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식 아닌 생각 꺼내는 ‘IB 교육’ 대입 연계 땐 효과 볼 것

2023. 7. 1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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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사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선발 기준이 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교육 강화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교육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2009년 교육감 직선제 이후 진보의 아성과 같았던 경기도에서 처음 등장한 보수 성향 교육감이다. 전국 학생 수의 3분의 1이 몰려 있는 경기도의 규모와 상징성 때문에 이명박 정부 실세 정치인 출신인 임 교육감의 당선은 더더욱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임 교육감이 시행했던 ‘9시 등교제’ 폐지였다. 일찍 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 학생, 또는 와야 할 사정이 있는 학생에게 등교 시간을 선택할 권리를 돌려준 것이다. 취임 당시 ‘임태희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지난 1년여 동안 ‘임태희 색깔’은 그런 식으로 자연스레 드러났다.

수학능력시험의 킬러 문항 배제와 사교육 경감을 위한 정부의 드라이브가 교육계의 핫이슈가 되고 있는 지금,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임 교육감은 “의도적으로 킬러 문항을 만드는 건 범죄 행위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공교육 회복의 대안으로 ‘지식을 집어넣는’ 수업이 아니라 ‘생각을 꺼내는’ 수업인 IB(국제바칼로레아)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경기도 일부 학교에서 행해지는 실험 단계인 IB교육이 무너진 공교육을 살릴 대안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왕장관’ ‘왕실장’으로 불리던 MB 정부의 실세 정치인에서 2017년 국립 한경대 총장을 맡으며 교육자로 변신한 뒤 경기도교육감이 된 그를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경기도교육청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학생 기초 역량·기본 인성 키우는 게 책무

Q : 진보 교육의 아성인 경기도에서 보수 성향 교육감이 당선된 건 13년 만이다. 현장을 직접 보니 어떤가.
A : “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들의 기초학력과 체력이 떨어지고, 친구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성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상적인 대면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공동체성 등 인성교육에 무관심했던 측면도 있다. 그래서 기초 역량과 기본 인성 키우는 걸 책무로 여기고 여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Q : 경기도는 여전히 전교조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교육감의 철학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A : “수업에 편향적 의견을 주입하는 교육은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정한 정치 이념이나 편향된 의견과 관점을 수업에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징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상반된 여러 의견을 소개하고 학생들끼리 토론하도록 해서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는 건 환영할 일이다.”

Q : 취임 후 처음 지시한 ‘1호 결재’가 전임 교육감이 시행한 ‘9시 등교제’ 폐지였다. ‘0교시’가 부활할 거란 우려도 있었는데 등교 시간을 자율화한 이유가 궁금하다.
A : “9시 등교제는 현실과 맞지 않았다. 9시까지 교문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맞벌이 학부모는 어쩔 수 없이 일찍 나와야 하니 학원에 ‘아침 수업’이 생기기도 했다.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긴 거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등교 시간을 학교장 재량에 맡겼다. 그랬더니 경기도 전체 학교의 절반 가까이(48%) 되는 1000여 개 학교가 전문 지도교사를 뽑아 아침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찍 학교에 와서 공을 차고 운동할 사람은 운동하고, 공부할 사람을 공부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닌가. 당연히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다.”

Q : 최근 킬러 문항 논쟁이 불거지면서 사교육을 절대악으로 보는 인식이 커졌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조화를 이룰 방법은 없을까.
A : “학교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 특별한 사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선발 기준이 있다면 이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의도적으로 킬러 문항을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범죄 행위에 가깝다. 공교육 강화 방안에 대해 그동안 자율성이 보장됐던 평가가 일제고사 식으로 바뀌거나 입시경쟁을 다시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현장의 우려도 있다. 이젠 단편적 지식 암기와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을 키우고 질문하는 교육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논·서술형 평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Q : 킬러 문항 근절과 공교육 회복의 대안으로 임 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IB(국제바칼로레아) 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감직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IB교육을 전국으로 확산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뭔가?
A :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인 국제바칼로레아기구(IBO)가 개발한 교육 과정이다. IB 교육은 지식을 집어넣는 수업이 아니라 생각을 꺼내는 수업이다. 학생의 창의적·비판적 사고력과 자기주도적 역량을 키울 수 있다. 국내에선 1980년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처음 도입했고, 경기외국어고도 2010년에 인증을 받았다. 경기도에선 올해 200개 학교를 IB 기초학교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국의 여러 교육청에서도 경기도가 추진하는 IB 교육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다.”

