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배후도, 창조의 동력도 ‘쩐’이었다

김수미 2023. 7. 14. 21: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21C 금융위기까지
역사적인 사건들 ‘금융’ 잣대로 풀어내
1차 세계대전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
연합국·독일 양쪽에 수십억弗 빌려주며
전세계 채권국가로 전후 국제질서 주도
막대한 자본, 경제강국 도약 밑바탕으로
값싼 노동력 중심 발전한 나라는 위기에
금융은 인류가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
국가 경쟁력 좌우하며 역사의 향방 바꿔

세계사의 향방을 가른 금융의 힘/천위루·양동/하진이 옮김/사이 출판/2만8000원

인류는 전쟁과 약탈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부를 축적해 왔다. 고대 로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스페인, 시리아, 마케도니아와 고대 그리스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며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전 세계 인구 4분의 3이 휩쓸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덕분에 미국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달러는 세계 화폐의 왕좌에 올랐다.

중국 인민대학 최연소 총장 출신으로 중국의 대표적 통화·금융 전략 전문가로 꼽히는 청위루 교수와 금융학자 양동이 쓴 신간 ‘세계사의 향방을 가른 금융의 힘’은 이처럼 인류사를 뒤흔든 전쟁의 배후에 금융이 있었다고 말한다. 전쟁의 원인도 돈, 목적도 돈이며 승패를 좌우하는 것 역시 전쟁 비용 즉 돈이었다. 저자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21세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는 항상 경제적 근원이 있음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1931년 미국의 뱅크런 장면. 대공황 이후 은행들마다 대량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출판사 사이 제공
◆전쟁의 배후였던 금융

제1차 세계대전은 총 30개국 15억 인구가 전쟁에 휘말리고, 4년3개월간 총 군사비 2080억달러가 소모된 전쟁이다. 유럽의 경제자원을 모두 소모하고 나서야 전쟁이 끝났지만, 최대 수혜자는 중립국을 표방하다 뒤늦게 참전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1917년 한 해 동안만 연합국에 23억달러를 빌려주고 독일에는 2700만달러만 빌려줬다. 결국 연합국은 미국의 대출 지원 덕분에 동맹국을 격파할 수 있었고, 독일은 돈을 빌릴 수 없어 패했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19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라고 불린 금융제국 리먼브라더스는 월스트리트와 전 세계 금융시장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출판사 사이 제공
1917년 3월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과의 전쟁을 부추긴 사실을 알게 돼 미국이 참전을 선포하기 전까지 미국 은행단이 연합군과 독일 양쪽 진영에 빌려준 돈은 총 21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동시에 미국 금융계는 교전국으로부터 30억달러 넘는 채권을 사들였다. 또 미국은 전 세계 금 준비금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쟁 후 연합국은 패전국인 독일에 2260억마르크의 배상금을 요구했고, 지불 능력 없었던 독일은 미국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 미국의 채무국이 된 것이다. 그렇게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의 채권국이 됐다. 전쟁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화폐였던 영국의 파운드화의 왕좌 자리도 미국 달러가 차지하게 됐다.
J.P 모건은 미국 근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금융 거두로서 1907년 미국 금융위기를 해결했다. 출판사 사이 제공
1944년 7월 세계 44개국 대표들이 모여 전후의 국제통화질서 공조를 제도화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다. 미국은 세계 화폐의 규칙을 제정하고 수정하는 권한까지 모두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달러는 한국전쟁에서 위기를 맞는다.

한국전쟁은 미국 역사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정전협정서를 작성한 최초의 전쟁이자 달러가 위축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미국은 한국전쟁과 전후 군사 배치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덕분에 유럽 여러 나라의 군수산업체들은 미국의 방대한 군수품 구입으로 호황을 누렸고, 유럽에 달러가 넘쳐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달러는 영국의 파운드를 누르고 세계화폐의 왕좌에 등극했다. 출판사 사이 제공
한국전쟁 기간 세계에서 미국의 금 준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7%에서 30%로 줄어든 반면 서유럽은 16%에서 30%로 증가했다. 이로써 제1차 세계대전 때 무너진 미국과 유럽의 금융 균형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창조의 연료가 되는 금융

고대부터 인류는 약탈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지만, 약탈만으로는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없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부유하고 풍요로운 생활 누려 창조가 나올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미국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미국이 경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창조의 힘이었다. 금융은 100여년에 걸친 미국의 산업 창조 과정에서 충분한 연료가 돼 주었다. ‘돈에는 눈이 달렸다’는 말처럼 자본은 그 시대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몰렸다가, 다른 신산업이 부상하면 재빨리 갈아탔다. 목적지는 언제나 가장 창조적인 곳이다. 미국의 철도, 전기, 자동차, 바이오, 인터넷 등의 산업도 그렇게 발달했다.
천위루·양동/하진이 옮김/사이 출판/2만8000원
반면 동남아시아는 수출주도형 전략에 의존하고 다른 나라의 창조를 모방하고,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것은 약탈 방식과 다를 바 없고, 모방형 창조의 이점이 소진된 후 유동성 과잉이 발생해 결국 위기가 찾아왔다.

결국 한 나라의 경쟁력 핵심은 창조이며, 창조를 이끄는 것은 금융이다. 금융은 자신들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안겨줄 창조 산업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거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창조의 힘이 약하면 그 거품을 꺼뜨려 실체를 드러내는 것 역시 금융이었다. 금융이 한 나라 경제를 일으키기도, 무너뜨리기도 하고 세계사의 향방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다. 결국 ‘금융은 인류가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므로 우리는 금융이 가져다줄 부와 위기 모두 누리고 감당해야 한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