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나의 몇가지 잘못된 점

2023. 7. 14. 22: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두 여성 노인의 활기찬 삶 고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에 질문

리디아 데이비스, ‘헬렌과 바이: 건강과 활기에 대한 연구’(‘불안의 변이’에 수록, 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소설은 이야기에 따라서 편지나 독백, 혹은 진술서나 보고서 등의 형식으로 쓰일 수 있다. ‘헬렌과 바이: 건강과 활기에 대한 연구’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두 인물에 대한 연구보고서 형식의 단편소설이다. ‘서론’이라는 소제목으로, 이 단편은 이런 첫 단락으로 시작한다. “본 연구는 팔십 대와 구십 대에도 여전히 활기 넘치는 두 여성 노인의 삶을 고찰한다. 연구 대상의 기억에 부분적으로 의존하므로, 서술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겠지만, 가능한 한 상세히 서술할 것이다. 우리는 이 연구의 면밀한 묘사를 통해, 연구 대상들의 행동과 생활사의 어떤 면이 그들로 하여금 육체와 정신, 정서, 종교 전반에 걸쳐 그토록 건강한 삶을 살도록 했는지에 대한 어떤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경란 소설가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이라고 하면 인물을 중심으로 갈등, 장면, 공간, 배경 등이 제시되는 서사구조를 말하는데, 리디아 데이비스의 소설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다. 후배 작가 데이브 에거스는 리디아 데이비스에 대해 “무엇이 단편소설인가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가정의 많은 부분을 날려버렸다”라고 표현했다.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리디아 데이비스 소설에는 처음부터 형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무(無)형식이 아니라 무한(無限)의 형식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쓴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글들을 그냥 ‘이야기’로 불러주길 바랐다고 한다.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의 특징이 있다면 독자에게 읽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는 점이다.

‘서론’ 후에 이제 독자는 ‘성장 환경’ ‘여가 활동’ ‘개인적 습관’과 같은 몇 개의 소제목에 따라 헬렌과 바이라는 인물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헬렌은 현재 요양원에서 살지만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 독립적으로 자신의 집을 돌보았다. 옷 수선 일을 했고 금연했고 간식도 조금씩만 먹었다. 규칙적이고 절제를 실천했다. 바이는 청소부로 일하는 모든 집주인이 그녀를 신뢰할 만큼 꼼꼼하게 일했다. 교회에서 노래했고 집안일과 정원 일도 스스로 했다. 예순 살에 운전을 배워 멀리까지도 두려움 없이 차를 몬다. 차이가 있으나 그녀들에겐 공통점이 더 많다. 평생 절약하는 습관을 지녔으며 상당한 거리를 걸어 다녔고 집을, 옷차림을 깨끗하게 유지한 데다 ‘성격과 기질’면에서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며 다정하고 관대했다. 평생 가족과 친구들에게 물질과 시간을 너그럽게 베풀기도 했다.

이 연구는 헬렌과 바이가 자신들의 행동이 만든 긍정적인 효과가 다시 그들에게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하는, ‘긍정 강화의 순환’이 창조되었다는 ‘결론’으로 마친다. 독자인 우리는 헬렌과 바이가 그 나이에도 어떻게 건강과 활기를 갖고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끝난 것인가? 아니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읽는 방식을 바꾸게 될지 모른다. 인물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변화했고 성장했다. 이제 독자인 나 자신에게 부드러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자, 지금 나는 어떠한가?라고.

이 단편소설의 소제목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성장 환경’ ‘일’ ‘여행’ ‘성격과 기질’ ‘대화 방법’ ‘현재 생활 환경’ 같은. 차례대로 소제목 밑에 헬렌과 바이가 아니라 독자인 나의 문장들을 적는다. 우선 나이와 이름을. 예를 들면 ‘대화 방식’에 “헬렌은 말을 하기보다 듣는 쪽이고, 바이는 말을 하는 쪽이다”라는 문장을 나는 요즘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졌다고, ‘신체 활동: 일과 놀이’ 소제목에도 걷기보다는 상당 시간 누워서 빈둥거린다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헬렌과 바이를 위한 소제목은 다 읽고 나면 이렇게 독자에게 열린 질문으로 다가와 이야기에 참여시킨다.

나에 관한 몇 개의 문장들을 빤히 들여다보니 문제점들이 확연히 보인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변화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여름에 필요한 건강과 활기를 얻기 위해서. ‘나의 몇 가지 잘못된 점’은 이 책에 수록된 리디아 데이비스의 첫 번째 이야기 제목이다.

조경란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