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쾅’ 소리에 교통사고 난 줄…몇 시간 뒤 부랴부랴 대피”

전지현 기자 2023. 7. 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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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주택가 축대 붕괴 현장
3.5m 높이 벽면 무너져…재개발 예정인 아래 동네, 거주자 없어
순식간에 이재민 된 20가구 “서울 한복판서 이 난리 겪을 줄이야”
집중호우로 축대가 무너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주택가에서 14일 구청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쾅 하는 큰 소리가 들렸어요. 교통사고가 났나 했는데 몇 시간 뒤에 대피하라 하더군요.”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13일 오후 6시35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홍제천 인근 축대가 무너졌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지반이 추가로 무너질 우려가 있어 축대 주변 지역 거주자들은 대피했다. 유모씨(46)는 어머니와 함께 서대문구청이 마련해준 모텔방으로 이동해 간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유씨와 같이 순식간에 이재민이 된 사람은 46명, 총 20가구였다.

14일 낮 12시. 3.5m 높이 축대 벽면이 무너져 내린 연희동 사고 현장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 좁은 골목에 떨어져 나온 돌덩이들이 부서진 채로 쌓여 있었다. 토사가 쏟아진 축대 아래 동네는 재개발 예정으로 현재 거주자는 거의 없는 곳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대피하게 된 주민들은 “서울 한복판, 대로변 동네에서 이런 난리를 겪을 줄 몰랐다”고 했다. 50대 이재민 A씨는 “잠깐 대피하는 건 줄 알고 고양이를 두고 나올 뻔했는데, 데리고 오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전날 급하게 나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짐을 가지러 돌아와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진 집 앞을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A씨는 비가 그치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은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거동이 불편해 대피하지 않고 집에 남겠다고 한 90세 주민 B씨는 공사 현장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지대가 높아 장마철에도 비 오는 것을 걱정해본 적 없다던 이웃 주민들도 간밤의 소식을 듣고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집에 가려면 축대 위를 지나가야 한다는 이문천씨(61)는 “예전에 와우아파트 무너진 것 생각도 나고, 놀라서 어제저녁에도 아래로 내려와 봤다”고 했다.

재건축이 늦어져 방치된 지 오래인 빈집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 주민은 “재건축이 연기된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평소 쓰레기 문제나 악취 등이 심했다”며 “석축 앞 집이 재개발됐다면 이미 제대로 벽이 정비됐을 것”이라고 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정두영씨(60)는 “축대도 축대지만 저 집도 이미 기울지 않았나”라고 했다.

야간에 갑자기 이재민을 받게 된 모텔 주인들도 안타까운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70대 숙박업소 사장 C씨는 “어제저녁에 구청에서 전화를 받고 이재민을 위한 방을 몇 개 빼두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손님을 일부 못 받긴 했지만 “누구에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했다.

당국에서는 도로 하부의 석축이 물러난 틈으로 많은 빗물이 스며들면서 다량의 흙이 빠져나오고, 이로 인해 축대 하부에 빈틈이 커지는 ‘공동 현상’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날도 빗줄기가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오전 8시부터 모래포대로 석축 면을 메우는 복구작업이 진행됐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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