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어 배우도…할리우드, 63년 만에 동반 파업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업체와 AI가 영화판 급속히 바꿔
“계약은 그대로인데, 기술만 혁신되고 있다” 위기감 토로
세계 최대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미국 할리우드가 63년 만에 벌어진 배우와 작가들의 동시 파업으로 멈춰섰다. 파업의 핵심 뇌관은 할리우드의 판도를 급속히 바꾸고 있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업체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할리우드 산업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지만, 이제는 그 기술이 아예 할리우드를 먹어치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배우와 작가들은 “계약은 그대로인데, 기술만 혁신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배우조합) 수석협상가 던컨 크랩트리아일랜드는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투표로 오늘 밤 12시부터 파업을 시작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우조합은 지난 한 달여간 넷플릭스, 디즈니, 디스커버리-워너 등 대형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과 고용계약 협상을 벌여왔지만, 결국 결렬됐다. 배우조합의 파업은 1980년 이후 43년 만이다.
앞서 지난 5월2일 파업에 돌입한 미국작가조합(WGA·작가조합)과 동반 파업이 이뤄지는 것은 TV에 판매된 영화 재상영분배금 문제를 놓고 함께 싸웠던 1960년 이후 63년 만이다.
배우조합은 앞서 파업을 시작한 작가조합과 마찬가지로 재상영분배금과 기본급 인상, AI 확산에 따른 배우의 권리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배우들은 특히 출연 작품의 지식재산권이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업체에 넘어가면서 시청자들이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감독·배우들에게 지급되는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연금보험 강화, 불합리한 오디션 관행 개선 등도 요구했다.
그러나 가장 주목되는 쟁점은 AI가 잠식할 할리우드의 미래다. 배우들은 앞으로 자신의 외모나 목소리가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에 무단으로 사용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크랩트리아일랜드는 “제작사 측은 연기자들이 하루 일당만 받고 촬영을 하면 그 이미지를 회사가 소유하고 동의나 보상 없이 원하는 작업에서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AI가 배우들의 신체와 연기를 대체함으로써 배우라는 직업이 폐기처분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개봉한 <인디아나존스> 5편에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의 젊은 시절 얼굴은 AI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해에는 실어증으로 은퇴한 브루스 윌리스를 AI로 합성한 광고가 배우 측과의 합의도 없이 제작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프랜 드레셔 배우조합 회장은 “고용주들은 월스트리트와 탐욕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필수적인 기여자들을 잊고 있다”며 “역겹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배우·방송인 노동조합에는 16만여명의 배우와 방송인들이 소속돼 있으나, 이번 파업은 지난달 7일 투표에 참여해 파업을 승인한 배우 6만5000명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파업에 동참 의지를 밝힌 배우들은 맷 데이먼, 메릴 스트리프, 마크 러팔로, 제니퍼 로런스, 제시카 차스테인 등 유명 배우들을 망라한다. 영화·방송작가 1만1000여명이 소속된 작가조합이 파업을 진행 중인 상태에서 배우조합까지 파업에 합류하면서 할리우드 산업은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 시사회는 배우조합 파업 발표를 앞두고 일정을 1시간 앞당겼으며, 맷 데이먼 등 주연 배우들이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뒤 파업에 연대하는 뜻으로 자리를 일찍 뜨기도 했다. 올해 가을까지 촬영이 예정됐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작 <글래디에이터 2>와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속편 등도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CNN에 따르면 밀컨 연구소는 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의 동반 파업으로 40억달러(약 5조원)가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최서은·정원식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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