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 만들어 활용 ‘삼생농법’ 40년…대잇는 순종 토마토, 그래 이맛이야

2023. 7. 1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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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農夫餓死 枕厥種子)”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요즘 종자를 갈무리하는 농부는 많지 않다. 대부분 씨앗이나 모종을 사다 심는다. 장점이 다른 두 개체를 교배해 형질이 우수한 F1(1세대) 잡종을 만들어 종묘상에서 판다. 이렇게 만든 형질은 유전하지 않는다. 씨를 받아 심어도 싹이 트지 않거나 장점이 사라진다.

세계 유일 고유 품종 ‘그래도 레드’

농장 투어 중 ‘내 입에 맛있는 토마토 알아보기’의 시식용 에어룸 토마토 플래터(2인용). [사진 이택희]
예전에는 농가마다 마당에 두엄더미가 있었다. 거름은 농토의 밥이므로 식량 준비하듯 풀이나 짚, 동물 배설물을 날마다 조금씩 모았다. 요즘은 그렇게 퇴비를 만들어 쓰는 농가는 1%도 안 된다고 한다. 제품으로 나오는 퇴비를 쉽게 구할 수 있고 화학비료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꼬박꼬박 퇴비를 만들고, 종자 수를 늘려가며 소중히 갈무리하는 농장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그래도팜’이다. 나무껍질(특히 참나무)과 우드칩·계분·쌀겨·골분을 섞고 미생물을 넣어 6개월 이상 발효한 퇴비를 활용하는 유기농업을 40년이나 이어가고 있다. “농민은 땅을 살리고, 그 땅은 농작물을 이롭게 키우며, 그 농작물은 사람을 건강하게 살린다”는 삼생(三生)의 철학과 신념을 실천하는 농법이다.

일찍이 1983년 선구적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한 아버지는 난관이 닥칠 때마다 “그래도 해봐야지” “그래도 어쩌겠냐” “그래도 그럼 쓰냐”며 뚝심으로 돌파했다. “용기·끈기·결기로 신념을 지켜온 부모님”을 지켜보며 미대를 나와 브랜드 기획자로 성장한 아들은 ‘그래도팜’이라는 농장 이름을 헌정하고, 2015년부터 아버지 농장 옆에 새 농장을 마련해 가업에 합류했다. 현재 농장은 원건희(65)·승현(40)씨 부자가 2인3각 형태로 운영한다.

승현씨는 아버지 방식에 현대적 기법을 더했다. 농장 전체에 디자인 개념을 적용해 그림처럼 아름답게 가꾸고, 판매는 홈페이지를 통한 직거래로 일원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세계 각지의 에어룸 토마토 품종을 들여와 다양한 맛과 향의 토마토를 생산하는 것이다. 에어룸(heirloom)은 가보, 세습재산이라는 뜻인데, 씨앗으로 대를 잇는 순종을 말한다.

지구상에 2만5000여 종의 토마토가 있고, 그래도팜은 50가지 종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30여 종은 계절성과 생육 특성을 테스트 중이고, 올여름 작기(7월 중순~9월 초 수확)에는 18종을 판매용으로 재배한다. 2017년 에어룸 토마토에 관심을 갖고 여러 나라를 돌며 종자를 알아본 뒤 다음 해 시험재배를 했고 2019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직거래하는 회원만 3만여 명 달해

농장 고유종 ‘그래도 레드’를 설명하는 원승현 대표. [사진 이택희]
2021년에는 밭에서 특이한 토마토를 처음 발견했다. 씨를 받아 심었더니 잘 자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세계토마토협회(World Tomato Society)에 등록된 6200여 종을 검색해보니 그 가운데는 없는 품종이었다. 협회 공인을 받아 품종 등록을 한 건 아니지만, 현재로는 세계에 하나뿐인 그래도팜 고유 품종인 셈이다. 발견 3년째인 올해는 여름 작기 18개 품종의 하나로 정식 재배를 시작했다. 이름을 ‘그래도 레드’라고 지었다.

승현씨는 에어룸 토마토 재배 하우스를 보여주면서 잎을 문지르고 손에 묻은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과일·향료·광물질 …, 품종마다 향이 달랐다. 열매도 그렇게 향과 맛이 다르고, 모양이나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고추 모양 토마토도 있다.

농장을 방문해 다양한 토마토를 맛보며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6월에 시작했다. 주말과 공휴일 오전 11시~오후 6시에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두 종류다. 자율 팜투어 방식인 ‘토마로우(Tomarrow) 플래터’와 농장 주인이 직접 안내·설명하는 40분 도슨트 투어인 ‘플레이버 오브 토마로우’. 그래도팜의 서비스 부문 브랜드인 ‘토마로우’는 내일(Tomorrow)과 토마토(Tomato)를 합성한 말이다. 프로그램 구상과 준비에 6년이 걸렸다고 한다.

10여 가지 토마토를 담은 택배 상자. [사진 이택희]
휴일 낮 동안 농장을 개방해 운영하는 자율 투어는 개념도를 보면서 토양전시관, 퇴비발효장, 토마토밭과 정원을 돌아보고 토마토 플래터 맛을 본다. 플래터에는 10여 가지 에어룸 토마토, 바게트, 부라타 치즈, 살사 베르데, 레드 토마토 버터, 옐로 토마토 잼이 차려져 나온다. 우선 생과를 먹으면서 색깔과 모양에 따라 다른 향과 맛을 구별해본다. 함께 나온 소금·후추·올리브유나 여러 가지 재료를 어울려 먹어보며 자신에게 맞는 품종과 조합을 찾아볼 수도 있다. 품종을 고르면 씨앗 하나를 심어서 ‘반려토마토’ 선물로 준다. 요금은 1인 2만9000원(어린이 1만9000원).

도슨트 투어는 예약제로, 오전·오후 두 차례 6~10인 규모로 진행한다(예약 6인 미만 땐 취소). 투어 코스를 돌아본 후 다양한 토마토 품종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토마토, 문어 세비체, 토마토 파스타, 닭 구이, 아이스크림 순서로 나오는 다이닝을 즐긴다. 1인 6만6000원.

봄·여름·가을 3기작 재배하는 토마토는 작기마다 5구간으로 수확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하는 회원 3만 명, 매년 1회 이상 주문하는 회원은 1만5000명쯤 된다고 한다. 주문하면 작황에 따라 2~4주 기다려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유기농 기토(대추방울토마토) 2.5㎏ 2만9000원, 에어룸 토마토는 5~10종 한 상자 3㎏에 4만8000원이다(택배비 각 3000원 별도).

생산량이 가장 많은 F1교배종 ‘기토’는 “(그래도팜의) 기발한 기술로, 기름진 토양에서, 기가 차게 잘 자란, 기묘한 질감의 기막힌 향과 맛,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기적의 토마토”라는 내용을 압축한 이름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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