴 해야 한다” “다니기 싫다고 퇴직해 놓고 실업급여를 안 주면 노동청에 신고해서 어쩔 수 없이 줄 때도 많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일부 사례로 제도 자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왔다. 정모씨(38)는 “지병을 이유로 퇴사했는데 자발적 퇴사라는 이유로 실업급여를 주지 않으려고 해서 관련 자료를 몇십 장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받았다”며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는 경우도 있는데 실업급여를 남용한다고 논란을 부추기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민호(31)씨는 “고용주가 편의에 따라 직원을 함부로 해고하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이라며 “무작정 없애는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사람에겐 가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하한액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재 실업급여 제도는 지급 기간도 짧고 실업자들의 구직 환경을 보장해 주는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며 “부정수급 등 일부 일탈을 과잉 부과 문제로 호도하거나 실업 수급자들을 낙인 찍으며 전체 제도의 설계 방향을 논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철성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때 실업자가 늘어 한시적으로 실업급여 하한액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90%로 올린 게 지금까지 이어진 탓”이라며 “하한액을 폐지하거나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정·강보현·신수민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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