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희망은 “생존의 본질”
제인 구달 외 지음
변용란 옮김
사이언스북스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이 행동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지만 자극하는 건 아니다. 공포, 우울, 무기력감, 운명론, 체념 등도 느끼게 한다. 이를 생태적 비애, 생태적 불안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위기를 알수록 희망을 품기도 힘든 시대, 아흔을 바라보는 제인 구달은 ‘희망’을 말한다. 침팬지 연구에서 환경·빈곤 문제 등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그는 공저자 더글러스 에이브람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희망이 무엇이고, 희망의 네 가지 이유가 뭔지 풀어낸다.
케냐의 황폐한 채석장이 시멘트 회사 CEO의 결단을 거쳐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한 일은 ‘자연의 회복탄력성’을 실감하게 하는 사례. 여기에 ‘인간의 놀라운 지능’, ‘젊은이들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도 있다. 너무 당연한 듯 들려 감흥이 덜한 대목도 있지만, 책 전체로 보면 공저자 에이브람스의 질문과 서술이 균형을 잡는다. 회의주의자를 자처하며 집요하게 이어가는 질문들에 구달은 연구와 사회적 활동을 아우르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층 정교한 생각과 구체적 사례들을 들려준다.
그도 희망을 잃어버린 적이 있을까. 구달은 남편이 암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났을 때를 떠올린다. 재혼한 지 5년도 되기 전, 그가 마흔여섯일 때였다. 이번 책은 20여년 전 나온 『희망의 이유』 같은 회고록은 아니지만, 그의 삶에서 중요한 여러 지점들을 압축적으로 짚어낸다.
강연하며 지친 목을 저녁마다 위스키로 축이고, 과학자보다 ‘자연주의자’를 자처하는 등의 면모도 드러난다. 구달은 영적인 힘에 대한 믿음 역시 뚜렷이 드러내는데, 그렇다고 다른 이에게 이런 시각을 권하거나 설득하진 않는다.
공저자가 인용한 대로, 그레타 툰베리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당신들의 희망을 바라지 않는다”고 일갈했던 터. 구달은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두려움·분노의 반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말을 잇는다. “희망 아니면 두려움이라거나, 희망 아니면 분노라거나 선택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에겐 모두 필요합니다.”
그에 따르면 희망은 “인간의 생존의 본질”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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