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아버지들로부터 시작된 美 보수주의의 본질과 미래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조지 H. 내쉬/서세동 옮김/회화나무/5만원

보수란 무엇인가. 미국 보수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가 “이는 영원한 과제”라고 말한 것처럼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보수 또는 보수주의는 현상 유지, 현재의 상태를 지키려는 경향과 동일시되곤 한다. 이런 경향은 대개 봉건제·귀족·중세와 같은 유럽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보수주의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로 쓰이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경향을 보수주의라고 본다면, 자신의 체제를 지키려고 했던 스탈린이나 마오쩌둥도 보수주의자의 반열에 들 수 있다.

저자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보수주의에 대해 간명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대신 1945년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보수주의를 규정하기 위한 움직임, 관련 활동, 그리고 그 진영에 속한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미국 보수주의에 관해 설명한다.

조지 H. 내쉬/서세동 옮김/회화나무/5만원

저자는 미국 보수주의 뿌리가 건국의 아버지들과 독립선언문, 헌법, 그리고 ‘연방주의자 논고(논집)’에 있다고 봤다.(연방주의자 논고는 미국 헌법을 지지하는 85개의 논문을 말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의 법과 정치이론을 계승했고, 미국 헌법의 의도는 폭정을 좌절시키는 데 있으며, 독립선언문은 양도할 수 없는 재산권을 소중히 여겼고, 연방주의자 논고는 다수의 결정이라는 헌법적 도덕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장장 800쪽에 가까운 책의 두께가 말해주듯 보수주의의 범위를 좁히고, 그 뿌리에 대한 설명을 담는다고 해서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그나마 쉽게, 정치적으로 대입해 본다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야말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미국의 진정한 보수로 분류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보수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진보진영에 공격받았던 보수세력은 차츰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며 진용을 갖춰 나갔고,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쥐게 된다. 저자는 “1981년 미국은 곧바로 ‘레이건 혁명’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미국은 이념이 이론에서 실천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이념, 그 철학은 보수주의라고 불렸다”고 적었다. 레이건 대통령 임기 중 미국 우파는 자유지상주의·전통주의·반공산주의·네오보수주의·종교적 우파라는 다섯개의 분파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파가 이 시기 힘을 합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다만 이 책에서 레이건 시대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아니다. 첫 영문 원서는 1976년 출판됐고, 이후 20년 뒤인 1996년에 레이건 시대에 대한 내용이, 그리고 2006년 30주년을 기념해 일부 수정과 미국 보수주의의 미래에 대한 논고가 추가된 3판이 발행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레이건 이후 보수가 쇠퇴하고 다시 좌파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보기에 조지 W. 부시 정권은 보수 진영의 분열을 몰고 왔고, 2006년 중간선거에 패하며 민주당에 정치 주도권을 내줬다. 그럼에도 좌파가 있으면 우파가 존재할 수밖에 없듯이 보수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