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한여름 더위 식혀주던 수박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에 수박은 최고의 먹거리였다. 냉장고가 없던 때라서 어머니는 차가운 우물물에 수박을 담가 놓으셨다. 그러면 아이들은 우물가를 빙빙 돌다가 수박이 잘 익었나 보려고 삼각형으로 딴 꼭지 부분을 재빨리 뽑아 속을 베어 먹고 얼른 뚜껑을 덮곤 했는데 그 달곰한 맛에 더욱 안달이 났다. 이윽고 어머니가 양은쟁반에 올려놓은 수박을 커다란 식칼로 자를 때 칼만 대도 저 스스로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쫙 벌어지던 새빨간 속살에 기웃거리던 무더위는 저만치 달아났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 “어, 이거 나네?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농담을 던지는 건 어렸을 적 한두 번쯤은 수박모자를 써본 경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수박 한 통을 나눠 먹을 식구가 너무 많아서 모두 자신의 몫이 부족했고, 그래서 자꾸 깊게 파먹다 보면 수박껍질에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그 아쉬움이 수박모자가 되었다. 바닷가에서 만난 이 수박모자 아이는 과연 수박 한 숟가락을 더 먹을 수 있었을까?
초복을 지나 중복을 향해 간다. 달고 시원한 수박의 계절이다. 그런데 가난한 세월을 넘어선 지금도 선뜻 수박 한 통 사기가 버겁다. 이번에는 예전과 반대로 수박 한 통을 단숨에 먹어치울 식구가 없는 탓이다. 그러니 시장에서는 4분의 1로 쪼갠 수박을 포장해서 팔기도 한다.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시대에 먹을 사람은 많고 수박이 모자랐던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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