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제국도, 스와힐리 문명권도 바닷길로 통했다
주강현 지음
바다위의정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구상을 처음 제시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참여국이 150개를 넘었다. 옛날 동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인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현대판으로 다시 구축해 중국 주변국가들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이 대담한 프로젝트는 전 세계 인구의 75%, GDP의 50%를 넘는 규모로 불어났다.
중국 대륙을 거쳐 가는 육로 실크로드야 어쩔 수 없겠지만 남중국해, 인도양, 아라비아해,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해양 실크로드는 한국의 주요 무역항로이기도 해서 우리로서도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해양 실크로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잦은 충돌과 경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현대 한국은 해운·조선·무역 강국으로 5대양과 크고 작은 바다들을 누비고 있다. 우리에게 바다와 항로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
고대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밸리 두 문명은 바닷길로 연결돼 있었다. 당시에는 비단 무역이 없어서 실크로드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이 바닷길이 먼 후대에 이루어질 해양 실크로드의 모태적 기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세계의 무역력이 동방까지 확산된 데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 원정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가 세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잇는 역할을 했는데, 오랫동안 동방과의 교역 전초기지를 담당했다.
본격적인 해양 실크로드 역사를 논할 때 이슬람제국의 등장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7세기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한 이슬람제국은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유럽의 이베리아반도까지 통합하며 대서양에서 인더스강 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이슬람의 바다’를 구축했다. 이슬람세계에서 글로벌 물류체계가 통합됐고 칼리프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세력은 누구나 이 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무슬림의 의무인 메카 순례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활성화하고 상품교역을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홍해 연안의 아프리카 기독교왕국인 악숨제국의 최대 항구는 아둘리스였다. 상아, 노예, 향신료 등의 집산지로 홍해와 인도양 바닷길의 주요 기착지였다. 아라비아 반도 예멘 서남부에 위치한 아덴은 천년항구로 불린다. 오만 왕국은 해양 실크로드의 뱃사람 신드바드의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까지 이어지는 동아프리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스와힐리 문명권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까운 마다가스카르는 인도양을 건너온 말레이-인도네시아계가 주를 이룬다.
면화의 본향인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해역권은 기원전부터 페르시아만과 빈번하게 소통했다. 후추의 본산지 말라르바는 방대한 양의 향료를 유럽으로까지 수출했다. 벵골만 미얀마는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남방실크로드 촉신독로의 거점이었다.
석유 등 주요 원자재와 상품이 통과하는 핵심 항로인 동남아 믈라카해협과 남중국해는 지금 ‘뜨거운 바다’다. 특히 남중국해에선 미·중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중국의 현대판 일대일로 해양 실크로드의 주요 통과 지역인 이곳에서도 과거 많은 해양 강국들이 명멸했다.
한반도의 경우 삼국시대와 고려 때까지만 해도 해양교통이 활발했지만 조선시대 들어 해금정책으로 바다를 통한 교역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바다를 경시한 결과는 너무나 자명했다.
항로가 불분명하고 다양했던 과거의 해양 실크로드 연구에 대한 진수, 정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책들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해양실크로드 문명사』는 바닷길과 그 주변의 세계 문명을 탐구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항해술, 조선사, 무역사 등을 포함한 해양사에 관한 융복합 연구와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 이슬람·불교 등 각종 종교사, 중국과 인도의 정사,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사료들 그리고 금석문, 구전신화, 고고학적 발굴 성과 등을 총망라해 재구성했다. 인류의 해양문명사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다리로서 매우 유용하다.
지금은 다시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의 시대다. 파란만장한 해양 실크로드 문명사는 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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