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크고 작은 묘비들이 꽃 없이 생기고 있어요[토요일의 문장]
김종목 기자 2023. 7. 14. 21:46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얼굴만을 기록해왔지만// 당신과 내가 같은 호흡을 나누어 가진다면/ 우리의 얼굴도 다시 쓰여야겠지요// 시든 꽃과 죽은 새와 이름 모를 당신과 걸으며/ 우리 가방에 달린 작은 방울이 흔들릴 때//…// 세계의 가장 사적인 얼굴을 수집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함께 걸어요// 나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당신은 폭격을 피해 떠나고 있어요// 그 나라엔 영문을 모르고/ 주인 곁에서 끙끙거리는 개가 있겠지요// 거리엔 크고 작은 묘비들이 꽃 없이 생기고 있어요”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창비)의 ‘꽃 없는 묘비’ 중
시 부제는 ‘우크라이나에게’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주민현이 다시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낱낱의 생명체들의 삶의 세목과 차이에 집중하는 작은 이야기일 뿐 아니라 하나의 확성기로 증폭되어온 세계의 거대한 이야기에 대항하는 작은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세상은 ‘거대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전쟁을 두고도 무기 배치나 병력 이동을 봐가며 도박 판돈 걸 듯 향배를 가늠하려 한다.주민현은 ‘지도’ ‘수치’ ‘현황’ ‘영웅담’에서 찾을 수 없는 작고 미세하며 약한 존재들에 주목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이 존재들이 내는 균열이라고 말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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