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주변인 7명 통해 본 英 빅토리아 여왕

김용출 2023. 7. 1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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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즉위… 64년간 치세 이뤄
어머니 등 친인척과 거리 두고
매일 총리 만나 나랏일에 몰두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이지만
죽을 때까지 정직·진실성 가져

여왕이 사랑한 사람들/리턴 스트레이치/김윤경 옮김/글항아리/2만원

“신의 섭리로 이 자리에 오르게 됐으니 온 힘을 다해 조국에 대한 의무를 이행할 것이다. 비록 어리고 많은 부분에서 미숙하지만, 나만큼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국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와 소망이 넘치는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한다.”

1837년 6월20일 새벽, 대영제국의 국왕 윌리엄 4세가 숨을 거두자마자 가장 가까운 친척인 열여덟 살의 빅토리아가 윌리엄 4세의 뒤를 이어서 영국 여왕에 즉위했다. 그날 오전, 그녀는 어전회의에 참석함으로써 대영제국 여왕으로서 첫 공식 업무를 수행했다. 빅토리아는 여왕에 즉위하던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시대를 열었지만, 인간적인 약점도 적지 않았다. 사진은 재위 60주년 기념사진. 출판사 글항아리 제공
빅토리아는 18년 전인 1819년 런던 켄징턴 궁전에서 켄트 공작 에드워드와 작센코부르크의 공녀 빅토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연인 관계였던 존 코로이 밑에서 자랐고, 외숙부이자 나중에 벨기에 국왕이 되는 레오폴드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나갔다. 1827년 영국 의회에 의해 후계자로 인정됐다.

빅토리아는 즉위 뒤 버킹엄궁전으로 들어가면서 늘 자신을 간섭하던 어머니를 자신의 거처에서 멀리 떨어진 방으로 쫓아냈고, 코로이 역시 연금을 주어 퇴직시켰다. 레오폴드 역시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는 내각의 경고를 받으면서 빅토리아는 단독자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친인척 측근을 몰아낸 그녀는 즉위 직후 매일 1시간 이상 멜버른 총리를 만나서 일을 배우고 익혀 나갔다. 그녀는 즉위 얼마 뒤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전에도 말했듯이 대신들이 수많은 문건을 들고 오고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문건도 많다. 매일 서명해야 할 서류가 얼마나 많은지 할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이 일이 즐겁다.”

마흔두 살이던 1861년, 남편 앨버트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으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그녀의 긴 생애 가운데 후반부는 거의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앨버트가 죽은 뒤 시종이었던 존 브라운과 급속도로 친해져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빅토리아는 여왕으로서 당대의 정치가였던 파머스턴과 글래드스턴, 디즈레일리, 베켄즈필드 등과 제국 운영을 논의해야 했다. 파머스턴과 자주 긴장했던 그녀는 휘그당 출신의 글래드스턴 역시 불신과 반감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는 처음 보수적인 디즈레일리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디즈레일리가 빅토리아의 처지를 이해해 주면서 좋은 관계로 바꿨다.

제2차 보어전쟁이 한창이던 1901년 1월, 대영제국 황금기를 구가했던 빅토리아는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무려 64년간 군주로 재위했다. 엘리자베스 2세에 이어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영국 군주였다. 장남 에드워드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전기문학의 거장인 저자는 책에서 어머니 켄트공작 부인, 하노버 출신의 가정교사 레첸, 남편 앨버트, 멜버른 총리와 파머스턴, 글래드스턴, 베컨즈필드 등 그녀가 열렬히 사랑했거나 증오했던 7명의 인물을 통해서 빅토리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레첸, 레오폴드 등은 빅토리아에게 제왕적 가치관 형성에 기여했고, 남편 앨버트는 밤새워 춤추기를 즐기던 그녀를 서류 더미 앞으로 불러냈으며, 멜버른과 파머스턴, 글래드스턴 등은 때로는 의기투합하거나 대립을 통해서 제국을 움직여 나갔다고 분석했다.
리턴 스트레이치/김윤경 옮김/글항아리/2만원
책에선 빅토리아의 약점도 많이 드러난다. 저자에 따르면, 빅토리아 여왕은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이었으며, 지적이지도 못했다. 심지어 군주답지 못하게 걸음걸이마저 촐싹거리고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해 빈축을 샀다. 본인이 여성이면서도 여성 인권 향상에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빅토리아 여왕은 정직하고 진실했다. 정직한 아이였던 빅토리아는 죽을 때까지 진실성을 간직했다고, 저자는 주목했다. 빅토리아는 사랑과 증오부터 고집까지 가까운 정치인은 물론 국민에까지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재위 시기는 영국이 영토 확장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제국주의로 가속화한 시기였다. 특히 1877년부터 영국 국왕 최초로 인도 제국의 황제로 군림하는 등 재위 기간 세계 대륙의 4분의 1을 통치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올려놨다. 빅토리아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 때문에 현실 정치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비공식적인 영향력은 막대했을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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