Q : IB 교육을 도입해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예산도 만만치 않다. 현행 대학 입시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A : “경기도의 모든 학교를 모두 IB 교육으로 바꾸려는 건 아니다. 우선 경기형 IB 교육의 초석이 될 관심학교 25개를 선정해 IB 철학과 교육 목표, 교수·학습 방법을 연구하고, 후보학교-인증학교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물론 더 큰 효과를 보려면 대입제도와 연계돼야 한다. 대학입학사정관 대상 정책설명회나 세미나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대입 전형에 적용되도록 노력 중이다.”
디지털 교육 활용해 학생 맞춤형 코칭

Q :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교육도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현장의 반응이 어떤가.
A : “지금까지 공교육은 평준화, 보편성에 초점을 맞췄다. 어떤 학생은 수준에 안 맞고, 누구는 못 따라가서 재미없으니 전부 사교육으로 가는 거다. 하지만 하이테크 맞춤형 수업은 학생이 스스로 수준에 맞춰 진도를 조절할 수 있다. 교사는 AI 기반 교수학습플랫폼에 학생들의 과목별, 영역별 강·약점을 파악해 바람직한 학습법을 코치해 줄 수 있다. 여기에 관심을 갖고 연수 활동 참여를 희망하는 교사가 1만2000명을 웃돌 정도로 현장의 관심이 크다.”

Q : 취임하면서 ‘임태희라는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겠다’고 한 게 떠오른다. ‘OOO표 혁신교육’과 같은 상징적 정책을 내놨던 전임 교육감과 차별화하려는 것인가.
A :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정치적 의미를 담는 건 ‘상징 조작’일 뿐이다. 특히 교육자는 그래선 안 된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교육도 ‘서비스’다. 교육청과 교육감은 교사와 학생을 뒷받침하는 데 충실하면 된다. 교육 자율권은 교사에게, 학습 주도권은 학생에게 줘야지, 억지로 끌고 가는 카리스마의 시대는 지났다. 나의 색깔을 내기 위해 교육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건 내 교육철학이자 신념이다.”

Q : 이른 질문이긴 한데, 교육감 임기를 마치고서 정치에 복귀할 생각이 있나.
A : “아휴,(웃음) 이제 초반인데 벌써 임기 후를 얘기하는 건 옳지 않다. ‘직업’의 직(職)은 자리이고, 업(業)은 일이다. 교육감에 나서면서 결심한 대로, 자리를 좇을 시기는 지났으니 ‘업’에 충실하려 하고 있다.”

■ 게임하듯 태블릿으로 수업, 딴짓하는 아이 한 명도 없어

지난 12일 경기도 디지털교육 선도학교로 지정된 김포 솔터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태블릿 PC를 이용해 영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유길용 기자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솔터초등학교 6학년 3반 교실에선 영어 문장을 따라 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복도로 새어 나왔다. 교실에는 26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태블릿 PC로 각자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이 마치 게임을 하는 듯했다. 간단한 영어 대화를 만든 뒤 AI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태블릿을 몇 번 조작하더니 각자 단편 카툰을 만들어냈다. 교사는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태블릿 조작에 서툰 아이들을 도왔다. 한눈팔거나 조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선생님 말씀을 받아 적는 기존 수업 방식과 전혀 다른 풍경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시작한 디지털 선도학교의 수업 장면이다.

디지털 선도학교는 지난해 7월 취임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핵심 공약인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의 일환이다. 교사는 학생의 학습설계자이자 사회·정서적 지도자 역할에 충실하고, 디지털 기기 등을 활용해 학생 스스로 학습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수업 방식과 프로그램은 각 학교 교사들이 연구해 스스로 정하는데, 대개 학생의 자율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솔터초 디지털교육을 전담하는 이서영 교사는 “디지털교육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몰라보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선도학교는 경기도내 62개 학교가 지정돼 AI와 빅데이터 기반으로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 이뤄진다. 경기도교육청 미래교육담당관실의 정선미 장학사는 “현장에서 다양한 교수 방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수업 방식과 예산 사용에 있어 학교장과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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