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과 훌리건, 나쁜 정치 만드는 유권자

2023. 7. 1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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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반대한다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제이슨 브레넌 지음
홍권희 옮김
아라크네

이 책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위대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통쾌한 도발이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부패하며 탐욕적인 정치인과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유권자에 대한 날카롭고 매서운 공격이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는 비민주주의적인 체제보다 자유를 더 잘 보호하며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경향이 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를 예찬해왔다. 하지만 지은이는 현실 정치가 우리를 갈라 놓고 모욕하며 타락시키고 시민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 네바다주 강연장 근처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걸려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로 전략·경제·윤리·공공정책을 가르치는 지은이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 유권자나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유권자를 민주주의의 결함 사례로 꼽는다. 초점은 유권자다. 연구 결과,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투표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찬성하지 않았을 정책과 후보에 표를 던진 유권자가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의 잘못된 투표는 ‘나쁜 정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치적 실망과 절망, 그리고 냉소를 불렀다.

지은이는 유권자를 호빗·훌리건·벌컨의 세 유형으로 나눠 비교한다. 호빗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정보력, 그리고 참여도가 떨어진다. 뜨거운 이념이나 정치 열정이 없으며 수동적이다. 미국에선 여기에 속하는 수많은 유권자가 선거에서 통상 투표율이 낮다.

훌리건은 정치에 관심이 크고 정치 성향이 뚜렷하며 정보가 많은 시민이다. 이들에게 정치란 스포츠와 같다. 세상을 내 편과 적으로 나누기 일쑤다. 자신의 믿음에 지나칠 정도로 강한 확신이 있다. 이 때문에 확증 편향이나 집단 간 편향 등 인지 편향에 시달린다. 근시안이나 외곬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투표해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SF시리즈 ‘스타트렉’에 나오는 논리적이고 좀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외계종족에서 이름을 딴 벌컨은 이상적인 유권자다.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정보가 풍부하며, 자신의 신념이나 정파에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게 이끌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현실 정치에서 유권자의 대부분이 호빗이나 훌리건이며 정치와 선거 규칙도 결과적으로 이들이 정한다. 철학적 민주주의 학자들이 내세우는 민주주의 모델과 현실 정치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는 가장 큰 이유다.

지은이는 미디어·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정치 참여가 늘면서 호빗은 훌리건으로, 훌리건은 더 질 나쁜 훌리건으로 악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이뤄지면서 과격한 대결과 진영 나누기, 무조건 편들기 등 부작용이 오히려 커진 것이다.

지은이는 대안의 하나로 에피스토크라시(Epistocracy)를 제안한다. 지식을 갖춘 유능한 시민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유능하고 지식이 부족한 시민보다 더 많은 정치적 권한을 주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보다 현명한 사람이 선거와 정치, 정부를 좌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한때 대학 졸업자들에게 두 표를 행사하게 한 나라도 있었다.

문제는 이럴 경우 인구통계학적으로 미국 유권자의 힘은 더 흰 피부에 더 부유하며 더 남성적으로 변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 지식이나 정보가 모든 인구 집단에 동등하게 공유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에피스토크라시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대안도 검토한다. 선출된 공직자가 가장 긍정적 효과를 낼 정책을 결정하는 퓨타키(Futarchy)나 의회나 기업이 시장 예측을 통해 더 좋은 의사결정을 이루는 프리딕토크라시(Predictocracy) 등 다양한 제안이 있다. 정해진 답은 없다. 시민들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원제 Against Democracy.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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