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튜닝] “나무야 미안해”(MD칼럼)

2023. 7. 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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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며칠 전 한낮에 지하철을 탔다가 깜짝 놀랐다. 이건 뭐 더워도 너무 더웠다. 역까지 조금 걸은 탓인지 객차 안 사람이 내뿜는 열기 탓인지 지하철 안은 냉방을 충분히 가동하고 있음에도 냉기를 찾기 힘들었다. 요즘 같은 날 사람이 많은 출근 시간엔 정말 숨막히게 덥겠다.

1인 출판사를 시작한 이후 거의 외출을 하지 않다 보니 한낮 더위는 남 얘기였다. 내 작고 귀여운 손선풍기가 없었다면 그날 나는 더위를 먹어 아직도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후위기 속에 전 세계 기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엘니뇨, 라니냐는 교과서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었다. 몸소, 그것도 노년이 아닌 사십 대에 그 영향을 직접 겪을 줄은 몰랐다.

북에디터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선 직업 특성상 새로운 기획거리를 찾기 위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다른 이유도 있다. 종이책이라는 물성을 만드는 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무를, 숲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에디터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나무야 미안해”이다. 자신이 기획한 책, 지금 만드는 책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종이책은 다른 사업에 비해 환경파괴 요소가 적다고 한다. 최원형 환경생태 작가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종이로 대체되는 현재, 종이 자원 자체는 나쁘지 않다’며, ‘종이는 재활용성이 우수한 자원으로서 수거되는 폐지의 96%가 재활용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이책을 만드는 내가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환경 보호를 위한 생활 속 작은 실천을 하려고 노력한다.

혼자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종이 교정지 보는 횟수를 줄였다. 옛날 사람이라 종이에 펜으로 교정 보는 게 훨씬 편하지만 조금씩 종이 사용을 줄이고 있다.

또한 물건을 아껴 쓰고 오래 쓴다거나, 손수건을 들고 다닌다거나 빨대를 쓰지 않으며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주위 많은 에디터가 그렇듯이.

그동안 나름의 부채감으로 환경 문제를 다룬 책 한두 권쯤 기획해봤지만 늘 판매부수라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출판도 산업인지라 어느 정도 판매부수가 보장되지 않는 책, 다시 말해 손익분기점을 못 넘길 것으로 예측되는 책은 출간이 어렵다. 아주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이 분야 책은 소위 베스트셀러가 된 전례가 없어 출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김영사 그레타 툰베리 등저의 <기후 책> 출간이 반가운 이유다.

내가 사장이 되면 돈 걱정 안 하고 내고 싶은 책 ‘맘껏 내야지’라는 야무진 꿈은 꾸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게 웬걸. 현실은 당장 다음 책 제작비를 걱정하는 상황이라 환경·기후 분야 책은 기획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기타도 나무로 만든다. 고백하자면 기타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연습이 내 뜻대로 안 될 때다. 이러다 내 분을 못 이기고 기타를 부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시험을 망치고 시험지를 찢어버리는 학생처럼 내가 못하는 건데 기타에 괜한 화풀이인 셈이다.

그러면 안 돼지. 기타도 나무로 만드는 건데. 그렇지 않아도 숲을 파괴하는 북에디터인데, 취미로 기타를 배우면서까지 그럴 순 없다. 내가 더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 나무에게 미안한 짓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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