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박수 안 쳐도 되는 공연도 있다
침묵 지켜질 때 온전해진 음악
지휘봉 내려놓자 박수로 화답
완벽 감동, 관객 스스로 지켜내
클래식 공연장에서 음악이 모두 끝났는데도, 어디서도 박수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분명 작품은 모두 연주되었고, 마지막 음이 무대 위에서 소멸되고도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지휘자도 단원들도 모두 정지된 상태로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무대는 여전히 고요하다. 마치 시간이 모두 멈춘 것만 같다. 지휘자는 천천히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숨을 내쉰다.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는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지휘자가 몸을 움직이자 관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친다. 음악이 모두 끝나고, 무려 2분이나 흐르고 나서였다.
공연이 다 끝나고 박수를 치는 행위가 뭐가 문제가 되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훌륭한 연주 뒤에 우렁찬 박수가 따라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공연이 끝났는데 박수를 치지 말라고?’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클래식 관람 문화는 굉장히 어렵게까지 느껴진다. 사실 이 ‘안다 박수’가 문제가 되는 공연들은 따로 있다. 바로 침묵이 음악이 될 때다. 바꿔 말해, 음악이 종료되고 뒤이어 따라오는 침묵이 음악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을 때다. 그 여운을 지키기 위해, 연주자가 공연이 모두 끝났다는 싸인을 주기 전까지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어떤 장르가 여기에 해당될까? 어떤 음악이 연주될 때 박수를 아껴야 할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조용히 끝나는 레퀴엠 장르들이 대표적이다. 레퀴엠은 말 그대로 죽은 자를 위로하는 진혼곡이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레퀴엠은 슬픈 분위기 속에서 엄숙하게 종료되고, 그 이후의 침묵은 우리에게 강력한 여운을 제공한다. 여기서 성급하게 박수가 터져 나온다면, 순식간에 감정이 환기되고 감동 역시 빠르게 사라진다. 결국 ‘안다 박수’는 곡을 잘 알고 있어서 치는 박수가 아니라, 이 곡을 정확히 잘 모르기 때문에 치는 박수인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앞서 언급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9번도 마찬가지다. 말러 교향곡 9번은 말러가 완성시킨 마지막 교향곡이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레퀴엠이다. 특히 조용히 음들이 소멸하는 마지막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의 밀도가 가장 높은 순간이다. 소리는 작지만 정서적으로 클라이맥스인 것이다. 말러도 이곳에 ‘죽어가듯이’라고 지시해 두었다. 이 지시어가 반드시 지켜져야 음악이 온전히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루체른 페스티벌을 관람한 관객들은 이 음악이 주는 메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자가 마침내 지휘봉을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지는 침묵은 여전히 음악의 일부이고, 아직 작품이 모두 끝난 게 아니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감동을 관객들 스스로 지켜낸 것이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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