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

김태훈 논설위원 2023. 7. 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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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전란에 휩쓸린 백성의 고통을 많은 시로 남겼다. 그중 신혼별(新婚別)은 결혼 이튿날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여자의 절망과 재회의 비원을 담은 작품이다. ‘머리 올리고 부부 되었으나/ 낭군과의 잠자리 덥히지도 못했는데/ 저녁에 혼인하고 새벽에 떠나니/(중략)/ 뼈저린 마음 창자에 스민다/ 어렵게 비단치마 장만했지만/ 다시 만날 날까지 입지 않으리.’ 운 좋게 재회하더라도 비극으로 끝나는 사례도 많다. 나폴레옹 전쟁을 무대로 쓴 톨스토이 장편 ‘전쟁과 평화’에선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남자가 약혼녀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끝내 세상을 떠난다.

▶이 땅의 여성들도 70년 전 큰 아픔을 겪었다.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20만명을 넘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가 불구의 몸으로 돌아온 45만 부상 장병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신상옥 감독의 1960년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은 6·25 때 포탄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의 실화를 담았다. 불구가 되어 돌아온 남편 대신 생계를 떠맡은 아내가 그 후 가난으로 자식마저 잃는다. 몇 해 전엔 휴전 이틀 전 전사한 남편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평생 간직하고 산 여성 사연이 알려져 많은 이를 눈물짓게 했다. 이런 가슴 아픈 사례가 부지기수다.

▶전쟁터에서 두 팔과 두 눈을 잃고 돌아온 우크라이나 군인과 그를 안고 있는 젊은 아내 사진이 엊그제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다. 아내의 표정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살아서 돌아와 준 것에 대한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재회한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면서도 앞날을 걱정하는 반응도 많았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어느 미군은 얼굴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돼 돌아왔다. 기다려 준 약혼녀와 결혼했고 결혼 10주년 때는 부부가 함께 활짝 웃는 기념사진도 올렸다. 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우울증과 마약, 가정 폭력에 빠져 끝내 가족 해체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았다.

▶전쟁 직후 가난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나라가 존속하는 것은 위기에 몸바쳐 희생한 군인과 그 가족 덕분이란 사실을 한때 기피하고 외면했다. 다행히 보훈 체계가 갖춰지면서 전몰 유가족이나 전상자 가족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개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부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기 바란다. 다만, 부부가 지게 될 짐을 온전히 그들에게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부부가 나라를 향한 희생을 후회하지 않고 서로를 향한 사랑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가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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